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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갱 Oct 23. 2021

찬 바람이 불면 따뜻한 오키나와 소바가 생각난다

따뜻하고 말간 육수에 우동도, 라멘도 아닌 면발. 차가운 메밀소바가 아니라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도 오키나와에 왔으니 오키나와 소바를 먹어봐야지. 예상과 다르게 쫄깃한 면이 아니라 서걱거린다.
"이거, 다 익은 거 맞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명으로 올린 고기를 입에 넣어보니, 몇 번 씹을 새 없이 스르르 녹아 없어진다. 이번엔 부드러운 고기와 면을 함께 입에 넣고 국물을 한 입 마셔본다.
"이거, 생각보다 맛있는데?"




오키나와 대표음식, 오키나와 소바 (沖縄そば)


스테이크, 타코라이스, 찬푸루 등등.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내가 꼽은 오키나와 대표음식은 오키나와 소바 (沖縄そば)다. 얼마 전 티브이 한 프로그램에서 나와 같은 답을 찾 걸 보았다. (스포일러 주의) 오키나와에서 SBS 런닝맨을 촬영했는데, 멤버들이 수행한 미션 중에 "현지인 추천 맛집"에서 식사하기가 있었다. 그런데 현지인들이 오키나와 소바를 계속 추천하는 바람에 멤버들이 오키나와 소바만 먹고 다녔다. 그것도 같은 소바집에서 [1].

[1] 런닝맨  390-392회 "글로벌 랜덤 투어" 편. 방송에 등장한 가게는 치루구와 소바. >> 주소: 1 Chome-3-7 Tsubogawa, Naha



오키나와 섬마다, 가게마다 다른 오키나와 소바



면이 안 익은 것 같은데?”


오키나와 소바를 처음 접하는 사람의 흔한 첫 반응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다. 소바라는 말을 듣고 일본의 메밀소바를 떠올리고 오키나와 소바를 주문한다면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음식을 만나게 될 것이다 [2]. 굳이 나누자면 오키나와 소바는 일본의 메밀소바보다는 차라리 우동에 더 가깝다. 오키나와 소바의 토핑은 보통 어묵, 파, 초생강 그리고 돼지고기이다. 면은 약간 설익은 듯 서걱서걱한 식감이고, 오랫동안 삶은 돼지고기와 가쓰오부시로 우려낸 따뜻한 국물은 담백하다. 그 식감과 돼지육수의 냄새 때문에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오키나와 소바에 대한 호불호는 많이 갈리는 편이다.

[2] 우리가 흔히 아는 메밀 소바는 일본 소바 (Nihon soba) 혹은 검은 소바 (kuroi soba)라고 불린다.


우리도 처음으로 오키나와 소바를 맛보았을 때는 서걱서걱한 면을 삼키며 “면을 익히는 걸 잊은 건가?” 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오키나와 소바와의 어색한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오키나와 소바를 먹으러 다녔다. '오키나와 살면서 오키나와 소바는 먹어야지'란 왠지 모를 의무감도 약간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오키나와 소바에 빠져버렸다. 마치 소개팅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큰 기대 없이 의무감으로 나간 애프터에서 반한 거랄까. 


막상 오키나와에 있을 때, 라멘집과 오키나와 소바집 중 어디를 더 자주 갔었는지는 잘 모를 정도니, 열렬한 소바 마니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잠시 일 때문에 한국에 다녀올 때면 다음 날은 꼭 오키나와 소바를 먹었다. 처음엔 장난처럼 만든 습관이었지만 나중에는 따뜻하고 익숙한 국물을 한 입 먹어야 오키나와에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났다.


찬바람이 불면 아직도 따뜻한 오키나와 소바 국물이 생각난다. 한두 번 만남으로는 오키나와 소바를 사랑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만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오키나와 소바 전쟁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소바를 둘러싼 전쟁을 한 적이 있다 (총칼을 든 실제 전쟁은 아니다). 이는 1972년 오키나와가 다시 일본으로 귀속된 후의 일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메밀을 30% 이상 함유한 면으로 만든 음식만 소바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규칙이 있었다. 따라서 일본의 공정거래위원회는 순수히 밀로만 제작되는 오키나와 소바에서 소바란 이름을 빼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메밀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소바로 불리는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했지만 (예를 들어 야키소바), 이런 예외는 못 본 듯 오키나와 소바에게만 소바의 이름을 빼 길 강요하였다 (이 시절 일본 본토 사람들은 오키나와 사람들을 얕잡아 보았다).


하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은 순수히 물러나지 않았다. 오키나와 소바를 메밀로 만들지도, 소바란 이름을 빼지도 않았다. 결국 이 전쟁에서는 오키나와 소바가 승리하였다. 1978년 10월 17일. 오키나와 소바는 결국 공식적으로 소바의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이를 기념하여 오키나와에서는 매년 10월 17일을 오키나와 소바의 날로 정했다.



