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ieker Mar 19. 2024

아쉬운... 마지막 모습을 보다.

2016년 7월, 동행정복지센터에 맞춤형복지팀이 신설되어 팀을 옮기게 되었다. 조직 여건상, 기존의 기초수급권 업무를 그대로 하면서 사례관리업무가 추가되었다. 조직의 준비는 많이 부족했지만, 변화의 방향은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업무분장은 늘어나게 되었다.     


사례관리업무, 평소 업무와 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맞춤형복지팀 이라는 이름으로 인한 부담감 그리고 함께 근무하게 된 사례관리사 선생님과의 협력을 통해 좀 더 적극적인 대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맞춤형복지팀 업무를 시작하고 3일 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 노인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인은 6개월 전 암수술을 받았지만 재발하여 입원 중이었다. 부인과 자녀는 있지만, 수십 년 전 집을 나와 연락처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서 병원비 지원 및 생계지원을 희망했다. 병원에서는 임종 가능성까지 이야기하는 상황이었다. 다음날로 약속을 잡고 병원을 방문하였다. 


6인실 병실 한쪽에서 노인 분을 만났다. 병으로 몸은 약해 보이셨지만, 깔끔한 노신사셨다. 

나빠진 건강으로 인해 대화조차 힘들어 하셨으나, 지원을 위해 확인 할 부분이 있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들었다. 


약 20년 전 본인의 부채로 인해 가족에게 고통을 주어 집을 나오고 그 이후로 가족들과 연락 없이 살아 오셨다. 한 때 가족들을 다시 만나보고자 했으나 가족들이 거처를 옮겨 찾지 못했다. 6개월 전 암수술을 받았으나 재발하였고 장천공이 동반되어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수년간 노력하여 천오백만원을 통장에 모아두었으나 지난 1년 사이 암 치료를 위해 수술비와 치료비로 사용하고 현재는 약 300만원만 남았다. 또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앞으로 살길이 막막했는데 주변의 지인들이 이야기 해주어 동행정복지센터에 어려움을 알리게 되었다고 한다.     


노인분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정리해 보니, 노인 분 현재의 어려움은 이해가 되었지만, 지속적인 공공부조 대상자로 선정하고 지원하기 위해서는 법적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인과 자녀의 경제력에 대한 조사가 필요했다. 어르신에게 그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직접으로 부양의무자에게 연락하시기 어려우시면 관에서 주소지를 확인하여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어르신은 수십 년간 연락 없었던 가족들에게 그렇게 연락하게 되는 것에 대해 불편해 하셨지만, 앞으로의 생계에 대한 걱정과 의료지원 필요성으로 인해 그렇게라도 진행해 보자고 동의하셨다. 한편 시급한 의료비는 현재의 상황에서 긴급지원을 통해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본인부담금 내역을 확인하여 재난적의료비와 보건소의 암환자 지원사업 신청도 고려해야할 상황이었다.    

 

긴급지원 신청을 위해 어르신의 통장을 확인하던 중, 어르신이 3개월 전 부터 100만원이 넘는 실업급여를 받고 계신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상담과정 중에 확인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난감했었는데 어르신의 지인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어르신의 건강이 많이 나빠져서 병원에서 법적 보호자와의 상의가 필요하다고 보호자와 빨리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는 문의였다. 직접적으로 보호자의 연락처를 알 수가 없어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신고한 날 퇴근 시간 이후 어르신의 자제분으로 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자제분에게 어르신의 상황을 설명하니 연락 주셔서 감사하다며, 곧 본인이 병원으로 찾아뵙겠다고 이야기 하셨다. 병원에서 가족분들과 직접 통화를 희망하여 자제분의 연락처를 병원에 알려드려도 되겠냐고 여쭤보니 본인이 직접 병원에 연락 할 테니 병원에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지는 말라고 이야기하였다. 약간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본인의 이야기가 있으니 곧 오시겠지 라며 다소 안도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자제분은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문자로 재차 확인하여도 본인이 직접 병원으로 오겠다며 본인의 연락처를 병원에 알려주는 것에 대해 반대 하였다. 다행히 어르신은 급한 상황은 넘기시고 긴급지원을 통해 병원비를 지불한 후 요양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치료가 완료된 것은 아니었고 대형병원에서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하다고 하여 병원을 옮기게 되었다.      

