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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원석 May 24. 2024

퇴사 숨고르기

몰랐지 도망치는 것도 용기라는걸


한동안 울컥해서 퇴사와 관련된 글을 거의 토해내듯 썼었다.비단 브런치 뿐 아니라, 개인용 다이어리에도 이 x같은 회사 내가 때려치고만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와 같은 부정적인 글을 남발했었다. 그렇게 온갖 말들을 배출하고나니 속시원할 것 같았지만, 이게 웬걸? 어느 순간 보니 부정적인 사고로만 가득한 내 자신이 눈에 보였다. 자각하고 나니, 불편해졌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잘못된걸까? 분명 n년전의 나의 눈엔 열정이 가득하고 빛이 나는 존재였던 것 같은데. 내 모습을 봐- still 동태눈깔이군.


하지만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바빠 다시 초롱한 눈빛을 장착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니, 여기에 신경 쓸 시간 조차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직 자소서를 쓰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꽤나 안정적이잖아?

출처 : Pixabay lachkegeetanjali

현재 나는 '숨고르기' 상태에 있다. 이게 정확히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에게는 폭풍전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큰 일을 앞두고 잠시 평온한 상태. 잠시 릴렉스하면서 여유를 갖되, 환기하는 시간말이다. 누군가가 사람이 행복하려면, 자신의 마음가짐 상태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와 이미 지나간 과거가 아닌, 현재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더이상 내가 과거에 했던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과거에 내가 행동했던 건, 그 당시 나름의 최선이었기에 그리 선택했던 것이며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결과이므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미래를,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구태여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매우 많지만, 되려 마음은 평안하다. 공부도, 브런치도, 이직도, 그리고 내 커리어도. 어느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하는 데 까지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야.


사람이 참 간사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 그렇게 3월초 퇴사할 이유를 고르고 쟀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또 그럭저럭 다닐만 해서 묵묵히 일하는 중이다. 특히 요새 이력서를 쓰면서 더욱이 체감이 되었다.


월급 : 이 정도 월급 주는 회사는 흔치 않잖아? 나 다시 중고신입으로 돌아가면 거의 연봉
         1,000이 깎일텐데.. 월급명세서 받아보고 현타 느끼지 않을 자신은 있을까?
기업문화 : 여기 임직원이 평가하는 회사 리뷰는 최악이네 기업문화가 뻔히 보이잖아?
직무 : 그래도 지금 돌고 돌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다른 일 할 수 있겠어?


등등... 최악(같아 보이는?) 회사와 비교하니, 우리 회사가 차악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항상 매번 이런 식이었다. 처음 이직을 고민하고 있을 때도, 초기에는 불타올랐다가 중간부터는 모종의 이유로 회사에서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잔뜩 드는 것이다. 이러다 또 금세 시간이 흘러가고, 그러면 또 나는 과거의 나에게 자책하고..(왜 그때 더 열심히 하지 않았던거야?) 그래서 숨고르는 이 상황이 마냥 반갑지는 않다. 덜 스트레스 받지만, 나중에 더 스트레스 받을 상황이 올 걸 알기에 그렇달까?


직장인의 가슴 속에는 사직서를 하나씩 품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입밖으로 '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를 말하고 싶은 맘에 입이 근질근질거리지만 준비가 되지 않아 참는 중이다. 퇴사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다음 거처가 없다면 당분간 쌩 자연인인 상태로 살아갈 마음가짐이 되었는지, 나를 증명하는 수단(회사) 없이 오롯이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지, 당장 계좌에 파란불만 들어와도 쿨하게 넘길 수 있는지 말이다. 요새 신입들은 입사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렇게 힘들게 준비를 하고 나서도, 퇴사하는 것도 어렵다. 무지성 퇴사를 지르는 것도 엄청 큰 용기가 동반된다. (혹시라도 하셨다면, 큰 박수를 드립니다. 부러워서요.)


출처 : pixabay geralt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게 있고, 행복하면 또 고통이 따라오고, 행운이 생기면 불행 역시 같이 온다. 우리 삶은 언제나 이렇게 사이클로 흘러간다. 한창 바닥을 칠 때는 저세상 우울이 나를 사로잡았지만 지금은 또 그럭저럭 하루를 견딜만 하니, 이거야 말로 삶의 반증이다.


나는 여전히 뭐해먹고살지? 라는 고민을 계속하고, 하루하루 불안하며, 출근준비와 동시에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극예민의 상태로 에너지를 쏟아내는 건 여전하다. 요새는 집에만 오면 바로 거의 기절 직전이라 이러다 운동 안하면 정말 큰일나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마지노선까지 온것 같지만. 당분간은 회사 욕도 줄이고, 문제는 많고 넘치지만 꼬박꼬박 월급을 선사하는 데 감사하며, 퇴근하고 발 닿는대로 이직 준비나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지금 용기를 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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