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돌아오자
나는 조금 단단해진 줄 알았다.
시간을 듣고,
빛의 기울기를 느끼고,
발걸음의 무게를 의식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는 괜찮아진 줄 알았다.
그런데 감각이 살아난 자리에서
뜻밖의 것이 함께 올라왔다.
감정이었다.
나는 그동안
꽤 강한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감정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위기 앞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
적어도 그렇게 행동해 왔다.
하지만 멈추고 나서야 알았다.
그건 강함이 아니라
지속적인 긴장이 만들어낸 표정이었다는 것을.
회사 건물로 들어가던 아침,
나는 이미 준비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굳은 입꼬리,
빠른 걸음,
짧은 호흡.
‘프로페셔널’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매일 긴장을 입고 출근했다.
그 긴장이 사라지자
마음이 편안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조용해진 자리에서
늦게 도착한 감정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두려움.
허전함.
설명되지 않는 서운함.
그리고 묘하게 느껴지는 안도감.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강해서 버틴 것이 아니라
긴장해서 버틴 것이었다는 사실을.
긴장이 빠져나가자
내 마음은 생각보다 섬세했다.
작은 말에 오래 머무르고,
사소한 장면에 쉽게 흔들리고,
의외로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사람.
그게
사람으로서의 나였다.
멈춤은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억세게 버티던 표정이 풀리고,
눈빛이 부드러워지고,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인정한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오래 긴장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긴장을 내려놓자
비로소
내 마음의 본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상실을 설명하는 대신
나를 다시 조립해 보기로 한다.
역할이 아니라 사람으로.
기대가 아니라 선택으로.
조직의 언어가 아니라
내 문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