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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Feb 18. 2023

교통체증, 그 순간의 기분전환

집이야 조금 늦게 가도 되지만...

 친정아버지 제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부산으로 들어가는 톨게이트에 차 한 대가 톨게이트 가드레일을 박고 멈춰 있었다. 앞 범퍼는 꽤나 찌그러져 있었고, 운전석엔 사람이 탄 채 문이 열려 있었다.

  "다행히 사람은 괜찮은 것 같아. 기절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고개를 돌려 사고 차량을 유심히 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사고가 난 지역은 바로 지나왔는데, 도로 위의 차들은 전부 제 속도를 내고 있지 못했다. 급기야 도로에 멈춰있는 시간까지 생겼다.

  "어디 또 사고 난 것 같은데? 지금 정체되는 곳 보니까, 지하차도 진입하는 곳에 사고가 난 것 같아. 거기가 내리막길인데, 지하 차도 안은 커브라서, 외지 사람들이 오면 직선도로인 줄 알고 속도내서 좀 위험하거든"

 남편이 말했다.

 하지만 어디서 어떤 이유로 정체가 되고 있는지 알 턱이 없는 우리 가족은 차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 집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글쎄? 지금 1시간 넘게 걸린다고 나오는데"

  "원래는 얼마나 걸려요?"

  "원래는 20분 정도면 도착하지!"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외할머니 댁에서 점심 먹고 가자고 안 할 걸"

 아이들은 볼멘소리였다.

 그렇게 몇 십 분을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다 보니, 옆 차선에서 계속 마주치는 봉고차에 눈길이 갔다.  20대 후반의 젊은 남자가 운전을 하고,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처음엔 잠을 자는 듯했는데, 계속 보다 보니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계속 싱글벙글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옆자리에서 자는 것 같았던 동승자도 깨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차가 밀려서 일찍 출발할 걸 하는 후회와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데, 옆 차량의 분위기는 우리와 반대인 게 나는 사뭇 궁금했다. 막 몽글몽글한 연애를 시작하려는 썸남 썸녀. 어쩌면 그 남자에게 차가 막히는 시간은 좋아하는 여자와 오랜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짝사랑하는 여자였다면 천재일우일 수도 있을 터! 게다가 차 안에는 단 둘 뿐이니, 다른 사람의 방해도 없이 오롯이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은가? 어쩐지 옆 차량의 행복한 분위기가 부러워진 나는 남편에게 소곤댔다.

  옆 차는 이제 연애 시작하려는 사람들인가 봐, 이렇게 차가 밀리는데도 남자가 계속 웃으면서 운전하고 있어"

 그 말이 자극이 된 걸까? 그때까지 계속 무표정으로 운전하던 남편도 발상의 전환이 일어났는지, 이후에 집에 늦게 도착한다고 입이 나온 아이들에게 한마디 한다.

  애들아, 우리는 차가 밀리면 그냥 집에 늦게 가는 정도이지만, 저 앞에 누군가는 사고가 나서 엄청 많이 다쳤을 수도 있어. 어쩌면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지. 그러니까, 차 밀린다고 너무 짜증 내지 말자"

 아, 그 생각은 못했다. 차가 밀리는 때에 누군가는 생명이 위독할 수 있다는.. 남편의 그 말 한마디로 차 안은 숙연해졌다. 그리고 누구도 더 이상 차가 밀리는 것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출퇴근길 교통체증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고속도로에서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제 짜증을 내지 말아야겠다. 누군가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일 수도 있는데, 목적지에 조금 늦게 도착하는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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