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gtländer Bessa R / Skopar 35mm - 008
셔터가 열리고 닫히는 소리는 마치 클래식한 오르골처럼 잔잔했다. 강렬하진 않지만, 묵직하게 마음에 남는 소리. 찰칵 이 아닌 챠르륵, 그것은 내가 처음 보이그랜더 베사 R을 사용했을 때 느꼈던 인상의 전부를 닮아 있었다.
엡손 R-D1은 내가 가진 RF 카메라 중에서도 가장 고가이며, 처음으로 신품으로 장만한 RF였다. 그때 나는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에 한창 동경을 품고 있었다. 몇 달을 모아 손에 넣은 이 카메라는 단순한 기계 이상의 것이었다. 일본 코시나에서 2005년에 제작된 이 카메라는 정밀한 수동 기계의 품격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누구나 다가갈 수 없는 비현실적인 가격대를 지닌, 말 그대로 "가성비 최악의 디지털 RF"였다.
처음 코시나와의 인연은 엡손의 R-D1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당시 디지털 레인지파인더가 전무하던 시절, 라이카 M8조차 나오기 전의 시점에서 R-D1은 유일한 존재였다.
디지털임에도 아날로그 상태창을 가지고 있었고, 베사 바디를 기반으로 한 이 카메라는 나에게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그 이후 코시나라는 브랜드가 깊숙이 각인되었고, 보이그랜더 렌즈와 필름 바디까지 관심을 확장해 가게 되었다.
그중 베사 R은 라이카 스크루 마운트를 채택하고 있어 범용성이 뛰어나다. 고전 렌즈와 현대 렌즈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유연함, 정확한 TTL 노출계, 넓고 시원한 파인더. 특히 L39 마운트 렌즈들과의 궁합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 전자식이 아닌 완전 수동 기라는 점은 오히려 나에게 더 큰 신뢰를 주었다.
건전지가 없어도 모든 셔터속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카메라는 진정한 ‘기계식 카메라’로서의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베사 R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때, 딱딱한 외관과 플라스틱 바디는 솔직히 큰 감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촬영을 시작하자 생각이 달라졌다. 시원하게 뚫린 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보는 느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감각이었다. 라이카보다 가볍고, 손에 착 감기며, 촬영하는 그 순간순간마다 피사체는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건 단순히 렌즈나 파인더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베사는 ‘찍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초점은 이중합치 방식으로 맞춰야 했고, 심도는 직접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제약 덕분에 결과물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커졌고, 결과를 받아 들었을 때의 감동은 배가되었다. 때로는 흐리고 때로는 또렷한 장면들이 나의 감정과 겹쳐지며, 한 장의 사진은 하나의 기억으로 완성되었다.
캐논의 스크루 마운트 렌즈 중 몇몇은 저렴한 가격에도 f1.4의 개방값을 제공한다.
그것은 어둡지 않은 실내에서도 유화처럼 부드럽고, 감성적인 묘사를 가능하게 한다.
슬라이드 필름을 넣고 정확한 노출로 찍은 사진들은 말 그대로 예술이었다.
색은 깊었고, 톤은 선명했으며, 빛은 고요하게 종이에 남았다.
물론 베사는 완벽하지 않다. 내 바디는 필름실 쪽에 크랙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험하게 다뤄진 흔적들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 롤을 넘게 사용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문제도 없이 작동해 준다.
플라스틱 바디라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가벼움 덕분에 거리로 나설 때마다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라이카의 무게감, 바르낙의 클래식함, 콘탁스 G의 정밀함. 모두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베사는 그 가운데에서 균형을 이룬다. 부담스럽지 않고, 어렵지 않으며, 그렇다고 얕지도 않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나를 중심에 두게 만드는 카메라.
그리고 무엇보다 이 카메라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파인더 너머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다시금 알려준 것이다.
그 소리는 단지 셔터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증거였고, 오래도록 남고 싶은 감정의 흔적이었다.
짧은 일정으로 대구를 다녀오게 되었을 때, 나는 이 베사 R을 챙겼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은 날이었지만, 이 카메라는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똑딱이 같은 사이즈였다. 어깨에 스트랩을 걸 필요도 없이, 그냥 외투 속에 넣고 다닐 수 있는 가벼움과 간결함. 그렇게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은 이 카메라만의 큰 장점이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꺼내어 풍경을 담았다. 실내에서도 감도 400짜리 필름이면 무리 없이 촬영이 가능했고, 잠깐 숨만 참는다면 1/15초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레인지파인더 특유의 작은 셔터 진동 덕분에 흔들림 없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그만큼 더 선명한 기억을 남길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증거였고, 오래도록 남고 싶은 감정의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