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모그래피 벨에어 612 - 009
벨에어 612의 셔터는 그런 소리를 냈다. 경쾌하되, 어딘가 가벼운. 마치 기계가 기침하듯, 작지만 선명하게 울리는 소리. 조용한 공간에서는 유난히 도드라졌다. 나는 셔터음보다 먼저, 그 셔터를 누르기 전의 정적을 기억한다. 필름을 감고, 숨을 고르고, 프레임을 정한 뒤 아주 작게 숨을 멈추는 순간. 그 몇 초간의 정적은, 이 카메라와 함께 있을 때 유독 특별하게 느껴졌다.
벨에어 612는 중형 필름카메라다. 보통의 120mm 필름을 사용하는데, 일반적인 6x6, 6x9를 넘어 무려 6x12 파노라마 포맷까지 지원한다. 토이카메라처럼 생긴 이 기계가, 파노라마라는 깊고 넓은 세계로 나를 이끈 것이다. 처음 이 카메라를 접했을 땐, 복잡한 설명서보다도 그 낯선 판형이 더 낯설었다. 사진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612라는 숫자는 내게 익숙하지 않았다.
사실 612는 풍경사진가들 사이에선 비밀스러운 꿈같은 포맷이다. 후지에서 617을, 호스만과 린호프에서 612를 내놓긴 했지만, 가격도, 무게도, 접근성도 모두 벽 같았다. 그런 점에서 벨에어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정밀한 도구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자유로웠다. 폴라로이드 백, 35mm 컨버터, 교환형 렌즈 유닛들—이 카메라는 마치 드래곤볼처럼 유닛을 모으는 재미까지 줬다. 하지만 그런 부속들은 이제 거의 전설처럼 사라졌고, 벨에어 자체도 단종된 지 오래다.
나는 우선 35mm 필름을 120mm처럼 사용하는 컨버터를 장착해 테스트를 해보았다. 처음엔 필름이 얼마나 감겨야 한 컷이 나오는지도 몰라서, 쓰다 남은 필름에 체크를 하며 네 바퀴쯤 감아본 끝에 어느 정도 간격을 알게 되었다. 한 롤에 열 컷 정도. 원래의 120mm 필름이 6컷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꽤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셔터속도는 최대 1/125초. 밝은 날이 아니면 삼각대가 절실했다. 하지만 이 카메라는 장비보다는 마음가짐을 먼저 요구했다. 촬영은 하나의 의식처럼 이루어졌다. 느리게 프레이밍을 하고, 살짝 떨리는 손으로 노출을 조절하고, 입을 다물고 숨을 참은 뒤 셔터를 누른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실패작이 많았지만, 그 과정 하나하나가 내게는 기억으로 남았다. 리프셔터 특유의 소리도, 릴리즈를 쓸 수 없다는 불편함도, 모두 이 카메라의 '성격'처럼 느껴졌다.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한겨울의 찬 공기가 아직 서늘하게 감돌던 어느 날, 나는 벨에어 612를 조심스럽게 백팩에 넣고 도시 외곽으로 향했다. 흔히 쓰던 가벼운 카메라들과는 달리, 이 녀석은 가볍게 주머니에 넣을 수 없기에 이동은 한결 느렸다. 몸에 걸치고 다니는 카메라가 아닌, 꺼내는 순간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카메라였다.
버스를 갈아타고, 골목을 돌고, 겨울 햇살이 사선으로 비치는 오래된 마을길 어귀에서 삼각대를 세웠다. 맑은 하늘 아래, 낮게 드리운 그림자와 눈이 살짝 덮인 돌담이 있었다. 렌즈를 조심스럽게 닦고, 프레임을 천천히 가늠한 뒤, 숨을 고르고 셔터를 눌렀다. 촬영은 마치 숨결을 담는 의식 같았다. 추운 날씨에 장갑을 벗고 손끝이 얼어갈 때쯤, 따뜻한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허리를 펴며 담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눈이 다 녹지 않아 잔설이 남은 풍경은, 벨에어의 프레임 안에서 더 고요하고 깊어 보였다.
그 사진들을 현상했을 때, 나는 그제야 이 판형이 왜 특별한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넓은 시선 속에서 피사체는 작아졌지만, 감정은 더 커졌다. 프레임 안에는 나의 호흡과 기다림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광활하진 않지만 깊고, 선명하진 않지만 온기 있는 사진들. 그것이 바로 벨에어의 결과물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 소리를 에피소드로 들어가기 전의 징조처럼 사용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기 전 머그잔을 천천히 돌리고, 누군가는 글을 쓰기 전 펜을 한번 쥐어보듯이. 벨에어의 셔터음은 나에겐 그런 버릇 같은 것이었다.
벨에어 612는 완벽한 카메라는 아니다. 하지만 이 카메라를 사용하는 일련의 과정은 분명 특별하다. 정확함보다는 직감, 효율보다는 감성, 실용보다는 감각. 그런 단어들이 더 잘 어울리는 기계다. 찌이익, 촥~~
—그 셔터 소리는 그래서일까. 마치 기억의 한 조각이 조심스레 꺼내지는 듯한 소리였다.
이따금, 사진이 그리울 때면 나는 다시 벨에어를 꺼낸다. 계절이 바뀌는 어느 오후, 필름 한 롤을 조심스레 꺼내 장전하고, 손에 익은 무게를 다시 느껴본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걷다 보면, 파노라마 프레임 안에 사소한 것들이 놀랍도록 잘 담긴다. 오래된 폐역과 폐선의 터널, 유원지의 오리보트, 빨랫줄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유리창. 프레임을 정하는 일은 결국,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 같다.
모든 것이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 순간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벨에어를, 여전히, 조용히 꺼내어 든다. 느릿한 셔터, 불편한 조작, 정직한 결과물. 모든 것이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 순간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벨에어를, 여전히, 조용히 꺼내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