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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갱 Oct 23. 2021

운동 아닌 운동 - 오키나와 현민대회

沖縄県民大会

출근길이었다. 58번 국도와 만나는 교차로에 접어들자 도로 옆 전봇대에 걸린 하얗고 작은 광고판에 손으로 휘갈겨 쓴듯한 검은 글씨가 보였다. 신호를 기다리며 어쭙잖은 한문 실력으로 한 글자씩 광고판을 읽어보니.. 


“오키나와 현민 대회...?!”


나하 대형 줄다리기 축제 사진 © 사단 법인 나하 관광 협회

마침 오키나와에서는 여기저기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고, 우리는 기회가 되는대로 축제를 다 가보자고 이야기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 오키나와 수도 나하에서는 매년 대형 줄다리기 축제가 열리고 있었기에, 우리는 당연히 오키나와 현민 대회도 비슷한 류의 운동회라고 생각했다. 그 이름처럼, 온 오키나와 현민 (沖縄県民)들이 모여 줄다리기하고, 걷고 뛰는 그런 큰 운동회 (大会).



'동네별로 대항전을 하는 걸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우리도 나름 현민인데 참석해야지!' 라며 다짐을 했지만, 정작 대회 당일엔 늦잠을 자느라 나하에서 열리는 현민 대회에는 아쉽게도 참석치 못했다. 그렇게 현민 대회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식당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자막에서 오키나와 현민 대회 (沖縄県民大会) 여섯 글자를 다시 만났다. 


오키나와 현민 대회에서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운동을 하고 있는 현민들  © kyodonews

그리고 자막 너머로 보이는 뉴스 영상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현민 대회는 서로 모여 함께 걷고 뛰며 현민들의 우애를 다지는 운동회가 아니라, 오키나와 내 미군기지 철수와 관련하여 데모를 하는 자리였다는 것을 [1]. 돌이켜 생각해보면, 광고판의 글자가 흰 바탕에 갈겨쓴 검은 글씨로, 조금 저항적인 느낌(?)이 표현된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좀 더 부지런해서 나하에 갔었더라면, 의도치 않게 내 몸을 가꾸는 운동 (exercise)이 아닌 사회를 바꾸는 운동 (movement)을 할 뻔했다.  


[1] 오키나와에 새로 건설 중인 헤노코 기지 때문에 오랫동안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미군 기지 문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http://standwithokinawa.net/ko/




A 사인 그리고 1972년생 [2]


A 사인.  미군에 의해 승인 (Approved)된 레스토랑이나 술집에 내려지는 일종의 증명서였다. © visitOkinawa

오키나와는 본래 류큐 왕국이라는 나라가 400년 이상 다스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류큐 (현재의 오키나와)는 1879년 일본으로 강제 합병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큰 전투였던 오키나와 전투를 거치며 큰 수난을 겪는다. 오키나와 (류큐) 사람들은 일본군에 의해 총알받이로 떠밀렸고 전투 말미에는 자살을 강요받았다. 전쟁으로 인한 사망과 일본군 성노예를 포함하여 12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당시 인구의 4분의 1 정도라고 한다 (관련 기사[3]).


전쟁이 끝난 후, 오키나와는 패전국의 영토로서 27년간 승전국(미국) 통치를 받게 된 (일제의 침략부터 미군정까지. 우리의 역사와 많이 닮았다). 그렇게 일본, 미국 그리고 류큐의 문화가 섞이면서 오키나와 특유의 '찬푸루 [4]' 문화가 만들어지던 그 시절, 아름다운 오키나와 곳곳에는 미군 기지도 함께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27년이 흐른 후 다가온 1972년. 오키나와는 미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반환 (혹은 귀속)된다. 하지만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적 정책으로 인해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대부분이 오키나와에 주둔하게 되었다 [5].


오키나와 사람들과 미군 사이의 크고 작은 마찰은 1995년 9월에 발생한 사건으로 크게 소용돌이친다. 미군 3명이 12세 여자아이를 납치한 후 폭행하고 집단 강간한 것이다. 이는 오키나와 내 주둔 미군에 대한 현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그 후로 미군기지 축소 · 철폐 운동은 지속되고 있다.


[2] 『레트로 오키나와』 (남원상 저, 따비)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오키나와의 역사를 여러 음식과 노포 이야기를 곁들여 맛있게 들려준다.

[3] 관련기사: http://www.greenpost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478

[4] 찬푸루 (チャンプルー)는 오키나와 말로 '섞다/버무리다'라는 뜻이다.

[5] 현재도 오키나와현 토지의 약 10% 가 미군기지에 점유되고 있다고 한다. 오키나와 여행 중에도 철망으로 둘러싸인 미군기지는 자주 눈에 띈다.



오키나와 현지사 데니 (Denny Tamaki) [6]는 미군 문제에 대하여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 ParsToday


아메리칸 빌리지와 스테이크 하우스, 블루씰. 이들 사이사이로 난 미군 기지의 철조망들. 그리고 미군 기지 철수를 외치는 현민 대회. 이들은 마치 오키나와 찬푸루처럼, 타코 라이스의 타코 소스와 쌀처럼 한데 버무려져 지금의 오키나와를 만든다.

[6] 데니 타마키는 2018년 오키나와 현지사로 선출되었다. 처음엔 그의 미국적인(?) 이름 때문에 '이름이 Denny인데 반미(反美)라고?'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알고 보니 그의 가정사에도 오키나와 내 미군 주둔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데니는 일본인 어머니와 오키나와에 주둔 중이던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출처: wikipedia)




덧. 오키나와 내에서도 미군에 관한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Stand with Okinawa. Protest against US Military bases  http://standwithokinawa.net/ko/

Visit Okinawa. 오키나와와 미국이 융합하는 문화의 고동이 들리는 거리. https://www.visitokinawa.jp/information/night-in-koza?lang=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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