오키나와 소바 맛있게 먹는 방법


오키나와 소바는 오키나와현의 섬마다, 그리고 가게마다 맛이 다르다. 가게마다 공통적으로 많이 찾을 수 있는 토핑, ○○○ 소바 메뉴는 다음과 같다.


산마이니쿠 (三枚肉): 삼겹살

소키 (ソーキ): 돼지갈비(추천!)

테비치 (てびち): 한국의 족발과 비슷하지만 더 부드럽고 덜 쫄깃하다.

나카미 (中身): 돼지 연골,

야사이 (野菜): 야채



코레구스 © reddit.com

코레구스. 오키나와 소바에 매콤한 맛을 추가하고 싶다면 코레구스 (koregusu コーレーグス)를 조금 넣어보자. 아와모리에 섬고추를 넣은 것인데 매콤함을 더할 수 있다.


쥬시. 종종 쥬시 (Jushi ジューシー)라고 하는 사이드 메뉴를 곁들일 수 있다. 야채나 고기 등을 넣고 지은 밥인데 볶음밥과 비슷한 비주얼이지만 좀 더 슴슴한 맛이다. 소바처럼 쥬시도 가게마다 맛이다 다르다.





우리의 오키나와 소바 맛집


오키나와 소바는 가게마다 맛과 스타일이 조금씩 다 다르다. 여기 소개된 안전한(?) 맛집에서 시작을 해보고, 오키나와 소바가 입에 맞는다면 다른 소바 가게를 탐험해보자. 자신만의 오키나와 소바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키나와 소바는 보통 한 그릇에 500-800엔 정도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 Kinchichi Soba (金月そば). 주소: (중부) 201 Kina, Yomitan, Nakagami District

>> Hanaui Soba (花織そば). 주소: (중부) 2418-1 Namihira, Yomitan, Nakagami District





오키나와 소바 만들기

집에서 만드는 간단한 오키나와 소바




운이 좋게도 오키나와에 있을 적에 소바를 만드는 행사에 참여했고, 그때 받은 레시피를 고이 간직해왔다. 육수도 내야 하니 시간이 걸려 자주 해 먹기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 레시피를 한 번 꺼내어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오키나와 소바를 만들어보았다. 나와 같이 오키나와를 그리는 사람에게 공유하고 싶어 레시피를 정리해본다. 맛집 솜씨까지는 못 미치지만, 오키나와 추억을 되새기기에는 이만한 방법도 없을 것이다.


재료 4-5인분

육수 재료
- 육수용 돼지 뼈 (생략 가능)
- 물 2~3L
- 가쓰오부시
- 간장
- 소금

건더기 재료
- 수육용 삼겹살 600g
- 면
- 어묵 (안 익히고 고명으로 올릴 수 있는 용)
- 쪽파
- 초생강 (생략 가능)
- 미림
- 간장
- 설탕
- 술



만드는 방법


(1) 돼지 뼈를 끓는 물에 10분 데쳐서 건져서 핏덩이와 이물질을 제거한다.

(2) 2~3L의 물에 손질한 돼지뼈와 고명용 삼겹살을 같이 넣고 뚜껑을 닫는다. 한 번 끓으면 약불로 줄여서 1-2시간 더 끓인다.

(3) 육수에서 삼겹살만 꺼내어 적당한 크기로 썰고 설탕, 미림, 간장, 술을 1:1:1:1로 섞어 그대로 약불에 졸여낸다. 10분 뒤 불에서 내리고 식히며 맛이 배도록 한다.

(4) (2)의 육수에 가쓰오부시를 넣고 약불로 10분 국물을 낸 뒤 가쓰오부시를 꺼낸다.

(5) (4)의 육수에서 거품과 기름을 약간 걷어낸 뒤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6) 어묵은 약간 넙적하게 썰고, 쪽파와 초생강은 잘게 썰어 고명으로 준비한다.

(7) 면은 따로 삶아 그릇에 덜고, (3)의 고기와 (6)의 고명을 얹은 뒤 (5)의 육수를 부으면 완성

왼쪽부터 (2), (3), (4) 과정에 대한 사진
삼겹살과 등갈비를 모두 올려 푸짐하다.


- 여기서는 육수용 뼈 대신 등갈비 600g을 사용하였다.
  작년에는 고기로만 육수를 냈는데, 육수 향이 조금은 덜 하지만 오키나와 소바 느낌을 내기에 괜찮아서 생략 가능하다고 표기하였다.
- 면은 본래의 서걱한 식감을 위해 싼 우동 면을 사용하였는데, 라면 사리를 넣어도 맛있었다.
- 받아온 레시피 그대로 옮겼지만, 개인적으로 고기 양념에서 설탕은 반으로 줄여도 충분히 달달했다.
- 보통 오키나와 소바는 삼겹살 부위가 올라간다. 갈비가 올라가는 것은 소-키소바(ソーキそば)로 메뉴판에 서로 다른 메뉴로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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