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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화가, 에코백의 추억, 툴르즈 로트렉

라 굴뤼’가 인쇄된 가방에서 시작된 파리의 밤 그림 읽기

by 김상래

겨울 공기가 다시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파리가 생각납니다. 툴루즈 로트렉의 에코백을 메고 센강의 찬 바람을 맞으며 오르세 쪽으로 걷던 그 겨울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그날 내가 만나러 간 로트렉은 공연이 끝난 뒤 조용히 남는 얼굴들을 오래 바라보던 화가였지요. 그래서인지 이제 막 막이 내린 뒤의 장면부터 떠올리게 됩니다.

밤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하나둘 꺼지면 그제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박수도 웃음도 멎은 그 순간, 로트렉의 시선은 오히려 더 또렷해집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나는 그의 작품들은 바로 그 무대 뒤의 시간을 그린 그림들입니다.


오르세에서 만나는 로트렉

로트렉(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1864~1901)은 눈부신 무대보다 무대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더 오래 바라본 화가입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들 앞에 서면, 캉캉 춤과 붉은 풍차보다 먼저 조용한 방, 침대, 소파 같은 사적인 공간이 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방 한가운데 침대가 놓여 있습니다. 하얀 시트와 붉은 이불 사이로 두 사람의 얼굴만 살짝 드러나 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의 《침대(Le Lit)》가 바로 그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두 인물의 몸은 이불 속에 거의 다 숨어 있고,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눈과 이마, 코와 입뿐입니다. 긴 하루 일을 마치고 깊이 잠든 얼굴이지요. 둘은 서로를 향해 살짝 마주 본 채 편안히 누워 있습니다. 화려한 조명도, 관객도, 음악도 없습니다. 그저 ‘일’이 모두 끝난 뒤 잠시 허락된 짧은 쉼처럼 느껴집니다.

▲《침대(Le Lit)》약 1892년/ 유채, 약 54 × 70.5cm ⓒ 오르세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이 그려진 곳은 당시 파리의 밤 문화를 상징하던 유흥가였습니다. 로트렉은 그곳을 드나들며 여인들이 손님을 맞기 전, 또 손님이 돌아간 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여러 장면으로 옮겨 그렸습니다. 《침대》는 그 연작 가운데 한 점입니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두 사람의 친밀함이 보이고, 그 다음에는 피로, 안도감, 잠들기 전의 나른함 같은 감정이 서서히 느껴집니다. 로트렉은 자극적인 장면 대신 말없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순간을 선택했지요. 크기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세로 50cm 남짓, 가로 70cm 정도 되는 화면 안에 하얀 시트와 붉은 이불, 두 사람의 얼굴만이 고요하게 떠 있습니다.


다음으로 볼 작품은 《루스 – 붉은 머리 여인의 목욕(Rousse, La Toilette)》입니다. 제목에 붙은 ‘루스’는 붉은 머리 여인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그림 속 여인은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등을 돌린 채 바닥에 몸을 낮춰 쪼그려 앉아 있습니다. 어깨와 등, 허리선이 꾸밈없이 드러난 뒷모습 뒤로 바닥에는 수건이 어지럽게 놓여 있습니다. 막 씻으려고 준비하는 중일 수도 있고, 이미 목욕을 마치고 몸을 말리던 참일 수도 있겠지요. 화장을 지우고 물로 땀과 피로를 씻어 내리며, 온종일 몸에 달라붙어 있던 하루를 슬쩍 벗어 두는 순간입니다. 장면 속 여인은 그림을 위해 예쁘게 차려입고 포즈를 잡은 모델이라기보다, 온종일 일하고 난 뒤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은 한 노동자의 몸에 가깝습니다.


양팔을 무릎에 걸친 채 앉아 있는 모습만 보아도, 하루 종일 서서 춤추고 사람을 맞았을 그 피로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꾸밈없는 장면처럼 느껴지지요. 어떤 이들은 이 붉은 머리 여인이 인상파 화가들의 모델이자 스스로도 화가였던 수잔 발라동일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드가와 로트렉의 그림에 여러 번 등장했고, 화가 위트릴로의 어머니이기도 한 인물이지만, 누구를 그린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정작 중요한 건 이 사람이 정확히 누구냐가 아니라, 얼굴 한 번 보이지 않는 뒷모습만으로도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는 점입니다. 로트렉은 관객과 눈을 맞추는 화려한 순간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뒤돌아선 모습에서 그 사람의 삶을 읽어내려고 했지요.

▲《루스 – 붉은 머리 여인의 목욕(Rousse, La Toilette)》1889년 종이에 유채, 67 × 54cm ⓒ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물랭루즈와 포스터

이제 시선을 미술관 밖으로,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로 내려가 볼까요. 붉은 풍차가 천천히 돌아가고, 불빛이 반짝이는 곳, 바로 물랭루즈입니다. 1889년, 에펠탑이 세워지고 만국박람회로 파리가 떠들썩하던 해, 언덕 아래에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 문을 열었습니다. 붉은 풍차를 간판으로 내건 카바레, 물랭루즈였지요. 이곳은 술잔을 부딪히고 무대를 바라보는 데서 끝나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잘 차려입은 신사부터 시골에서 막 올라온 노동자, 동네 예술가와 여행자까지 서로 어깨를 스치며 한밤을 함께 보내던 공간이었지요.


