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말간 육수에 우동도, 라멘도 아닌 면발. 차가운 메밀소바가 아니라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도 오키나와에 왔으니 오키나와 소바를 먹어봐야지. 예상과 다르게 쫄깃한 면이 아니라 서걱거린다.
"이거, 다 익은 거 맞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명으로 올린 고기를 입에 넣어보니, 몇 번 씹을 새 없이 스르르 녹아 없어진다. 이번엔 부드러운 고기와 면을 함께 입에 넣고 국물을 한 입 마셔본다.
"이거, 생각보다 맛있는데?"
[1] 런닝맨 390-392회 "글로벌 랜덤 투어" 편. 방송에 등장한 가게는 치루구와 소바. >> 주소: 1 Chome-3-7 Tsubogawa, Naha
면이 안 익은 것 같은데?”
[2] 우리가 흔히 아는 메밀 소바는 일본 소바 (Nihon soba) 혹은 검은 소바 (kuroi soba)라고 불린다.
우리도 처음으로 오키나와 소바를 맛보았을 때는 서걱서걱한 면을 삼키며 “면을 익히는 걸 잊은 건가?” 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오키나와 소바와의 어색한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오키나와 소바를 먹으러 다녔다. '오키나와 살면서 오키나와 소바는 먹어야지'란 왠지 모를 의무감도 약간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오키나와 소바에 빠져버렸다. 마치 소개팅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큰 기대 없이 의무감으로 나간 애프터에서 반한 거랄까.
막상 오키나와에 있을 때, 라멘집과 오키나와 소바집 중 어디를 더 자주 갔었는지는 잘 모를 정도니, 열렬한 소바 마니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잠시 일 때문에 한국에 다녀올 때면 다음 날은 꼭 오키나와 소바를 먹었다. 처음엔 장난처럼 만든 습관이었지만 나중에는 따뜻하고 익숙한 국물을 한 입 먹어야 오키나와에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났다.
찬바람이 불면 아직도 따뜻한 오키나와 소바 국물이 생각난다. 한두 번 만남으로는 오키나와 소바를 사랑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만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집에서 만드는 간단한 오키나와 소바
운이 좋게도 오키나와에 있을 적에 소바를 만드는 행사에 참여했고, 그때 받은 레시피를 고이 간직해왔다. 육수도 내야 하니 시간이 걸려 자주 해 먹기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 레시피를 한 번 꺼내어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오키나와 소바를 만들어보았다. 나와 같이 오키나와를 그리는 사람에게 공유하고 싶어 레시피를 정리해본다. 맛집 솜씨까지는 못 미치지만, 오키나와 추억을 되새기기에는 이만한 방법도 없을 것이다.
재료 4-5인분
육수 재료
- 육수용 돼지 뼈 (생략 가능)
- 물 2~3L
- 가쓰오부시
- 간장
- 소금
건더기 재료
- 수육용 삼겹살 600g
- 면
- 어묵 (안 익히고 고명으로 올릴 수 있는 용)
- 쪽파
- 초생강 (생략 가능)
- 미림
- 간장
- 설탕
- 술
(1) 돼지 뼈를 끓는 물에 10분 데쳐서 건져서 핏덩이와 이물질을 제거한다.
(2) 2~3L의 물에 손질한 돼지뼈와 고명용 삼겹살을 같이 넣고 뚜껑을 닫는다. 한 번 끓으면 약불로 줄여서 1-2시간 더 끓인다.
(3) 육수에서 삼겹살만 꺼내어 적당한 크기로 썰고 설탕, 미림, 간장, 술을 1:1:1:1로 섞어 그대로 약불에 졸여낸다. 10분 뒤 불에서 내리고 식히며 맛이 배도록 한다.
(4) (2)의 육수에 가쓰오부시를 넣고 약불로 10분 국물을 낸 뒤 가쓰오부시를 꺼낸다.
(5) (4)의 육수에서 거품과 기름을 약간 걷어낸 뒤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6) 어묵은 약간 넙적하게 썰고, 쪽파와 초생강은 잘게 썰어 고명으로 준비한다.
(7) 면은 따로 삶아 그릇에 덜고, (3)의 고기와 (6)의 고명을 얹은 뒤 (5)의 육수를 부으면 완성
- 여기서는 육수용 뼈 대신 등갈비 600g을 사용하였다.
작년에는 고기로만 육수를 냈는데, 육수 향이 조금은 덜 하지만 오키나와 소바 느낌을 내기에 괜찮아서 생략 가능하다고 표기하였다.
- 면은 본래의 서걱한 식감을 위해 싼 우동 면을 사용하였는데, 라면 사리를 넣어도 맛있었다.
- 받아온 레시피 그대로 옮겼지만, 개인적으로 고기 양념에서 설탕은 반으로 줄여도 충분히 달달했다.
- 보통 오키나와 소바는 삼겹살 부위가 올라간다. 갈비가 올라가는 것은 소-키소바(ソーキそば)로 메뉴판에 서로 다른 메뉴로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