이 글의 제목은 1970년대 오키나와로 파견된 한국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요산 김정한의 '오끼나와에서 온 편지'에서 가져왔다.
"Decision on .. submission"
학회에 냈던 논문의 심사 결과를 알리는 메일이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클릭해서 열어보았다. "
It is our pleasure to inform you that...". 굿! 다행히도 논문이 억셉되었다. 짧은 축하 메시지에 이어, 내심 더 반가웠던 문장이 보였다. "Conference .... at Hawaii Convention Center, Hawaii". 그렇게, 우리는 하와이로 짧은 여행을 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일본의 하와이 (오키나와)에서 미국의 하와이로.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하와이 여행이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이것저것 하와이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알고 보니 하와이와 오키나와는 여러모로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열대기후로 따뜻하고, 그래서 그런지 미국과 일본, 각 나라의 대표적인 휴양지로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하와이와 오키나와, 비슷하고 또 다른 역사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관심을 가장 끈 공통점은 하와이와 오키나와의 서로 닮은, 그리고 또 다른 역사였다.
하와이에는 19세기까지 하와이 왕국이 존재했었고,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되었다. 오키나와에도 19세기까지 류큐 왕국이 존재했었고, 1879년에 일본의 오키나와 현으로 편입되었다.
하와이에는 하와이어라고 하는 고유의 언어가 있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알로하 (Aloha)란 말도 하와이 말이다. 사랑, 평화를 뜻하는 '알로하'는 우리말 '안녕'처럼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둘 다 쓴다고 한다. 하와이어는 현재도 하와이에서 영어와 함께 공식 언어로 대접을 받고 있다.
비슷하게, 오키나와에도 류큐어라고 하는 고유의 언어가 있(었)다. 나하 공항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며 말하는 멘소레 (Mensore), 하이사이 (Haisai)는 류큐어로 '어서 오세요', '안녕'이라는 인사말이다. 공식 언어로 인정받는 하와이어와는 달리, 류큐어는 공식 언어로 대접받지 못했다. 류큐 (현재의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합병되었을 때 류큐어는 공식적으로 사용이 금지되었다 [1]. 결국 류큐어 사용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소멸위기 언어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2].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주만 공격과 오키나와 전투를 겪으며, 하와이와 오키나와 둘 다 전쟁 중 일본 제국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슬픈 공통점도 있다.
[1] 류큐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방언찰(方言札)이란 나무 명패를 차도록 하여, 공개적으로 모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한다. 잔혹했던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이 떠오른다.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Ryukyuan_languages#History
[2] 류큐어와 일본어는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르다. 한국어 표준어와 제주방언의 차이보다 큰 느낌이다. 우리가 만난 젊은 오키나와 사람들 중에서 류큐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와이 우치난추 (ハワイ沖縄人)
하와이 여행 정보를 찾다가 인상 깊었던 점은, 하와이에는 일본 출신들이 많은데 그중 특히 오키나와에서 온 이주민이 많다는 점이다. 하와이에 있는 오키나와 인들은 하와이 우치난추 (ハワイ沖縄人)라고 부르는데, 하와이 전체 인구의 3%가 될 만큼 그 규모가 크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와이 우치난추에 대해 찾아보았다. 1879년 류큐가 일본으로 병합되자 오키나와의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점점 더 나빠져가는 상황을 맞게 된 류큐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오키나와를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떠났던 많은 목적지 중 하와이가 있었다. 하와이로 떠났던 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난했던 류큐 사람들 역시 대부분 하와이의 수수 농장에서 일을 하며 타국에서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
비록 일본이라는 같은 나라의 국민이었지만, 그 당시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던 본토 출신의 일본인들은 류큐 사람들을 하급 계층 취급을 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난 류큐 사람들은 일본인들로부터도 차별과 멸시를 받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독립국 류큐로 살았던 그들이기에, 류큐 사람들은 그들을 일본 본토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멸시에 맞서 류큐 사람들은 하와이에서 자신들만의 커뮤니티와 정체성을 키워간다 [3].
[3] 하와이 우치난추에 대한 자료는 무척이나 방대하다. 관심 있다면 위키피디아부터 읽어나가도 좋겠다.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Okinawans_in_Hawaii
그렇게 하와이에서 살아남은 류큐 사람들 중 일부는 고향 오키나와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하와이에 남았다. 바다와 멋진 해변들, 자연, 야자나무들, 바닷속 거북이들까지. 고향과 비슷했던 하와이의 풍경에 이끌려서 남게 된 걸까? 이제는 다른 나라가 된 고향으로 돌아가기 무서웠던 걸까? 아니면 더 나은 삶을 개척해낸 그곳을 새로운 터전으로 삼고 계속 머무르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하와이에 남은 류큐인들의 후손들은 2차 대전이 터지자 다시 한번 아픔을 겪게 된다. 이들 중 일부가 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에 '미군' 소속으로 참전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오키나와에 남아있던 자신의 먼 친척, 친구들과 서로 총구를 겨누는 상황도 생겼다고 한다. 이들은 총칼을 들고 싸우는 것 이외에도, 본인들의 '고향말'을 써서 오키나와 주민들을 설득하여, 일본군의 학살과 일왕의 자살 명령으로부터 목숨을 구하는데도 일조했다고 한다. 여로모로 슬픈 역사다.
Paradise (낙원)
하와이를 “PARADISE” 섹션에서 소개하는 라이카무 내 서점 라이카무 쇼핑몰에 있는 서점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아시아, 아프리카, 러시아, 유럽 등 여러 목적지 별로 구분된 여행 코너를 지나다가 한 목적지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 섰다.
"PARADISE.. 파라다이스? 낙원?"
목적지 "PARADISE"라고 이름 붙여진 책장에 꽂힌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곳엔 하와이 여행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유쾌하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맞네 맞아. 그럼, 하와이는 천국이지' 그렇게 웃고 돌아섰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라이카무의 서점 생각이 났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난 그 시절의 류큐 사람들에게도 하와이는 천국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