요양병원에 와서도 어르신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실업급여 소득으로 인해 기초수급권에 의한 의료보호는 어려웠고, 그로 인해 매월 120여 만원의 비용이 필요하였다. 대형병원을 퇴원하며 긴급지원의료비를 이미 지원 받았다. 통장의 잔고는 200만원 정도였고, 앞으로의 의료비 지출은 가늠되지 않았다. 의료급여 지원을 위해 실업급여를 포기하고 기초수급권을 신청하더라도, 의료급여는 소급 없이 선정 이후 지원되기에 한 달 이상 공백이 생긴다. 어르신의 건강상황은 그렇게 긴 시간을 허락 할 것 같지 않았다. 여러모로 판단한 끝에 실업급여액이 비교적 큰 것을 고려하여 실업급여를 먼저 지원 받고 기초수급권은 추후 진행하기로 하였다. 구직활동을 할 수 없었던 어르신은 상병급여로 변경된 실업급여를 수령 받을 수 있었다. 본인이나 가족이 상병급여를 대신 신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동행정복지센터의 사례관리사 선생님이 관련 서류를 모두 챙겨 실업급여 신청을 위임받아 처리하였다. 실업급여 신청 후 첫 실업급여를 수령 받고, 다음날 어르신은 세상을 떠나셨다.     

맞춤형복지팀에서의 첫 번째 사례관리 종결이었다. 자제분은 어르신의 임종 까지 찾아오지 않았고, 어르신 사망 후 어르신의 배우자께서는 시신인수를 포기하셔서 상주 없이 장례업체를 통해 장례과정을 진행하였다.      

이번 일을 겪으며 몇 가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어르신과 가족들은 어떤 일로 인해 그렇게나 관계가 멀어지셨을까? 어르신이 집을 나오고 가족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었기에 마지막 얼굴 볼 수 있는 기회조차 거부하셨을까? 어떤 미움과 어떤 두려움이 있었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어르신이나 가족에 대해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삼자인 내가 왈가왈부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안타까웠다. 

    

어르신... 노령에도 불구하고 부채를 갚아가며 계속 일을 하셨고, 얼마 전까지 1500만원이라는 큰돈을 모으셨다. 과거에는 어떠셨는지 몰라도 최소한 최근 몇 년 간은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사셨을 것이다. 그러나 암으로 인해 어르신의 그간 힘들게 모아온 모든 돈은 의료비로 지출되었다. 그리고 더 발생할 의료비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부지원을 신청하였다. 의료비용이 이렇게 고비용인 것은 그냥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가? 의료는 중요한 부분이다. 어찌 보면 먹고 자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 연구개발비용에 대한 보상과 의사의 전문성에 대한 보상도 중요하다. 그러나 과연 한명의 어르신이 마지막 순간까지 성실하게 소중히 지켜온 경제적 존엄성을 이렇게 한순간에 앗아갈 만큼 꼭... 비싸야 하는가?     


어르신의 실업급여(상병급여) 신청을 대행하며 답답했던 순간도 있었다. 독거노인과 1인가구가 많은 현실이다. 어르신과 같은 상황의 분은 본인이나 가족이 관련 기관에 방문하여 상병급여를 신청할 수 없다. 지인분도 신청할 수 없었다. 동행정복지센터 직원이 위임받아 신청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여 협조하였다.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고용보험 공단이나 동행정복지센터나 같은 공공기관이다. 어르신과 같은 상황의 대상자가 보다 수월하게 신청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암환자이셨던 어르신의 진료비 지원을 위해 재난적 의료비, 긴급지원, 국가암지원 사업을 수 차례 비교해 봐야했다. 당시 총 300만원까지 지원가능하나, 특진비 등의 지원은 불가능한 긴급지원, 2000만원까지 지원이 가능하나 200만원까지는 자기부담금을 내고 나머지 본인부담금의 50%만 지원받는 재난적 의료비, 그리고 보건소의 국가암 검진 사업. 최종 금액이 나오지도 않은 병원비 계산서를 이리 계산해보고, 저리 계산해 보면서 어르신에게 가장 유리할 수 있는 지원방법을 찾아야 했다. 제도가 너무 복잡하지 않으면 좋겠다.     

어르신을 위한 지원방안을 여러모로 알아보느라 어르신의 지인, 관련 기관, 수십 년 만에 연락된 어르신의 자녀분과 통화를 했었지만, 정작 어르신을 만난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직접적인 병원방문은 사례관리사 선생님이 많이 맡아 하셨다. 생각해 보니 마지막 인사를 못 드렸다. 안녕히 가십시오...다는 알 수 없지만, 어르신의 노력들... 기억하겠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근무하는 덕에 상담기록지에 다양한 난제들을 가진 사례관리 대상자들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다. 사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다. 작은 행복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이전 04화 자갈밭에 피는 민들레꽃을 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