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원석 Jun 27. 2023

착한 첫째 증후군

내가 엘리멘탈을 보고 눈물을 훔친 이유


최근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을 봤다. 원래 픽사의 애니메이션 자체를 좋아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평이 괜찮길래 바로 예매해 버렸다.


주토피아와 비슷한 가벼운 류를 상상하고 갔는데, 웬걸? 인사이드아웃을 볼 때처럼 나도 모르게 막판에 눈물이 나오더라. 영화를 안 본 사람을 위해 스포 없이 줄거리만 약간 서술해 보자면,


아빠의 가게를 물려받는 꿈을 갖고 있는 엠버. 하지만 웨이드를 만나면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꿈은 아빠의 가게가 아님을 깨닫는다. 하지만 아빠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엠버. 그 와중에 사건사고까지 터지는데..?!


엘리멘탈을 다 보고 나서, 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다른 사람도 나처럼 느꼈을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찾아보니, 이 애니메이션의 주된 줄거리가 로맨스라서 다소 아쉬웠다는 평이 있다는 걸 보았다. 하지만 단순 로맨스 애니메이션이다-라고 치부하기에는 뭐랄까,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물론 나도 일정 부분은 동의한다. 하지만 로맨스에 감추어져 있는 그 이면을 보면, 바로 특유의 동양문화가 있다. 바로 동양에서 두드러지는 부모 부양, 어른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 나는 엘리멘탈을 보면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엠버의 모습이 나와 겹쳐 보였고, 그래서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 Pixar



지난번, 20대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에서 짧게 20대만이 청춘을 아님을 안다고 작성했다. 그리고 오늘이 글은 그 연장선이다.


잠시 숨을 돌려,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금 내가 다니는 곳은 나의 첫 직장이다. 물론 그전에 짧게나마 계약직을 다녔던 곳이 있지만, 실제로 다들 생각하는 일반 회사의 계약직은 아니고, 정부가 취준생들을 위해 풀어준 공공일자리의 일종이었다. 결국 회사를 출근하고 말고도 없었고, 그저 외주처럼 일을 주면 현장에서 자료를 취합해 주는 식이었다.(물론 지금도 이 일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2년 만에 취업준비의 막을 내릴 수 있게 해 준 나의 첫 직장. 이제는 얼레벌레 모든 게 낯설었던 신입사원의 티를 조금은 벗어던진, 어느덧 꽉 찬 3년 차를 달려가는 직장인이다. 명함에 적혀있는 나의 회사는, 어느 정도 네임벨류도 있으며, 솔직히 비교하자면 끝이 없지만 월급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래저래 따져보면 중간은 되는 것 같은 회사 복지, 무난한 회사 사람들.. 어느 하나 특출 나게 나쁜 건 없다. 


긴 취업기간을 반증이라도 하듯, 나름 괜찮은 회사에 입사했으니 부모님의 기대에 충족한 기분이 들어 기뻤다. 그래서 그런가, 부모님은 가끔가다 내가 회사에 대해 툴툴거릴 때면 도저히 공감을 하지 못하신다. 라떼는 더 심했어! 그 좋은 회사를 왜 퇴사하려고 해? 당장 밥벌이 할 방법은 있고? 


입사하고서 행복하게 지냈던 6개월 차를 갓 넘었을 때였나. 뭔가 내가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잠결에 답답해서 옷을 던져버리는 것처럼. 하지만 성급하게 퇴사하기에는 일렀다. 일단 2년 동안 취준한 게 가장 컸다. 나는 다시 그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6개월이면 아직 한참 일렀다. 갓 졸업한 취준생들에 비하면, 그렇게 어리지도 않은 나이였기에  취준이라는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적어도 1년은 기다려보자는 판단이 섰다.

솔직히 이직준비를 열심히 했냐고 물어보면? 아니다.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했지만, 집에 와서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부터 일이었다. 이따금 생각나면 자기소개서 사이트에 들어가서 지원하고, 떨어지고, 다시 또 지원하고, 떨어지고의 반복... 그렇게 얼레벌레 약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중고신입과 경력직 그 사이에서 저울질을 할 때가 되었다. (물론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님)




당장 재직 중인 회사가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서 이직이 간절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의외로 그 진정한 이유는 술자리에서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찾았다. '원석아, 이직하면 뭐가 달라질 거 같아? 똑같아.. 결국 회사 다니면 다 똑같아. 어느 곳에서나 또라이는 있고, 다시 또 더 높은 월급 받는 곳과 비교하면서 눈은 높아지고, 현타만 오고... 다 사는 거 똑같아.' 


친구의 의견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왜 나는 끊임없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 한 건지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회사에 다니면서 이룰 수 없구나!라는 답이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당장 수면 위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이직'이었기에 그쪽으로 눈을 돌렸을 뿐이다. 만약 성공했다고 한들, 나는 똑같이 다른 회사에서 이건 이래서 별로고 이건 이래서 그렇고 등등의 이유로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다시 엘리멘탈로 돌아와서, 왜 갑자기 뜬금없이 나의 직장 얘기를 했냐 하면 엘리멘탈 속 엠버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공감이 가서 눈물이 났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기 싫었던 엠버. 나도 사실은 이 회사에 큰 정을 붙이지는 못할 것 같다.  


처음에는 회사를 다니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려고도 해 봤는데, 도저히 몸이 갈려서 두 가지 전부를 모두 챙기는 건 욕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제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첫째,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던가. 둘째, 퇴사하지 않고 무난하게 살던가.


두 가지 전부 어느 쪽을 택하든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후회할 것이다. 하지만 뭐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나낫지 않을까?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단, 해보고 후회하는 게 뭐라도 나으니까. 그저 이렇게 똑같이 챗바퀴처럼 흘러가는 삶을 살다가는, 10년 뒤 눈을 떠도 나는 현재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아무도 나에게 퇴사하지 말라고 압박하지 않는다. 물론 위에서 부모님이 나의 떠보는 퇴사 얘기에는 그다지 긍정적이진 않았으나, 내가 한다고 하면 크게 반대하지는 않으실 분이다. 하지만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머뭇거린다는 게 함정이다. 답답하고 어리석게도. 이제 퇴사하면 현실이 될 것이다. 당장 달마다 꼬박꼬박 들어오던 돈이 없으니 부모님께 용돈도 드릴 수 없을 것이고, 나의 신분이 되어주던 회사는 사라지니 나의 능력을 온몸으로 증명해야 될 테지. 이제 우리 첫째는 괜찮은 직장에서 자기 밥벌이는 잘하고 있으니, 결혼할 사람만 데려오면 돼.라고 얘기하시던 부모님의 말은 당분간 듣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나는 마음속에만 사직서를 품을 뿐- 그걸 실제로 낼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엠버가 끝내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새로운 길로 간 것처럼, 나도 착한 첫째에서 벗어나 용기를 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