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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Jan 03. 2024

2023년의 나

올해의 지극히 주관적인 결산

 최근에 책을 자주 구입하는 사이트에 입장하자마자 올해 구입한 책들의 데이터를 가지고 만든 결산내용을 확인해 보라는 팝업메시지가 떴다. 올해 활동이 뜸했던 블로그도 들어가자마자 내가 어떤 유형의 블로거인지 분석하는 결산 데이터를 만들었다며 봐달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내가 한 행동들을 알아서 데이터화하여 자동으로 결산해 주다니, 너무나 편리한 시대다.


 어느새 연말이다.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면서 내가 했던 활동과 업무에 대한 결과를 멋진 수식어를 곁들여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른다. 연말마다 진행하는 연예대상, 연기대상에서 베스트 커플상, 올해의 OOO상 등의 여러 가지 타이틀을 붙여가면서 1년 동안 열심히 활동한 모두의 노고를 최대한 골고루 치하하는 시간을 가진다. 올해 내가 했던 경험들, 활동들로 올해의 OOO를 뽑아보고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3번째 결산글을 시작해 보겠다. (벌써 3번째라니!)


올해의 마라톤


 2023년 10월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 10K 코스로 시작한 마라톤의 재미에 빠져서 10~11월 사이 3개의 마라톤에 나가 완주메달을 획득했다. 5K도 제대로 달려본 적 없는 내가 10K를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달린 첫 마라톤에서 완주를 성공하고 나니 마라톤에 대한 열정에 불이 붙어서 이후 열리는 마라톤 행사를 연달아 신청했다. 달리는 동안 느껴지는 온갖 감정들을 이기고 완주했을 때의 뿌듯함과 완주메달을 받을 때의 성취감은 나의 자존감을 올려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로 새벽, 저녁마다 걷기와 달리기를 병행하면서 운동했는데 마라톤 완주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니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운동을 해야 하는 동기부여가 되어 열심히 하게 되었다. 2024년도 10K 코스 위주로 마라톤을 참가할 계획이다. 벌써 3월에 있는 마라톤 참가 신청을 해놓았다. 하프마라톤은 2024년 하반기쯤에 한 번 도전해 볼 계획이다.


 올해 마라톤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단연 '현대 롱기스트런 10K'일 것이다. 예상치 못한 비구름을 만나 운동화와 상의가 흠뻑 젖어 체온이 급격히 내려간 탓에 덜덜 떨면서 달린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젖은 옷을 입은 상태로 그대로 달리다 보니 가슴 중요부위가 쓸리는 바람에 한동안 옷 입을 때마다 쓰라림에 고생했다. 고생한 기억은 역시 가장 강렬하게 기억으로 남는다.


올해의 책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은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이공계 사람이면서 과학소설로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작가다. 이 작가를 알게 된 건 한 유튜버의 추천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숨』이라는 책을 먼저 읽고 작가의 글에 흥미가 생겨 연이어 첫 작품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은 여러 가지 단편 글이 수록되어 있는 형식이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바빌론의 탑>과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이다.


 <바빌론의 탑>은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처럼 하늘 끝에 닿기 위해 쌓아 올려지고 있는 탑에 주인공인 힐라룸이 올라가는 이야기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바벨탑이 완성되지 못하도록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여 성 쌓기를 그만두게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만약의 형식을 빌려 '바벨탑이 실제로 하늘에 닿았다면?'을 가정하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힐라룸은 하늘의 천장에 닿게 되지만 거기서 쏟아지는 엄청난 물에 휩쓸려 어디론가 가게 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언어를 나누는 벌을 주셨지만 이 글의 결말은 사람이 하늘에 닿을 때까지 탑을 쌓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를 반전으로 알 수 있었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는 '칼리'라고 하는 타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걸 쓰면 누가 예쁘다, 멋있다, 못 생겼다 같은 미의 기준이 없어지게 되고 모든 사람을 감정 없이 평등하게 대하게 된다.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과도한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이 성행하고 SNS에서는 필터를 이용해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으로 다듬는 현재 상황과 대비되어 흥미로웠다.


