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의학자 이제마는 사상의학(四象医学)을 창시해 사람의 체질을 총 네 가지로 나누었다.
태양, 태음, 소양, 소음으로 나누고 이 네 가지 사상 체질에 따라 내부 장기의 기능, 마음의 욕심, 타고난 성향과 재주, 몸의 형태와 기운의 형상 등이 다르다고 구분 지었다.
난 이 네 자기 체질 중 소음인에 속한다. 하체가 발달하여 엉덩이가 크고 허벅지가 굵으며 상대적으로 가슴은 빈약하고 어깨가 좁다.
젊은 시절 이런 소음인의 신체적 특성 때문에 난 누구나 즐겨 입는 청바지 대신 늘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 하필이면 네 가지 체질 중 왜 소음인으로 태어났는지 태생을 원망한 적도 있다.
엉덩이가 작고 두 다리가 가늘어서 청바지를 입은 여자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날씬한 하체는 내 젊은 시절의 로망이었다. 청바지를 입은 예쁜 뒤태는 마흔 넘어서까지 남의 것이려니 생각하고 살았다.
1989년 중학교 2학년 때 변진섭의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라는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난 이 두 가지 모두 해당이 안되었는데 특히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라서 딱 내 학년부터 커트라인에 걸려 실행한 교복 입기가 나에게는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노래 가사에 등장할 만큼 청바지는 청춘의 상징이고 멋의 대명사이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엔 브랜드 청바지를 몇 개 가지고 있느냐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랑거리였다. 그 당시 유명한 브랜드는 닉스, 리바이스, 게스 등이었는데 신상인 제품들은 10만 원이 넘었다. 별 다를 게 없는 청바지인데도 비싼 신상을 입은 친구들의 엉덩이는 더 도드라지게 멋져 보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뱅뱅이라는 브랜드로 청바지를 출시했는데 당시 인기 가수였던 전영록이 모델을 하면서 국민 청바지로 등극하게 되었다. 강남에 뱅뱅 사거리라는 이름이 생길 정도로 청바지 하나로 유명한 기업이 되었다.
난 허벅지와 엉덩이가 큰 신체적 조건 때문에 청바지 입는 게 부담스러웠다. 이러한 체형의 단점을 일찍이 깨달아 부모님에게 비싼 청바지를 사달라고 조른 적이 없으니 굵은 허벅지가 효녀라고 해야 할까?
어쩌다 남들 입은 모습이 예뻐 보여 내 몸의 구조적 단점을 망각하고 청바지를 사 입으면 굵은 허벅지와 큰 엉덩이 때문에 바지가 꽉 끼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무릎까지는 무사히 올라오다 허벅지에서 걸리는 걸 간신히 바지를 올리고 나면 바지도 내 몸도 터질 거 같았다. 들숨 날숨조차 힘들어 이 불편한 걸 왜 사 입었을까 금방 후회를 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상체는 빈약하고 하체는 풍만하다 못해 과하다 싶어 어찌나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너무 균형이 안 맞아 얼른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청바지 입기를 포기했다. 그냥 어린 시절부터 치마를 즐겨 입을 수밖에 없는 신체 구조를 가졌으니 <난 치마가 어울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노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내 스타일이라는 걸 고수했다.
사십 대에도 여전히 청바지는 내겐 그림의 떡과 같은 넘사벽이었다. 같이 일하는 중국 친구가
“넌 바지를 왜 안 입어? 난 너 바지 입은 걸 한 번도 못 본거 같아. 겨울에도 이렇게 치마만 입고 다니면 안 추워?”
“하하. 괜찮아. 치마가 여성스럽고 예쁘잖아. 난 추운 거는 참을 수 있지만 예쁘지 않은 건 못 참겠어.”
