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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갱 Oct 23. 2021

겨울이 왔다.

"오늘 오키나와 최저기온은 15도, 겨울이네요."


 출근길 라디오에서 나오는 일기예보를 듣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영하 15도로도 떨어지는 서울의 겨울을 생각하면 최저기온 15도는 날씨가 한창 좋은 가을에나 나오는 얘기가 아닌가. 따뜻한 날씨에 익숙한 이곳 사람들에게는 정말 한겨울처럼 느껴지려나.


 이렇게 웃고 있지만 사실 내가 체감하기에도 오키나와의 겨울은 ‘기온 몇 도’라는 말이 주는 느낌과 달리 제법 춥다. 창 없이 뻥 뚫린 베란다에, 단창으로 된 유리문을 가진 우리 집은 겨울의 한기를 막아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한 동안 그 존재조차 모른 채 열어둔 환기구 덕분에 집 안으로 밖의 한기가 그대로 들어오곤 했다. 난방기구라고는 에어컨에서 나오는 히터바람이 전부였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의 온돌이 얼마나 선진 문물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그리워했다. 그리고 11월이 되자마자 전기장판을 주문했다. 오키나와에서 전기장판이 필요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아마존에서 구입한 전기장판은 한국의 것과는 다르게 얇은 천으로만 되어있어 그 안의 열선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 배선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나, 남국의 겨울을 위로해주기엔 충분했다.


 그러고보면 내가 처음 온 것은 결혼 전 해 1월의 겨울날이었다. 짧게나마 겨울 휴가로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추운 한국의 겨울, 그중에서도 더욱 추운 수술실(감염 예방을 위해 일정 온도 이하로 유지한다)을 벗어나 남쪽으로 떠나는 여행에 몹시 들떠있었다. 하지만 바닷바람 탓일까? 도착한 오키나와는 내 예상과 다르게 구름 낀 하늘에 바람도 세서 참 추웠다. 여행 캐리어에 구겨 넣어 왔던 패딩을 오키나와에서 다시 꺼내 입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가을부터 습기가 사라진 덕에 더욱 청명한 하늘을 만날 수 있는 것 또한 겨울 여행의 매력이다.

 

 하지만 겨울 여행을 앞두고 걱정하는 사람에게 말하자면 실망하기는 이르다. 오키나와의 겨울 날씨는 정말 변덕쟁이라 구름이 많은 날에는 집에 있는 티셔츠를 3겹씩 다 껴입고 털모자도 써야 하지만, 맑은 날은 반팔로도 충분한 계절이니까. 종종 해외여행을 다니며 입에 맴돌던 소원은 '햇볕의 영향이 강렬한 곳에 사는 것'이었다. 햇살에 앉아있으면 뜨겁다가도, 그늘에 있으면 어느새 시원해지는 날씨. 맑은 겨울날의 오키나와는 제법 이런 나의 소원에 화답해준다. 보태자면 5mm 잠수복만 있다면 바다 스노클링도 스쿠버 다이빙도 가능해서 오키나와의 바다를 즐기기에도 여전히 좋은 때이니, 여행을 망설이지 않아도 좋다.

겨울엔 시사도 산타가 된다


 겨울이 왔다는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였다. 처음 오키나와에 올 때는 6개월 간의 일정을 계획하고 왔지만, 오키나와가 너무 좋아져 우리는 조금씩 돌아가는 날짜를 미뤄왔다. 그렇게 조금씩 귀국을 늦추다 결국 4계절을 모두 지내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식을 학교에 내려다주고 멀리 북부까지 혼자 해변을 찾아간 어느 날이 있었다. 한적한 해변이 좋아 무심코 남편과 다시 와야지 싶다가, 이 해변을 다시 한 번 남편과 같이 오기는 힘들겠다는 현실이 그 때야 와닿았다. 돌아가야할 때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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