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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향 Jul 08. 2024

40살의 내가 10살의 너에게

엄마기록탐구생활

10살의 리틀향에게


초등학교 3학년 때 9권의 일기장을 방금 다 보았어. 간간히 첫째 딸도 독자가 되어 함께 키득거리며 읽곤 했었지. 처음엔 공부를 해야 하는데 못해서 반성한다는 이야기가 반복되어 지루했다가, 또 어떤 날엔 거짓말로 쓴 게 너무나 티가 나서 웃기기도 했어.

내가 기억하는 10살의 나는 맨날 놀고 티비만 본 것 같은데 읽으면서 느낀 건 공부를 하든 안 하든 3학년의 너는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 봐. 공부를 잘해서 부모님과 친구들, 선생님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너. 계획과 꿈은 많지만 산발적인 호기심에 흐지부지되는 나를 반성하는 무수한 글들을 보니 말이야.

‘이젠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 그럼, 이 나이 먹은 만큼 행동을 조심스럽게 잘해야겠다.‘ (1993년 3월 6일, 나의 일기장에서 발췌)  

잊고 있었는데 이때의 내 삶은 녹록지 않았다. 순진하던 2학년과 달리 반 친구를 찍어가며 왕따를 시키던 아이들이 있었는데 내 짝꿍이 마음에 안 든다며 나더러 같이 놀지 말라고 했다. 나는 내 짝이기도 했고, 네가 뭔데 놀라 마라 하냐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놀다가 결국 같이 왕따를 당했다. 일기장을 보니 아이들이 괴롭힌 이야기들도 썼는데 그때 왜 담임선생님이 너를 지켜주지 못했을까 야속한 마음이 들었어. 엄마 걱정할까 봐 얘기도 못하고 정말 가기 싫었던 학교를 억지로 가던 여러 날의 네 모습이 떠올라 슬프고 또 마음이 아팠어. 봄 소풍 때 짝꿍이었던 친구랑 둘이서만 작은 돗자리에서 쓸쓸하게 먹었던 김밥이 아직도 어렴풋이 떠올라.


‘어떤 일이라도 정성, 희망을 다하면 무엇이든 결과가 나온다.’ (1993년 5월 8일)

그때 짝과 등하교를 함께하고, 도서관을 다니면서 힘을 냈던 것 같아. 초등학교 3학년부터 도서관회원증을 발급받을 수 있어서 매일 책을 읽든 안 읽든 출석하듯 대출한 책 제목을 적어 나가는 게 나의 낙이었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서 호소했던 기억도  나. 우리가 왜 그 아이 말에 휘둘려야 하는지, 죄 없이 돌아가며 왕따를 당해야 하는지 하고. 같은 편이 되겠다는 친구의 다짐을 받아내고서도 다음날 아이들의 마음이 변할까 전전긍긍했던 그때. 결국 우린 해냈고 우릴 괴롭혔던 친구 둘을 며칠 왕따체험 시키고 다 같이 사이좋게 놀았었지.

‘엄마도 아빠도 할아버지도 모두 공부해야 된다고 했다. 공부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우리를 바른 길로 가게 하시려고 하신다는 데 그것이 정말일까?’ (1993년 6월 8일)

여기에 대한 답도 너의 일기장에서 찾아볼 수 있었지. 바른길은 어디인지, 공부가 뭐길래 이토록 강조하는 건지 그때는 깊이 물어볼 새도 없이 그저 숙제하고 학교 다니기 바빴었지. 그렇지만 난 정말 궁금하고 답답했어.


‘시험은 뭐고 공부는 뭐냐? 어쩔 땐 괴롭고 울고 싶고 하지만, 누가 시켜서 하는 것 말고 내가 공부를 알아서 든든히 하면 눈물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1993년 11월 26일)

‘1994년 2월 14일, 이제 내일부터는 자신을 나답게 하여야겠다.’ (1994년 2월 14일)

눈을 감는 그날까지 우린 배우고 공부하며 살아갈 테지. 그땐 책으로만 배우는 줄 알았어. 따분하게만 느껴졌는데 내가 궁금해서 하다 보니까 정말 재미있을 때가 있더라. 그리고 그 재미를 따라가다 보면 나라는 무늬가 보이더라고. 나답게 라는 말의 깊이가 그때와 지금은 당연히 다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여정은 나답게 살기 위한 경험과 공부의 길이었던 것 같아. 나사용 설명서를 1/4 정도 읽은 느낌이랄까?  


엄마 글쓰기숙제해야 한다고 얼른 자라고 했더니 5살 둘째는 열한 시가 넘은 이 시간에도 안 자는데 10살 첫째는 잠들었네. 노곤했나 보다. 학교에 가선 수업 따라가고, 친구들과 잘 지내느라 신경 쓰고, 선생님 말씀 챙겨 듣느라 바빴을 테니. 집에 와서도 요즘 한참 푹 빠져있는 로블럭스 게임을 하기 위해 영어, 수학, 국어, 내일 학교 갈 준비를 했지. 변덕쟁이 엄마 눈치를 살피며 유튜브를 보거나 친구랑 게임할 생각에 꽂혀있는 나의 그녀. 9권의 일기장은 그때의 여리면서도 강단 있었던 내 영혼을 살피는 일이었던 동시에 그때의 나와 우리 공주 10살 인생의 고됨을 다시 한번 피부로 느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


훗날 아이가 자신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날, 그 무수한 빛과 어둠의 순간 나에겐 엄마가 있었지. 우리 엄마. 하고 가슴 든든하게 회상하려면 나는 어떤 말과 눈빛으로 아이를 대해야 할까? 나와 아이에게 꼭 필요한 지금의 공부는 무엇일지, 40살 내 마음의 일기장에 큰 질문을 하게 된다. 이게 오늘 9권의 일기장을 펴본 40살의 나에게 10살의 네가 주는 선물 같아 고맙고 또 고마워.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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