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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원석 May 17. 2024

'퇴사할 타이밍'이란 존재하는가?

그만둘 수 있는 용기


요새 이직 준비를 활발히 하는 중이다. 퇴근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꾸역꾸역 작성한다. 입사하면 끝일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이제는 이직의 시대란다. 갓 입사해서 평생직장에 몸담은 거라 이제 나는 됐다!라고 생각했던 게 귀여워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때의 나를 보면 한마디 해주고 싶다. 너, 경력관리는 좀 열심히 하렴.


3년 차, 참 애매한 경력이다. 중고신입으로 지원하자니 나이가 이제 3자다. 경력으로 가자니 조각경력이라 쓰기가 참 애매한 처지다. 지만 언제까지 탓, 탓, 그놈의 탓만 할 수 없어 오늘도 즐겨찾기 해놓은 채용사이트를 전전한다. 이 사이트들은 도대체 언제쯤이면 쿨하게 회원탈퇴를 할 수 있을까?


최근 퇴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퇴사, 이직, 창업 등의 단어로 자연스레 눈이 간다. 도서관에서 어떤 책이 있을까? 싶어 눈을 돌리다 '퇴사학교'라는 책을 발견하였다. 대충 눈으로 훑어보니 퇴사학교에 입학하여 현재 상태를 진단하고, 어떤 식으로 효율적으로 퇴사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이거 완전 나한테 정말 필요한 얘기잖아? 당장 대여해 읽기 시작했다.


특히 도입부에 퇴사를 하고 싶은 범위를 7가지로 정의한 게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 아래 이미지와 같다.

먼저 적성, 성장, 시간은 비교적 개인의 통제가 가능한 부분이며, 선 아래는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조직적인 부분이다. 중간에 놓인 관계는 위와 아래 모두 해당되는 요인이다. 그간 이런저런 이유로 퇴사할 이유만 찾고 있었는데,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요소였다.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아닌 것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새로운 대안을 찾아보는 것이다.


물론 딱 어느 하나가 딱 원인이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특히나 이 중에서 내가 요새 느끼는 감정은 아랫부분에 위치한 요인들이었다. 공허함. 뭘 해도 의미가 없고 재미가 없다. 일을 하면서 어떤 보람을 느낀단 말인가. 내가 하는 일은 경력이 된단 말인가? 조각경력을 갖는다는 두려움의 씨앗은 한 없이 커져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결국 조직 내에서 뭘 해도 부질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순간이 쌓여, 어느새 거울을 보니 동태눈깔을 장착한 지친 내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현 직장에 오래 있지 않는 이상 나의 커리어들이 존재감을 가질 수 없다는 불안이, 최종적으로는 막막한 미래 속 내 자리는 없다는 공허함까지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안주 역시 나의 퇴사 요인중 하나이다. 주변만 봐도 자기 발전을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며, 다들 쳇바퀴 굴러가듯 일상을 보내는 것 같다. 개인이 발전이 없고, 회사가 발전이 없어  남아있는 연료를 소모만 하는 상황처럼만 보였다. 언젠간 10년 뒤 내 모습이 옆자리 과장님이라고 생각하니 나의 미래가 깜깜해졌다. 사실 다른 것 보다도 10년 뒤에 내가 저 자리에 있을지가 의문스러워졌다. 회사의 경영악화, 날로 똑똑해지는 AI의 발전, 나보다 더 똑똑한 후배들 등등.. 이런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해 다시 또 '이만하면 이 정도 회사는 나쁘지 않지.'라고 스스로 날개를 꺾어 안주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 


마지막 문화. 사실 라떼 시절을 얘기하면 끝이 없는 것이 문화적 요소가 아닐까 싶다. 당장 부장님 세대만 봐도 회식 때 술 꺾어 마시는 게 웬 말이냐! 싶을 정도로 그걸 자랑이라고 얘기하는 스토리를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다. 책에서도 권위주의, 집단주의, 그리고 보상심리를 얘기한다. 내가 상사고 너는 부하라는 권위주의, 남들이 하란대로 하지 않으면 눈밖에 나는 집단주의, 마지막으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꼰대가 되어버리는 보상심리까지. 종종 친구들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얘기를 하면, 넌 정말 답답~한 회사를 다니는구나?라는 대답을 늘 들을 정도로 꽤나 닫혀있는 회사에 재직 중임을 느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이 맞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지만, 싫은 사람은 나가면 그만이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만 돌아간다. 회사의 어느 중요한 위치더라도 짧게는 하루, 길면 일주일 동안 삐걱거릴 뿐 어찌어찌 잘만 돌아가는 게 회사 아니던가. 고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용기, 아니 그전에 회사를 때려치울 수 있는 용기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 돌아와 제목에 대한 답을 내리자면, 퇴사할 타이밍은 항상 존재함을 깨달았다. 애당초 퇴사할 타이밍이란 건 없다. 물론, 더 좋은 오퍼와 내 몸값이 최대치였을 때 이동했으면 한없이 좋았겠지만, 이미 후회해 봐야 늦다. 이렇게 된 이상, 진퇴양난의 마음으로 더 늦었다고 땅을 치고 후회하기 전에 움직이는 게 현명하다. 내가 왜 퇴사하고 싶은지를 잘 판단하고, 현재 나의 경력과 계좌상태 등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어느 조건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마지노선을 정하고, 될 때까지 원서 접수하고.. 나의 조그만 바람이라면, 이 브런치북이 끝나기 전에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길, 단지 그뿐이다. 나의 자그마한 바람을 이 글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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