 이외의 많은 글들이 상상 속에서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하루 만에 집중해서 읽었었다. 처음 읽으면 작가가 만든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친절히 나오지 않고 글의 흐름에 따라 알아가야 해서 이해하는데 헷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을 읽어 내릴 때쯤 미처 신경 쓰지 않은 앞선 내용의 떡밥들이 회수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터무니없는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올해의 도전


 자격증 따기, 새로운 루틴 도전하기 등 훌륭한 도전 후보들이 있었고 실제로 대부분 해냈기 때문에 어떤 도전을 올해의 도전으로 삼을지 고민되었다. 그중에서 올해 큰 마음을 먹고 인생에 있어서 거의 해보지 않았던 한 가지를 선택했다. 바로 '옷 스타일링 바꾸기'.


 나는 패션에 정말 관심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친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나 옷 스타일이 하나 이상은 있는데 나는 그런 게 없었다. 그냥 집에서 어머니께서 사주신 옷을 입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예전에 하도 어두운 옷만 입어서 누군가 밝은 옷을 입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다. 얼굴톤과 스타일에 맞는 옷을 골라야 했는데 '밝은'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샛노란 개나리 같은 옷을 산 적이 있다. 분명 나 혼자 산 게 아니라 같이 동행했던 친구들이 있었고 사기 전 입어봤을 때 괜찮다고 그랬는데 막상 그 옷을 입고 다니니 나는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내가 어딨는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샛노란 옷은 내 인생의 최악의 실패로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면 두고두고 회자되는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 되었다. 그 뒤로는 자의적인 옷 쇼핑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입던 옷만 잘 입자는 생각이 바뀐 건 여자친구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몇 년째 새 옷 없이 가지고 있던 옷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여자친구는 새로운 스타일의 옷 쇼핑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친구와 주말에 약속을 잡고 서울 백화점에서 옷을 구입하기로 결심했다. 친구가 남자 옷 쪽으로 관심도 많고 스타일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줘서 나에게 맞는 옷을 다양하고 폭넓게 찾아볼 수 있었다. 4~5시간가량 쇼핑한 끝에 60만 원 정도의 옷과 신발을 사게 되었다. 카드를 긁으면서 이게 돈 쓰는 맛이구나 조금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산 옷은 지금 매우 잘 입고 다니고 여자친구도 만족했다. 살면서 필요한 분야지만 관심이 없었는데 조금이라도 신경 쓰고 큰돈 들여 도전한 건 2023년에 가장 잘한 일 같다.


올해의 여행



 2023년은 여행을 많이 다니진 못했다. 취업준비와 여러 자격증 공부로 시간관리를 하다 보니 움직일 여유가 적어졌다. 미래를 위해 필요한 시간들이었지만 한 번씩 분위기 환기를 시키기 위해 여행을 갔다. 가장 생각나는 건 5월에 다녀왔던 부산 여행이다. 직장에서 쉽게 휴가를 낼 수 없던 환경이라 며칠 간의 휴가를 내는 것이 흔치 않은 기회였다. 하지만 3박 4일 기간 동안 날씨가 좋지 않아서 먹구름이 잔뜩 낀 부산 바다를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동행했던 여자친구의 컨디션도 날씨만큼이나 좋지 않아서 계획했던 일정을 여유롭게 조율했다. 날씨를 조종할 수도 없고 컨디션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나마 시간에 여유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여자친구가 숙소에서 쉬는 동안 발에 불이 나도록 많이 돌아다녔다. 계획은 잡았었지만 가지 못한 곳들을 아침 운동 겸 가까운 곳부터 부지런하게 돌아다녔다. 일정에서 제외했으니 못 간다고 아쉬워하지 말고 시간이 있을 때 눈에 담아두자는 생각으로 먼 길을 떠나 바닷공기도 충분히 마시고 흐리지만 넓게 트인 바닷가도 사진에 담았다. 쉬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부산의 예쁜 모습을 많이 찍으려고 노력했다. 최고의 모습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산의 매력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일정 따라 바쁘게 돌아다니면 그 지역의 문화와 일상생활 모습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부산 여행에서는 의도치 않은 목적이 생겨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꼭꼭 눌러 담고 선별하다 보니 기억에 더 많이 남는 것 같다. 조금 힘들었을지라도 기억에는 선명히 남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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