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더로 보는 세상
나는 나를 싫어했습니다.
아니, 혐오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소 평범하지 않았던 가정,
흔하지 않았던 내 성과 이름.
남들보다 작았던 키,
남자답지 못한 목소리,
잘 먹지 못해 빼짝 마른 얼굴까지.
거울 보는 게 무척이나 두려웠고, 싫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사람을 마주 보지 못했고 늘 땅을 보며 걸어 다녔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뜨개질을 참 좋아하셨어요
나와 동생을 세워두고,
손을 활짝 펴서 팔길이가 몇 뼘인지, 다리길이는 몇 뼘인지 확인하시고는
따갑고 간지러운 뜨개질옷을 항상 만들어주셨답니다.
실이 모자라면 낡은 옷을 풀어 새 옷을 떠주셨고,
알록달록하고 꺼슬꺼슬한 뜨개질옷을 추위가 가실 때까지 입고 다녔습니다.
어른들은 나를 볼 때 언제나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고,
친구들은 나를 볼 때 언제나 멀리하는 시선을 보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다들 그런 시선을 보낼 만도 했겠지요.
늘어난 소매. 관리되지 않은 옷매무새. 꼬제제한 모습이 지금 돌아봐도,
누가 보아도 저는 그런 모든 부분이 결핍된 아이였습니다.
일을 할 때에는 까맣게 잊고 살다가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음에도
가끔씩 깊숙한 곳에서 툭툭치고 올라오는 그때 앓았던 낮은 자존감은 도무지 고쳐지지가 않네요.
운전할 시간이 많은 저는 혼잣말로 늘 저와 다퉜습니다.
"너 때문이야"
"아니, 너 때문이야"
"그때 너만 없었으면"
"아니, 네가 없었어야 해"
"지금 네 꼴을 봐 그게 나 때문이야?"
허공에 던진 말들은 결국 나를 향해 돌아왔습니다.
맞아요. 결국 모든 게 내 책임이고 내 탓이었습니다.
수년을 그렇게 스스로를 미워하며 자책하며 지내왔던 제가
최근에 실은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요즘 거울을 마주 보는 듯하는 시간이 유독 잦았는데
눈앞에 있는 나의 나를 볼 때마다 생각에 잠겨서는
혼란스럽더라고요
그래 아마도 진짜 아닐 수도 있겠다.
나는 정말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실은 힘껏 좋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고 마음깊이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포기하지 않아서 정말 잘했다며 누구보다 힘차게 응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매 순간 누군가 도움을 주시는지 모르겠지만
제 마음이 위태롭고 지쳐 고단할 때 항상 시기적절하게
숨 쉴 수 있는 귀인을 보내주셔서 저는 정말 그런지 알았어요
제가 보내드렸던 응원이 관심이 애정이 실은
거울을 마주 보고 있는 나를 보는 듯해 온 마음 다해서 쏟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