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페르 아우구스투스의 역사 모처럼 찾은 어머님 댁 주변에서 돌연변이 튤립 ‘영원한 황제(Semper Augustus)’를 만났다. 지금이 16세기 네덜란드였다면 나는 이 꽃의 구근을 여러 개 샀으리라. 지금으로 따지면 강남의 고급 주택 한 채를 사고도 남을 '셈페르 아우구스투스'이기 때문이다.
튤립은 원래 중앙아시아의 꽃이었다. 샤를 드 레클루즈라는 식물학자가 1593년에 터키에서 처음 가지고 오면서 그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는 튤립의 연구를 통해 돌연변이종을 개발한다. 당시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시기로 돈이 있으면 신분 상승이 가능한 시대였다. 열심히 모은 돈을 돌이변이 종인 '셈페'로 바꾸면 귀족이 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이는 관상용을 넘어 투기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1360년대 이러한 현상을 '튤립 마니아(Tulipomania)’라고 부른다. 튤립 마니아가 넘쳐나면 어떻게 될까? 희소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꽃이나 구근의 구매가 줄어든다. 오늘날의 코인 시장처럼 가격이 폭락하게 되자 정부에서 이를 조정하게 되면서 돈 대신 어음을 주고 비싼 가격에 튤립을 산 사람들은 그야말로 대혼란을 겪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튤립 버블’이라고 부르는데 현제의 자본주의 경제 단면을 보여 주는 초기 사례로 이야기되고 있다. 영화 '튤립 피버'는 화가의 이야기를 통해 16세기 네덜란드 튤립 열풍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 식물을 키운다는 건 여간 부지런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 루틴에 맞춰 식물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 맞게 나의 루틴이 정해지니 애정과 성실함이 없고는 꽃 한 송이 틔울 수가 없다.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는 우리 집에서 두 번째로 부지런한 사람(엄마를 따라갈 수 없다)이었는데 퇴직을 하고는 매일 새벽 여러 식물들에 물을 주고 거름을 바꾸거나 접붙이기, 약주기 등을 했었다.
사서 먹으면 될 것을 뭘 그렇게 애지중지하면서 시간을 쏟는지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상래야, 아빠 상추 많이 자랐는데 뜯어 놓을까? 마트에서 파는 것하고는 차원이 달라. 얼마나 연하고 부드러운지 모른다. 가지도 잘 컸고 복분자도 많이 달렸는데 아빠가 따 놓을게 가져갈래? *서방 당귀 좋아하던데 그것도 향이 진해. 너 좋아하는 호박잎 쪄 놓을 테니까 시간 날 때 들렀다 가. 아니면 저녁에 와. 아빠가 삼겹살 사다가 구워줄게."
집집마다 화단 한편에 심어져 있는 튤립을 보며 결국엔 아빠 생각이 났다. 시댁 내려오기 전날, 엄마와 세 자매는 아빠를 만나러 다녀왔다. 매번 꿈속에서 침대맡에 앉아 심통 맞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아빠가 어쩐 일인지 그날 새벽엔 나타나긴 했지만 얼굴을 남기지 않았다. 아빠 꿈을 꾼 것은 분명해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시간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자식들이 시집가고 난 후의 부모는 애정을 쏟고 여전히 돌볼 무엇인가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없는 요즘은 흔하게 먹던 삼겹살 먹을 일이 귀해졌다. 삼겹살은 아빠표 상추와 당귀를 뜯어다가 아빠가 구워줘야 맛있는 음식인데 며칠 전, 오랜만에 가족이 외출해 삼겹살을 먹었는데 영 그 맛하고는 달랐다. 없어지고 나서야 살아나고 깨어나는 기억들이 있다. 그제야 귀함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윈 올라프 <삶, 어머니를 위하여> 영상작품
메멘토 모리, 아모르파티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때에 누구나 죽음을 맞이
한다.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삶은 이미 정해져 있을 테니 되는대로 살다가 사라지면 그만인 쪽을 선택하거나 한 번 주어진 생이니 기왕이면 뜨겁게 사는 쪽을 선택하거나.
다음 생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래서 내 선택은 죽음을 기억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뜨겁게 껴안아 힘차게 끌고 나갈 생각이다.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며 열정적으로 살다 가고 싶다. 그러니 오늘, 지금 즐겁지 않을 수가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