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결핍에 가까운 상태

파인더로 보는 세상

by 로파이

평소에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이 아닌 성격이라서 갑작스럽게 카드지갑이 없다거나 아끼는 펜이 안 보여도 무덤덤하게 찾다 보면 필히 내 주변 어디선가 찾아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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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나는 유독 볼펜보다는 연필 또는 샤프를 선호했다.


3학년 생일에 작은 고모께서 샤프를 선물해 주셨는데 큰 고모께서 어릴 때부터 쓰면 안 좋은 습관 든다며 (당시에는 그러했다) 연필 다 쓰면 주신다는 말씀에 공책에 연필을 어찌나 많이 끄적였던지..


종이에 미끄러지듯 사각 거리는 소리를 듣기 좋아하기도 했지만 얇지도 그렇다고 두껍지도 않은 연필이 종이에 남기는 흔적들을 참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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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처음 심사 시험에 합격을 해서 기쁜 마음으로 구매했던 샤프와 당시 심사를 늘 함께 짝지 했던 동생이 선물해 준 지우개는 어느새 나와 12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샤프는 반짝임과 매끈함을 잃었고 내가 쥐는 습관에 따라 칠이 벗겨지는 자연스러움이 참 좋았다. 지우개는 유독 내가 무언가를 쓰고 지울 일이 많지 않았는지 이제야 겨우 몇 센티 남지 않은 상황에 새 지우개를 담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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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지우개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분명하게 어디서 잃어버린 것인지 확신할 수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함께 근무하던 친구가 내 지우개를 찾아두어 다시 내게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지우개 없는 한 달 내내 마음이 안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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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샤프를 잃어버렸다.

메모할 것이 필요하다며 펜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내 손에 쥐고 있던 샤프를 건네주게 되었다.

종일 계속 신경이 쓰여 볼 때마다 샤프 꼭 돌려주셔야 한다. 내게는 너무 소중한 샤프이니 꼭 주셔야 한다. 말씀을 드렸으나 결국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것을 선뜻 빌려줄 만큼 당신 또한 내게 소중했다는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


샤프를 잃어버린 당사자는 내게 좋은 펜을 선물해 주겠다 이야기했다.

나는 비싸고 좋은 펜보다 만 원짜리 내 12년 친구가 필요했던 건데 그깟 샤프라고 생각했나 보다.

분명 내게는 사연 있는 샤프라고 이야기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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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를 돌려주겠다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십 년간 함께 했던 샤프가 이제는 없어 하나가 없으면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이야기했다.

보고 있으면 자꾸 생각나니까 아예 안 보면 생각조차도 안 나니까

생각조차 나지 않게 그냥 버려달라 이야기했다.


생각이 나겠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생각이 나겠지

지우개에게 화가 나지 않았지만 지우개에게 그냥 그렇게 모질게 말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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