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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세미 Nov 15. 2021

아이라는 좋은 핑계

아이들을 방패삼아 뒤로 숨었다.

첫째 둘째 아이를 낳고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지 벌써 7년이 되었다. 교대근무로 돌아가던 자리였기 때문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을 다니기란 불가능했다. 회사에 건너 건너 지인들 보면 육아 도우미를 구해서 집으로 와 주시는 분을 구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신랑도 그렇게까지 알아볼 생각도 안 했고, 신랑이 벌어 오는 돈으로 가계를 잘 꾸리면 넉넉하진 않아도 큰 부족함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가계를 잘 꾸린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아이들 봐줄 사람이 없어서, 아이들은 엄마가 키워야 하기 때문에 등등 육아라는 좋은 핑계로 20대 처음으로 전업주부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업주부의 생활은 어쩔 수 없이 시작하게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의 생활은 아이들은 정말 핑곗거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아주 그럴싸한 핑계. 혹시나 복직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둘째를 11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냈고 복직이 불발되었음에도 퇴소처리하지 않았다. 시작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어도 허송세월을 보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유치원, 어린이집 그리고 다시 학교와 학원으로 가는 사이 나는 무엇을 했을까? 나름 일자리를 찾아보려고 노력은 했다. 죄책감이 들 때 아주 가끔씩. 오전 파트타임은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아이들 하원 시간에 조금이라도 걸쳐있으면 ‘아이들 집에 왔는데 엄마 없으면 안 되지’라는 생각으로 합리화를 시키곤 했다. 내가 매일 아이들 하교 시간에 집에 있었을까? 하교하는 아이들을 위해 매일 간식을 차려주었을까? 다시 사회에 뛰어들 자신이 없는 나는 때마다 아이들만을 위하는 엄마인 양 보기 좋게 속이고 있었다.


일을 하지 못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땐 왜 몰랐을까? 사무실에 취직하거나 파트타임 카페 알바 찾을 생각만 하고 나를 키울 생각은 왜 하지 못 했을까? 수년 동안 나에게 투자하고 키우고 돌보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어디에 와 있을까? 자신을 키우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은 얼마나 더 잘 자랐을까? 지나간 세월을 후회하고 아쉬워하며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옛날에 비해 조금씩 변화가 있지만 아직은 우리 가족의 가장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아빠이다. 신랑도 힘들고 쉬고 싶고 멈추고 싶을 때가 분명 있었을 텐데, 가장의 자리를 뛰어넘을 만큼 납득할 만한 핑곗거리를 찾지 못하고 오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젠가는 신랑과 내가 자리를 바꾸어야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훗날 몸이 좋지 않거나 회사 사정이 힘들어지면 그땐 내가  몸으로 앞장서서 “이젠  차례야. 오빠 이제 조금 쉬어도 .”라고   있을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날을 위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를 키우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새벽 기상을 하며 하루의 시작을 허투루 하지 않는다. 맑은 정신과 건강한 몸으로 또 하루를 살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새벽 2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내고 난 하루는 절대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는다. 여름의 새벽과 겨울의 새벽이 다름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게 된 지 1년이 지난 요즘은 아침마다 아이들을 대하는 시선부터가 다르다.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간단하게나마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은 스스로 기특하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아침잠을 줄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또 읽는 것이다. 책을 읽는 행동 자체가 긍정 기운이 넘쳐난다.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독서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마음, 나를 더 사랑하게 하는 마음이 제일 크다. 공부라고 생각하고 큰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다면 지루함이 금방 찾아와 손에서 놓았을 것이다. 세상에 깊고 멋진 생각을 하며 글로 풀어 써내는 대단한 분들의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모르고 흘러가는 세상이 또 있을 것 같아 억울한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신랑과 자리를 바꾸게 되는 날엔 아이들이 훌쩍 커 있을 텐데 어쩐지 조금 억울한 마음이 있을 것 같다. 아이들 키우느라 이제야 활동한다는 핑계를 또 한 번 대차게 하는 날을 준비 하며 책상 같은 화장대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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