입장료도 그리 비싸지 않아서, 돈이 많든 적든 누구나 표 한 장만 사면 문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면 신분과 직업은 잠시 내려놓고, 같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음악과 술, 수다를 함께 즐겼지요.


이곳의 밤을 가장 뜨겁게 달군 건 무엇보다 ‘캉캉 춤’이었습니다. 여성 무희들이 발을 번쩍 들어 올리고, 레이스가 풍성한 속치마를 힘껏 휘날리며 쉴 새 없이 회전합니다. 조금은 노골적이면서도, 쌓인 답답함을 한 번에 털어내는 듯한 이 춤을 보고 있으면 19세기 말 파리에서 막 피어나던 새로운 자유의 공기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로트렉은 물랭루즈를 드나들며 무희들을 수없이 그렸고, 그 중심에는 늘 캉캉의 스타 라 굴뤼(La Goulue)가 있었습니다. 1891년 그는 라 굴뤼를 위한 대형 석판화 포스터 《물랭루즈: 라 굴뤼》를 제작합니다. 치마를 부채처럼 활짝 펼치고 춤추는 라 굴뤼의 동작, 아래쪽에 그림자처럼 늘어선 관객들의 실루엣, 최소한의 글자만 남겨 둔 화면 구성 덕분에, 이 포스터는 글이 빽빽한 광고지가 아니라, 한 장의 강렬한 그림처럼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은 물랭루즈에 가기 전에 이미 거리의 벽에서 공연의 분위기를 먼저 맛보았습니다.

▲라 굴뤼1891년 물랑루즈의 유명한 포스터, 라 굴뤼 ⓒ 위키미디어 공용


이듬해에는 샹송 가수 아리스티드 브뤼앙을 위한 포스터가 뒤를 잇습니다. 검은 망토와 넓은 모자, 붉은 목도리를 두른 그의 상반신을 화면 가득 키워 넣고, 아래쪽에 이름만 크게 적은 단순한 구성입니다. 멀리서 보아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얼굴 덕분에, 브뤼앙은 말 그대로 "포스터가 만든 스타"가 되었지요. 라 굴뤼 포스터가 공연장의 열기를 전했다면, 브뤼앙 포스터는 한 인물을 시대의 상징으로 굳혀 놓았습니다. 로트렉은 이렇게 포스터를 통해, 벽에 붙은 종잇장이 단순한 광고가 아니라 도시와 시대를 대표하는 얼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로트렉의 생애와 시선

로트렉은 밤을 그린 화가였습니다. 물랭루즈의 소란스러운 홀과 분장실, 카바레의 좁은 복도와 계단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1864년 프랑스 남부 알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혈통도, 집안도, 어린 시절 환경도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열세 살 무렵 두 번의 다리 골절을 겪으면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성장판이 망가지면서 몸은 자라는데 다리는 더 이상 크지 않았고, 결국 그는 평생 작은 체구와 뒤틀린 다리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사냥과 승마를 즐기던 귀족 소년이 "귀족의 삶"에서 비켜나게 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든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그림이 들어왔습니다. 로트렉은 자신이 무대 위에 설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대신 그는 무대와 객석, 복도와 분장실, 뒤편 계단, 구석 테이블까지 로트렉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습니다. 남들이 무대만 바라볼 때 그는 사람을 보았고, 공연의 내용보다 그 장면을 버티고 있는 얼굴과 몸짓을 더 오래 기억했습니다.


그의 삶 곁에는 늘 술과 고독이 따라붙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안고 살아야 했던 신체적 콤플렉스, 귀족 가문 안에서 느꼈을 이질감, 몽마르트르 밤거리에서 마주친 수많은 얼굴들이 그를 술로 몰아넣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그는 그 자리에서 펜과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던 밤의 노동, 무희와 광대, 손님과 주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남겼습니다.


로트렉은 서른여섯 살에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19세기 말 파리의 밤을 또렷이 떠올릴 수 있습니다. 붉은 풍차 아래로 모여들던 사람들,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춤추던 무희들, 웃음을 팔던 광대와 비틀거리며 돌아가던 손님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조용히 바라보던 작은 체구의 화가까지.


어느 겨울, 라 굴리가 인쇄된 검은 에코백을 들고 오르세 미술관을 걷던 때가 자꾸 떠오릅니다. 빨간 가방끈을 쥐고 로트렉의 그림 앞에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지요. 공연이 끝난 뒤 저 인물들은 어떤 얼굴로 밤을 마쳤을까, 그날도 조용히 상상했었습니다. 가끔 하루를 끝내려 불을 끄는 순간이면, 그때의 파리와 오르세 미술관 복도가 다시 불러지는 것처럼 마음이 천천히 그 겨울로 돌아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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