여기에서 예쁘지 않은 거란 허벅지가 굵어 슬픈 내 모습을 뜻하는 숨겨진 의미를 그 친구는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몇 달 전 코로나로 지친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옷장을 정리하다가 서랍에 쑤셔 박힌 청바지 세 벌을 발견했다. 세 벌의 청바지는 당시 내가 입고 싶었던 색깔과 디자인이라 주저하지 않고 구매했지만 내 것이 아닌 딸아이를 위해 산 것이다. 내 몸에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딸의 맞춤 사이즈로 구매했기에 그냥 바라보는 걸로 대리만족을 하며 아이가 입은 걸 보고는 < 예쁘다>를 연발했었다.
그 당시 딸아이는 청바지를 입혀 놓으면 딱 보기 좋은 정도의 몸매를 갖고 있었는데 점차 살이 찌더니 몇 번 입지도 못하고 옷장에 묵히게 되었다. 청바지는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깨끗하고 빳빳한 게 요즘 입고 다녀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세월의 타격에서 벗어난 디자인이었다.
아까웠다. 아무래도 저 청바지를 내 몸에 맞출 수는 없고 내 몸뚱이를 저 청바지에 맞춰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호기로운 배짱으로 딸아이 청바지를 입어야겠다는 시동이 발동했을 때 난 이미 청바지를 살 때보다도 3킬로가 더 쪄 있었다. 코로나가 갑자기 우리에게 찾아와 인생을 뒤흔들어 놓은 것처럼 이번엔 한 번뿐인 내 인생을 스스로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운동이라곤 걷기밖에 하지 않던 내가 열정적으로 운동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하루에 만보 이만보를 거뜬히 걷던 단련된 체력과 굵은 허벅지 덕분인지 테니스, 배드민턴, 요가 등 일주일 내내 운동 스케줄로 채워도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유튜브의 홈트레이닝까지 날마다 열정적으로 식구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운동에 매진했다.
코로나를 안식년처럼 받아들여 늘어져 있던 내 몸에 새 활기를 불어넣어주니 살은 조금씩 빠지고 몸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단단해졌다. 출렁거리던 살과 잡아당기면 물컹거리던 것들이 점차 사라져 갔다. 물론 식이요법도 같이 병행했다. 라면과 빵을 끊고 샐러드 위주의 식사와 물을 예전보다 세 배는 더 많이 마셨다.
평소에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말을 쏙 감추고 탄수화물은 하루에 한 끼만 섭취했다. 젊을 때 같으면 중도에 몇 번이나 포기했을 터이다.
쉰 살을 앞두고 있는 내게 더 이상 청바지를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안 올 수도 있다는 조급함이 생기니 꼭 저 바지들에 내 몸을 맞춰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하루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내 생에 이렇게 진심인 다이어트는 처음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던가. 드디어 청바지가 들어갔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한 지 두 달이 지난 후부터 청바지 세 벌 중 두 벌이 몸에 맞았다. 아니 내가 청바지 사이즈에 내 몸을 맞췄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부동산 일을 하는 내게 집 계약을 몇 채 한 것보다 더 기쁜 마음이 들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은 게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까지 했다.
무엇이 날 이토록 간절하게 청바지를 입고 싶게 했을까? 청바지는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옷이라며 젊은 시절 아예 내 몸에서 거부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청바지만큼 젊어 보이게 하는 옷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청춘일 때는 뭘 입어도 젊음의 에너지가 발산되어 빛났다면 이제는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흘러가는 세월의 그림자라도 붙잡아 둘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청바지는 아직도 내 몸에 젊은 열기가 남아있다는 증표로 보여주고 싶은 하나의 표상이었다. 신은 어찌하여 몸뚱이는 시간의 흐름 따라 노화시키고 마음은 여전하다는 착각의 늪속에 빠져 허우적대게 만들었는지.
여전히 맞지 않는 청바지 한 벌이 남았다. 하지만 그 청바지에 더 이상 내 몸을 맞춰야겠다는 마음은 안 든다. 유튜브를 보면서 요즘 대세가 애플힙과 단단한 허벅지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내 관건은 허벅지와 엉덩이를 지키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다. 하체가 점점 부실해지는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나마 소음인으로 태어난 걸 감사히 여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