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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Apr 11. 2022

예쁜 도시락은 애초에 싸주는 게 아니었는데...

아예 시작을 말았어야 할 캐릭터 도시락

금요일 오후, 내일 새로 개장한 놀이공원에 갈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조급했다. 가장 인기 많은 어트랙션은 무엇인지, 키 제한은 있는지 등을 미리 알아두어야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이라 사람이 더 몰릴 거라는 생각에 더욱 그런 듯했다. 이미 갔다 온 지인들에게 정보를 얻고, 인터넷 서치도 하던 중 번뜩 스치는 생각.

'주말이니 식당에 사람이 많겠는데?'

나는 식당이 얼마나 붐비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다리지 않고 먹으려면 11시에 점심을 먹으란다. 그렇지 않으면 최소 30분은 줄을 서야 한다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엔 차라리 음식을 싸서 가는 게 정답이다. 외부음식 반입이 되는지부터 체크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다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 내일 놀이공원에서 점심으로 김밥 어때? 치즈김밥!"
엄마! 나는 소풍 갈 때 엄마가 싸주던  미니언즈 도시락 먹으면 안 돼? 코로나 때문에 우리 소풍 안 간지도 오래됐잖아"

...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하고 많은 먹을 것 중에, 심지어 가족들 다 같이 가는데 나더러 도시락을 싸라니!!

집에서 놀이공원까지는 20분밖에 안 걸리는데, 도시락을 싸려면 6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 충분히 사 먹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아이들은 먹을거리 앞에선 타협을 하지 않는다.


큰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입이 매우 짧았다. 이유식을 먹을 때도, 티스푼보다 작은 이유식 스푼으로 3 숟갈 먹으면 많이 먹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또래보다 키도 아주 작고, 몸무게도 가벼웠다. 그래서  아이 먹이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어린이집에서 소풍 갈 때마다 별난 아이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인터넷에 올라온 소풍 도시락을 늘 검색하고 음식을 싸주었다. 아이가 소풍에서 돌아오면 음식은 맛있었는지, 얼마나 먹었는지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캐릭터 도시락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고, 결국 정착한 것이 '미니언즈 소불고기 주먹밥'이었다. 다행히도 그 도시락이 입에 맞았는지, 아이는 소풍  때마다 '미니언즈 도시락'을 싸 달라고 얘기하곤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도시락을 찾아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주변에 다른 엄마들이 김밥을 싸서 보내는 게 내심 부럽기도 했다. 내가 싸는 도시락은 눈코입을 만드는 데에만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아무거나 잘 먹는 둘째는 그냥 김밥 도시락으로 싸줘야 하겠다고!

하지만 이게 웬걸! 첫째는 예쁘게 싸주고, 둘째만 김밥을 싸서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모양내는 데 손 많이 가는 도시락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들은 놀이공원에서 정말 신나게 놀았다. 나의 다크서클 따위는 아이들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도시락을 11시 30분경에 먹기 시작했으니, 처음부터 그냥 잠자코 있다가 놀이공원 안에 있는 식당에서 사 먹었어도 될 법하였다. 내 발등을 내 스스로 찍었으니 어디 원망할 데도 없다.

그래도 아이들이 맛있게 다 먹어주니 뿌듯은 하다. 제발 먹은 만큼 훌쩍 커서, 놀이기구 키 제한 따위 검색하지 않을 만큼 멋지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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