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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 Oct 02. 2021

마흔일곱 진정 꿈꾸기 좋은 나이

콜라병 몸매를 꿈꾸다


당신이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남들에게 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매번 새로이 발견할 용기를 잃지 않은 것이다. 서른이 넘도록, 심지어 여든이 넘어서도, 아직 매 순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평생 열어놓을 줄 아는 지혜롭고 용감한 존재가 아닐까.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143p, 정여울



꿈꾸는 자


나는 때때로 내 나이를 잊어버린다. 아니 일부러 내 나이가 인생 어디쯤에 와 있음을 가늠하고 싶지 않아 잊은 척하는 것이다. 얼마 전 콜라병 몸매가 목표라는 나에게 동생이 돌직구를 날렸다.

"언니, 곱게 노망 들었구나."

그렇다. 이제 내 나이는 콜라병 몸매를 꿈꾸면 노망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이런 소리를 듣고 내 꿈이 허무맹랑한 꿈이었나 싶어 큭큭 웃음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이 걸 꿈으로만 끝내고 싶지 않은 욕심이 들기도 한다. 다만 젊은 시절보다는 훨씬 회복 탄력성이 낮아진 몸에게 더 많은 시간을 베풀어주어야 할 숙명 같은 연배가 되었을 뿐이라고 위로하고 싶다.

동생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꿈에 대한 미련을 접지 않았다. 그래야 나에 대한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음을 확인하는 걸음마라도 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상실한 젊음 앞에서


상실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게 사랑하는 사람, 목숨, 가정, 아니면 돈과 같이 중요한 것들을 잃는 경우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상실이 주는 배움을 통해 어느 순간 당신은 삶에서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코로나로 인해 나에게 '시간'이란 여유가 주어지니 한참 동안 나를 들여다볼 사유가 생겼다. 살면서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허둥댈 줄은 짐작도 못했던 일이다.

젊음을 상실했다는 기분이 하필 마흔여섯이나 되어서야 찾아오다니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나 또한 속 알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중년이 되었다는 걸 실감하고는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마음부터 세포들이 노쇠해져감을 인식하니 몸도 저절로 연약해지는 것 같았다. 잠깐 동안 젊음을 상실했다는 우울함에 빠져 팔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되는대로 살았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어쩔 줄 모르는데 그까짓 젊음 좀 상실한 게 뭐 대수냐 싶었다. 이미 진작부터 젊음은 내 것이 아니었는데 일에 빠져 늙어가는 것도 눈치 못 챘던 내 둔함 앞에서 더 아둔해지기라도 결심한 것처럼 살았더니 날이 다르게 몸이 무거워졌다. 저울의 눈금마저 눈치 없이 쑥쑥 올라가기 시작했다. 두 번의 임신 때를 제외하고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찍은 날 내 배는 태평양 바다처럼 둥글게 원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꽃중년으로 늙어가야지


내가 넋 놓고 있는 동안 주변 사람들 또한 확찐자 숫자에 합류하기 시작했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 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람들은 얼음물로 샤워를 하고 정신이 번쩍 든 것 마냥 운동을 한다고 다들 난리가 났다. 나도 확찐자 대열에 섰다가 다시 얼떨결에 운동하는 군중들 틈에 끼여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마구잡이식 여러 운동을 시작했다.

막상 운동을 시작하고 살이 빠지는 걸 거울 앞에서 확인하고도 조금씩 줄어드는 몸무게에 신이나 디지털 저울의 숫자가 튀어나오게 확인하는 날들이 반복되니 욕심이 생겼다. 내 몸매에 자신 있는 꽃중년으로 늙어가고 싶었다. 사실 마흔이 한참 넘도록 먹고사는 일에 바빠서 내 몸매가 드럼통이 되는지 태평양이 되는지 신경 안 쓰고 그저 몸에 옷을 맞춰 입는 세월들에 익숙했더랬다. 그래도 "그저 존재 자체로 빛이 난다는 젊음에 대한 오만"으로 버텨왔던 게 더 이상 핑계댈 무기가 없어지니 이젠 뭘로도 무마가 안됐다.

이젠 상실한 젊음 앞에서 마음도 서러운데 몸마저 티를 낼 건 없지 않을까 싶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 보면 그깟 세월, 한 번쯤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



하고 싶은 일이 왜 자꾸 늘어나지?


올 해로 마흔일곱이 되었다. 여태까지 살아온 시간 가운데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노쇠했음에도 하고 싶은 일은 가장 많다.

한창 젊은 시절엔 인생의 참맛을 몰라 허둥대며 진정 하고 싶은 일을 못 찾았고, 결혼 후에는 새로운 동반자와 더불어 탄생한 아이들에게 맞춰 사는 삶에 정신을 집중하느라 자아를 돌 볼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제 인생을 조금 알 것 같은 나이가 되니 나에게 집중한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정신은 이제야 조금씩 무르익기 시작하여 뭘 좀 해볼까 싶은데 몸은 어느새 무릎 관절이 저린 나이가 되고 보니 인생은 참 반대의 횡보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가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갈 작정을 하고 달리기를 시작한 것처럼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진 마흔일곱부터의 인생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 나도 인생 운동을 하나 만들어야지 싶었다.



달빛 아래 계단 오르기


요즘 나의 하루 일상의 마무리는 달빛 아래 계단 오르기이다. 작년 이맘때 1층부터 29층 우리 집까지 계단 오르기부터 시작하여 잠시 유튜브를 따라 하는 홈트로 전환했다가 얼마 전부터 갑갑한 공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다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작년 처음으로 계단 올라갔던 날을 기억한다. 29층까지 처음 올라가고 며칠 동안 다리가 후들거려 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 작년엔 걸어 올라가는 것만도 벅찼던 체력이 어느새 시나브로 단련이 되었는지 이제는 가볍게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루 동안 복잡했던 일상들을 확 집어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고단했던 상념들이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더욱이 요즘 내가 오르는 계단은 새하얀 벽면을 옆에 끼고 오르는 아파트 계단이 아닌 자연을 벗 삼을 수 있는 단지 중앙에 자리 잡은 계단이기에 달밤에 체조하는 그런 기분이 든다. 밤 10시 전에는 양쪽으로 갈라진 계단 사이로 작은 폭포 같은 물이 쏟아져서 촬촬촬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인생무상이 되어 버린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라


남은 일생에 한 가지 고정하여 집중할 것이 있다면 이제 운동이라 답하겠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걷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땀 흘리는 운동에 집중하다 보니 왜 그렇게 사람들이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는지 알 것 같다.

나이는 세월 따라 자연스럽게 켜켜이 늘어가는데 하고 싶은 일도 더불어 많아지니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 앞에서 숨 한 번 고르고 생각해도 체력만이 답이다.

나보다 앞서 세월을 살다 간 현인들의 말은 언제나 옳다.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라고 '몸은 늙지만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이 진리 앞에 주눅 들지 않고 마흔일곱 이제야 생겨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켜봐 주는 단 하나 달빛과 함께 오늘도 계단 오르기는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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