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떠난 뒤,
나는 처음으로 내 목소리를
‘생각’이 아니라 ‘소리’로 듣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내 말투는 대부분
상황에 맞춰진 것이었다.
조심스러운 표현,
다듬어진 문장,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말들.
직장인의 말은 언제나
회사의 언어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내 안에서 전혀 다른 음색이 떠올랐다.
거칠고 단순하지만
이상하게도 더 진짜 같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나에게 도달하기 위해 나온 목소리.
그게 바로
다시 태어난 나의 목소리의 시작이었다.
사라졌던 내 말투가
서서히 돌아왔다
예전의 나는 말을 할 때
늘 목적을 먼저 생각했다.
보고를 위한 문장인지,
설득을 위한 문장인지,
조율을 위한 문장인지.
말보다 목적이 먼저였고
목소리보다 역할이 앞섰다.
그러나 멈춤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말투는 조금씩 달라졌다.
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혼잣말을 하고,
운전 중 창밖을 향해 불쑥 중얼거리고,
책을 읽다 마음에 남는 문장을
소리 내어 따라 읽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아… 이게 내 목소리였구나.”
누구도 평가하지 않는 자리에서만 나오는
노랫말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언어.
그 목소리는 오래전,
일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하기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바로 그 어투였다.
직장에 있을 때 나는
보고서 문장을 잘 쓰는 사람,
명료하게 정리하는 사람,
말의 결을 다듬는 사람으로 불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글과 말은 대부분
‘조직의 언어’였다.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 “정리하자면…”
· “향후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언어는 효율적이었지만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지 않았다.
퇴직 후
다시 쓰기 시작한 글,
다시 읽기 시작한 책,
다시 적기 시작한 짧은 메모들은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문장은 조금 길어졌지만 숨이 편했고,
말은 느려졌지만 마음은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언어를 되찾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집이 고요해졌을 때였다.
나는 불이 꺼진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때
아주 작은 속삭임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너는… 이제 어떻게 살고 싶니?”
누군가의 질문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처음 나온 질문이었다.
내가 나에게 건넨
첫 번째 문장이었다.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질문은 매일 조금씩 다른 음색으로
내 안에서 반복되었다.
산책을 할 때,
책을 읽을 때,
차 안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밤에 누워 눈을 감을 때.
그때 깨달았다.
“내 안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태어나고 있는구나.”
그 목소리는
명확한 계획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의 방향을 가리켰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되는 시간.’
내가 달라진 것은
거창한 변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내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 더 솔직해졌다.
· 더 정직해졌다.
· 더 느려졌고, 더 깊어졌다.
· 더 이상 누구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 무엇보다 나에게 거짓말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달라지면
선택이 달라지고,
선택이 달라지면
인생의 길이 달라진다.
그것이
내가 멈춤의 시간 속에서 깨달은
조용하지만 강력한 진실이었다.
조직에서는 늘
‘해야 하는 말’을 했다.
지금의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해도 되는 말’을 하고,
때로는 솔직해서 조금 불편한 말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말에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바로
나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다시 태어난 덕분에
나는 이제
앞으로 나아갈 문장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