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좀 (꺼) 주세요
본래 관종이라 함은 금속제 관을 틀에 매달아 만든 타악기. 보통 열여덟 개의 관을 반음계로 조율하여 매달고 채로 관의 윗부분을 쳐서 소리를 낸다.이지만 요즘 많이 불리는 관종의 뜻은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 그런 부류를 뜻하는 ‘관심종자’의 줄임말로 많이 쓰이고 있다.
어린 시절 양가의 첫 손주로 태어나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으니 이 세상 모두가 나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들이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왔으니 내가 먼저 다가가서 노력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사랑을 주지 않을 기미가 보이면 먼저 돌아서서 상처받지 않으려고 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나 이성친구들의 관계에서도.
성인이 되기 전엔 짝사랑만이 그렇게 재밌었다. 좋아하는 걸 숨기지 못하는 나는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같은 학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그렇게 숨기지도 못 하고 알아주길 바랬던 내가 그 친구의 마음이 나에게로 오면 그때부턴 내가 뒷걸음질을 친다. 상대방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어른이 돼서도 관심받고 싶은 마음은 늘 있다. 관심이 오면 그 뒤가 감당하기가 힘들어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친구들과의 자리 나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늘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다. 분위기에 맞춰 농담도 하고 그러다 보면 빵 터질 때가 있다. 관종이라면 그런 순간을 즐겨야 하는데, 툭 내뱉은 말이 갑자기 관심을 받으면 순간 얼굴이 빨갛게 익어버리고 만다. 스스로 회피형 관종이라 정의를 내렸다.
나서고 싶을 때가 많은데 뒷일을 감당하기 힘들까 봐 망설일 때가 많다. 생각해보면 내가 무얼 하든 관심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을 텐데 어릴 적 당연한 관심 속에 자라 아직도 행복과 부담 사이를 오가는 것 같다.
큰 아이가 교회를 잘 다니다가 크리스마스 행사부터 다니지 않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교회 선생님이 행사 무대 센터에서 공연 기회를 주셨는데 그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본인만 볼 것 같은 마음에 힘들 것 같다고. 그때 아이에게 한 말이 “사람들이 너를 보게 하는 건 너의 능력이야. 중간에 선다고 해서 모두 다 너만을 보지 않아.”라는 말을 했다. 어쩌면 내가 나에게 한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중대한 일의 감투를 써야 할 때,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청소년연맹 단장이 되는 일 정도. 그런 일들을 맡아야 할 때는 속으로는 사실 나서고 싶을 때가 많다. 속으로 삼키며 누군가가 지목해서 떠밀어주길 바란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떠밀리는 척을 한다. 어른이 되고 생각해보니 잘 해내지 못했을 때의 부담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한다고 했으면 잘해야 할 것 같고, 남이 억지로 시켜했다면 남 탓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요즘 '유명한데 조용히 살고 싶어'라든가 '부자가 되고 싶지만 유명하고 싶지는 않아' 이런 말들이 많다. 이중적이면서도 왠지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나요?"라고 이야기하게 된다. 모두 회피형 관종인가 싶어 친근감이 느껴진다. 이 세상 나 혼자가 아니구나.
오늘도 관심을 갈구하는 나와 관심을 피하고 싶은 내가 공존한다. 어느 한쪽 편에 손들어 주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