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으로

첫 만남

by 조용해

원래 누구 부러워하고 이런 성격 아닌데 내 인생에 누군가를 불꽃 튀게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아이를 가졌을 때 열 달간. 감기 기운이 있어서 한 알 먹은 감기약으로 혹시 임신기간과 겹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거의 노이로제 수준으로 아이의 건강에 대해 골돌 하던 기간.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어머니, 우리 엄마를 포함한 언니들 내 만만한 동창들까지 어머니란 이름으로 존재하는 모든 이들을 존경하고 부러워했다. 얼마나 훌륭하면 아이를 손가락 발가락을 다 열개씩 멀끔하게 낳아놓고 게다가 그 맑은 눈으로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옹알이까지 해대는 건강한 아이로까지 낳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무심히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을 보는 느낌은. 나라를 일군 무사.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부족의 운명을 책임지는 아마존의 여전사 바로 그것이었다. 실로 경이롭고 감탄에 마지하며 모든 어머니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우러러봤었다. 그 기간 동안은.


잠정적 딩크였던 우리 부부에게 탄생의 조짐이 보이던 날부터 신랑과 나는 아이의 태명을 '설마'에서 '행운이'로 부르며 조심스럽게 기뻐하고 있었다. 그동안 은근한 딩크의 조장이 사실은 아이를 원했지만 내 나이를 고려하여 실망의 싹을 자르고자 꾸몄던 남편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안건 '설마'가 우리 곁에 왔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렵풋이 확인한 날이었다. <설마>가 <행운>이 되던 날 그의 눈에 스치는 환희를 나는 찰나에 봐버렸던 것이다.


결혼이 늦었던 나는 아이에 대한 감흥이 전혀 없다가 어느 날 동생이 조카를 낳았다고 보러 오라길래 갔다가 나도 한번?을 다짐하며 그날 밤 신랑을 덮쳐 거사를 치른 후 물구나무서기 한판으로 그날의 난리부르스를 마무리하고 잊고 있었다. 아직 덜 자란 미숙함을 지닌 채로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제법 스스로에 대해 주제 파악이 잘 되어 있던 나와, 누군가는 한 남자를 사랑하면 그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데 나는 대신 그에게서 나의 아빠를 느끼며 그래서 그에게서 '내 아이의 아빠'의 이미지를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던 신랑에게 덜컥 닥쳐버린 그 사건. 설마 그날 밤 장난으로 시작했던 그 하루가...


임신테스트기의 두줄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나는 엄마가 됐다. 아이한테 좋지 않다는 것은 모조리 끊기 시작했다. 소주, 맥주, 치킨, 와인, 양주, 막걸리, 사케, 빼갈, 데낄라, 그랍빠, 커피, 파마, 염색, 매니큐어까지... 내가 기절하게 좋아했던 것들이었다.


우리 집에 이런 나 말고도 강적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건 바로 우리 아버님이셨다. 나야 고작해야 십수 년에 그것들에 미쳐있었던걸 끊었다면 아버님은 무려 오십 년 이상 그것 없이는 하루도 살지 않았던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이자 소일거리였던... 끽연가셨던 분이


신랑의

"아버지, 좀 있다 병원 가서 확인해 봐야 확실하긴 하지만 집사람이 아기를 가진 것 같아요."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결과도 확인하기 전에 그날 부로 담배를 끊으셨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노란 연기 자욱 때문에 1년에 한 번은 아버님 방만 도배를 새로 해야 할 지경으로 너구리 굴이던 그곳에 더 이상의 도배는 필요치 않았다.


모자수첩이라는 산부인과에서 익명의 산모들에게 배부되던 그 자그마한 낯선 수첩을 받아 들었을 때의 그 생경함이란... 그 낯섬이 무색하게 태초부터 임산부로 태어난 사람처럼 나는 임산부로서의 삶에 기대 이상으로 잘 적응해 나갔다. 각종 육아 서적은 물론 임산부라면 들어야 할 강좌들과 코스들을 꼼꼼히 섭렵해가며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산모교실에는 임산부 요가와 태아의 건강을 위한 여러 가지 강좌들이 있었다. 강좌를 듣던 어느 날 아기의 분만 과정을 보여주는 비디오를 보는 날. 중학교 때 성교육시간에 이미 봤었던 그저 그런... 어떻게 난자와 정자가 만나... 스토리가 끝나고 아이가 태어나는 산부인과 수술실에서 분만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며 하나둘씩 산모들이 눈이 붉어지더니 마지막 아이가 태어나는 장면에서는 다 같이 오열을... 강사님도 이 비디오를 보여주면 간간히 우는 산모님들이 있긴 했었지만 이반은 특이하게 오열이 작열이라며 호르몬 조절에 폭망한 우리반 우리들을 보며 난감해하셨다. 그냥 교육용 비디오일 뿐이었는데 눈물을 유발할만한 아무런 모멘텀이 없었는데도 심지어 음악도 없었는데... 우리는 모두들 한마음이 되어 우리에게 곧 닥칠 이 예언서를 보며 무서움반 경외감반으로 눈물을 터트렸던 것이다. 어쩜 좋아... 앞으로 이 애들이 애들을 잘 키울 수나 있으려나...


노산으로 이미 자연분만은 애저녁에 포기한 나의 분만기는 조금은 김 빠졌었다. 의사 선생님의 하나, 둘 , 셋을 따라 센 기억 바로 뒤에 이어 붙이기 한 장면처럼, 한 낯선(?) 처음 보는 아이가 내 가슴을 내 허락도 없이 당당하게 빨고 있었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어떠한 언질도 없이 벌어진 이 상황이 나만 이상한 채로 그렇게 얼떨결에 그 아이를 만났다. '가만... 네가 걔니? 설마...? 행운으로 와준? ' 그 정신에도 손가락과 발가락을 세어보려 했다. 왼손은 다행히 보여줘서 5개를 셀 수 있었는데 오른손은 저쪽으로 숨기고 있어서 볼 수가 없었다. 프로포폴의 약기운으로 시야가 흐려서 발가락은 저멀리서 잘 뵈지도 않았다.' 이녀석 나 닮아서 이토록 하체가 긴거야?...' 그 실낱같은 몸을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아서 아이의 양손과 양발을 내 눈으로 확인은 못한 채로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 음... 확인해야 하는데... 이렇게 잘 때가 아닌데... 내가'


내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던 나에게 그 무렵 적어도 하나의 존재의 이유가 설명되기 시작했다.


바로 내 눈앞의 이 아이.


그동안 짝짓기의 기능으로만 알고 있었던 내 모든 신체기관들이 사실은 이아이 하나만을 조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하나하나 그 참기능을 터득해가며 경탄에 신음을 내뱉었다.

쭉쭉빵빵이지 못할 바엔 왜 붙어있나를 의심케 하던 내 가슴도 참젖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몰랐잖아... 내 유두가 함몰유두가 아니어서 이 별거 아닌 우연으로 내 아이가 이토록 편안하게 모유를 먹을 수 있는 기특한 통로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우연인줄만 알았던 필연이 30년도 전에 우리 엄마의 빅 픽쳐로 나 갖난 아기때 지금의 나처럼 아기의 젖멍울을 꾹 짜줬었어서 가능했다는 이 오래된 이야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