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화해하기 위한 첫 단계
: 나를 미워하지 않기

by 윙크살짝

멈춰 선 뒤 처음 찾아온 감정은
혼란도 아니고, 불안도 아니었다.

가장 먼저 밀려온 감정은
자책이었다.


“왜 더 버티지 못했을까.”
“왜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왜 나는 더 강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 질문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나에게
지나치게 가혹했다.


누구의 기대도 아닌,
이미 떠나온 조직의 언어도 아닌,
내가 나에게 휘두르던 판단들이
나를 계속 붙잡고 있었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움을 향한 나의 첫걸음은
늘 같은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를 미워하는 일을 멈추는 순간’에서.


나에게 가장 차가웠던 사람은

결국 ‘나’였다

회사에서 지낼 때는
내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날카로운

기준을 들이대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실적이 조금만 낮아져도
“너 이게 최선이야?”라고 나를 꾸짖었고,

상황이 잘 풀려도
“방심하지 마, 아직 멀었어.”라고
다시 채찍질했다.


퇴직 후의 고요 속에서
그 목소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관계도, 역할도, 자리도 사라졌는데
유독 사라지지 않은 건

“나는 더 잘했어야 해.”라는

내 안의 혹독한 질책뿐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일

나는 처음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조금 지친 모습도,
불안해하는 눈빛도,
갑자기 허전해지는 저녁의 마음도

모두
내 모습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과거의 나는

‘강해야 한다’는 가면을 쓰고 있었고,

지금의 나는
가면 없이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심리학자 Carl Rogers는 말한다.

“내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출처: Rogers, On Becoming a Person, 1961)

그 말이 그날따라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마음과 화해하기 위해

필요한 단 한 가지 태도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느끼지?”

대신

“아, 내가 지금 이렇게 느끼는구나.”

그 작은 차이가
나를 구했다.


불안은 불안대로,
허전함은 허전함대로,
서운함은 서운함대로

‘존재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나를 흔드는 파도가 아니라

나에게 말을 거는
조용한 물결이 되었다.


나는 ‘강한 나’를

포기했고,

그제야 ‘진짜 나’를

찾기 시작했다

24년 동안
나는 늘 강해야 했다.

팀이 나를 기대했고
상황이 나를 밀어붙였고
나는 늘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어야 했다.


하지만 멈춰보니 알겠다.

강함은
나의 본모습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방식이었다.

이제는
그 가면을 벗어도 괜찮았다.


누구도 나를 평가하지 않았고
누구도 나를 기다리지 않았고
누구도 나에게 결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이 모습도 나다.”


나는 ‘나와의 화해’에서

다시 시작한다

화해는
사건이 아니라
태도였다.


나를 미워하는 마음을 멈추고,
나를 판단하는 기준을 내려놓고,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진짜 ‘나’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회복이 모든 것의 시작이 아니라,
나와의 화해가 시작이라고.

그리고 그 화해의 순간이야말로
두 번째 인생의 첫 문장이기 때문이다.

안개숲.jpeg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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