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 가질 수 있는 편견에 대하여
외출 후 돌아온 집 현관 손잡이에 작은 종이가방 하나가 걸려있었다. 옆집에도 같은 것이 걸려있는 것으로 봐서 또 근처 업체에서 홍보용 전단지를 걸어둔 것이라 생각했다. 그대로 둘 수는 없기에 집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 속에는 맛있게 보이는 빵이 고급진 포장에 담겨있었다. 앞에는 작은 쪽지가 붙어있었다.
"안녕하세요. ㅇㅇㅇ호입니다. 저희가 아직 서툴러서 아기가 밤중에 우는 경우가 종종 생길 것 같습니다. 조금만 양해해주시면 불편하시지 않게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바로 윗집 이웃이었다. 사실 우리 집은 층간 소음이 조금 심한 편이었다. 밤늦게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날 때면 정말 매너 없는 사람이 산다고 생각하고, 화를 냈던 적도 많았다. 그런데 사실은 배려심 깊은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괜히 민망하고 머쓱해졌다. 괜한 오해를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답례를 할까 했지만, 아내가 오버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속으로만 사과를 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나는 두 번이나 잘못된 편견을 가졌다. 밤늦게 걷는 소리가 난다는 이유만으로 윗집에 괴물이 산다고 생각했고, 손잡이에 걸려있는 이웃의 배려를 업체 홍보물이라고 지레짐작하고 폄하했다. 이처럼 편견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판단을 하고 평가를 한다. 이런 편견은 상대가 가족일 경우 특히 심해진다.
내 할머니는 여행을 싫어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장시간 걷는 것을 힘들어하셨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버거워하셨기 때문이다. 또 집에 계실 때면 늘 누워서 TV를 보시거나, 주무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저 편안히 쉬는 것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디에 모시고 갈 생각도 하지 못했고, 물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던 중 일본어를 배우게 되면서 일본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검색해보니 비용도 그리 크게 들지 않았다. 당시까지 비행기도 한 번 타본 적 없었기에 겸사겸사 일본에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께 말했다.
"할매~ 내 일본 한 번 갔다 올게요~"
당연하게도 '잘 다녀온나' 라던가, '혼자 그 멀리 어떻게 가냐'는 우려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할머니 입에서 나온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내도 같이 가자"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뜻밖의 대답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제야 할머니께 여행을 가자고 한 번도 말한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머니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할머니는 여행을 싫어하신다'라고 판단했다. 미리 물어봤더라면 가까운 제주도는 한 번 모시고 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이런 경우는 또 있었다. 우리는 처갓집과 도보 10분 거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종종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처갓집에는 아들이 없어서 그런지 장인어른께서 특히 반겨주신다. 아마도 함께 소주 한 잔 나눌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어느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내의 할머니, 즉 장인어른의 어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나] 장인어른, (아내의) 할머니도 그렇고 외할머니도 그렇고 더 늦기 전에 여행 한 번 모시고 가면 어떨까요? 가까운 거리라도요.
[장인어른] 여행? 이제 늦어가지고 되겠나, 연세가 있으셔서 어디 가시기는 힘들지. 그리고 어디 가는 거 안 좋아하신다.
[나] 저희 할머니도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게 아니더라고요. 조심스럽지만 제 생각에는 더 늦기 전에 가까운 거리라도 한 번 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게 안되면 형제분들과 가족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면 어떨까요.
[장인어른] 말이라도 생각해주니 고맙네. 생각해보니 예전에 어머니가 지리산 한 번 가고 싶다고 하신 적 있는 것 같긴 하네. 형제들이랑 한 번 이야기해봐야겠네.
장인어른 역시 그렇게까지는 생각해보신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은 가족 간의 편견을 특히 심화시킨다. 한 번 물어본 적도 없는데 가족의 의중을 판단한다. 반대로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법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중에는 현실적인 이유로 여행이나 가족사진을 포기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일은 나와 내 할머니, 그리고 처갓집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사실이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다. 연인과의 이별이든, 가족 간 사별이든 헤어짐이 있는 곳에는 후회만이 가득 남는다. 그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해줄 수 있는 것은 점차 줄어든다.
특히 여행이나 가족사진의 경우 특정 시기가 지나면 정말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도 '할머니 모시고 여행 한 번 갔어야 하는데', '비행기 한 번 태워드렸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너무 많이 남아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 물론 개중에는 그런 것을 진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 판단하지 말고 당사자에게 꼭 한 번은 물어봤으면 좋겠다.
만약 누군가가 자기 마음대로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여행이나 가족사진 찍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방송인 조세호의 예전 유행어를 빌려 꼭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안 물어보는데, 어떻게 가자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