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미래가 시작됐다

2. 낙관주의를 뒷받침할 또 다른 증거들

by SF mania

이 글은 SF로 보는 20세기라는 연재글의 두 번째 글입니다.

각편은 개별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


2. 낙관적 SF의 또 다른 예시들

1장에서 저는 제가 가장 애정하는 드라마들인 스타트렉, 울트라맨, 닥터후 시리즈를 통해 60년대 SF가 낙관적이었고 과학 기술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었음을 보여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3 작품만으로는 예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0년대에는 수많은 SF가 나왔고 그 작품들 중 상당수가 밝은 미래를 그렸습니다.

어떤 작품은 기술이 파괴가 아닌 구조에 쓰이는 낙관적 미래를 그렸고 또 어떤 작품은 국경을 초월한 다국적 팀을 그렸죠. 지금부터는 60년대 SF 작품들이 60년대 낙관주의라는 하나의 시대정신 아래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그리고 1장의 글을 보고 60년대 SF 3개의 작품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3 작품은 모두 66년에 시작되거나 장르가 변경되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엔 모두 다른 대륙에 있었습니다. 스타트렉은 미국, 울트라맨은 일본, 닥터후는 영국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스타트랙이 일본에서 방영한 년도는 1969년쯤부터였고 영국에서 또한 1969년부터 방영했습니다. 울트라맨은 미국에서 1966년 가을부터 방영했으나 스타트렉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기엔 사실상 동시방영이기 때문에 사실로 보기엔 힘듭니다. 또한 닥터후는 영국 내수용 방송이었기 때문에 일본, 미국에 방영은 한참 후에야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60년대 SF의 대표 3 작품은 당시 사회상, 즉 시대정신에 영향을 받아 각각에 대륙에서 독자적으로 꽃 피운 형제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형제들은 이 3 작품들을 제외하고도 많이 존재합니다. 이제부터 또 다른 60년대의 형제들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앞에 언급한 작품들도 마이너하나 지금부터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작품들이 많이 나올 겁니다.ㅋㅋ 그래도 최대한 설명을 덧붙일 테니 글을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① 철완 아톰(Astro Boy, 1963)

1963년 일본에서 방영을 시작한 철완 아톰은 일본 최초의 시리즈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친근한 원자력(10만 마력)을 지닌 아톰이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형식의 내용으로 에너지, 특히 원자력이 인류의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그렸습니다. 이런 내용이 과거 핵폭탄을 두 번 맞은 일본에서 나왔다는 점은 굉장히 아이러니하면서도 당시 사회가 원자력으로 대표되는 미래의 기술에 대해 얼마나 맹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실제로 1950년대에서 60년대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제창했고 인류가 에너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하여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당시 사회의 생각을 잘 나타냅니다.

썬더버드(Thunderbirds, 1965)

1965년 방영된 썬더버드는 인형극 형식에 드라마입니다. 트레이시 가문이라는 부유한 집안이 여러 과학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을 구조한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화려한 컬러와 정교한 미니어처 기술로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비록 사설이긴 해도 구조를 담당하는 기구가 등장해 스타트렉, 울트라맨, 닥터후처럼 과학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을 구조하고 구조는 정치적 이념이나 갈등과 상관없이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이 또한 당시 과학 기술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사회가 갖고 있었고 또한 이념과 갈등을 넘어선 조직에 필요성을 갈망했음을 잘 보여줍니다.

③ 타임터널(Time Tunnel, 1966)

1966년 방영된 미국 드라마입니다. 시간여행을 주소재로 하는 이 드라마는 스타트렉이 방영한 다음날에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애리조나 사막 지하 깊은 곳에 타임 터널을 건설했다는 설정에 이 드라마는 당시 60년대 사회가 그린 스타플릿, 과학특수대등의 이른바 '착한 시스템'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통 90년대의 시간 여행물(터미네이터, 12 몽키즈 등)에서 정부나 군대는 음모를 꾸미거나 무능하거나 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타임터널에서의 정부, 즉 시스템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타임터널에서는 젊은 과학자와 그의 동료가 시간 속에 갇히고 과거와 미래를 떠돌며 모험을 합니다. 시간을 떠도는 두 주인공들을 돕기 위해 현재 시점에 장군과 과학자들은 필사적으로 그들을 돕습니다. 주인공들을 모니터링하고 조언을 주거나 물자를 제공합니다. 이는 국가와 시스템은 개인을 버리지 않으며 과학기술로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60년대의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보여줍니다. 이는 같은 비밀로 둘러싸인 기지를 다루어도 음모와 은폐를 중점으로 다룬 엑스파일과 대비됩니다.


또한 타임 터널의 1화를 보면 주인공들은 타이타닉에 한복판에 떨어지는데 이들은 타이타닉 침몰 기사를 들고 가서 타이타닉의 선장을 설득하고 모두를 구하려 합니다. 물론 선장을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하나 이는 당시 SF가 선한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을 운용하는 인간의 선의를 얼마나 신뢰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비록 역사를 바꾸는 데는 실패하지만, 기술과 지식을 총동원해 과거의 비극을 막아보려 했던 그들의 시도는 기술이 재앙이 아닌 구원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④ 사이보그 009 극장판(Cyborg 009, 1966)

1966년 일본 극장에서 방영된 사이보그 009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초능력자들의 다국적 팀 시스템이 나옵니다. 여기서 9명의 사이보그 전사들은 각기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전쟁을 막기 위해 하나로 뭉칩니다.

001인 이반 위스키는 소련, 002 제트 링크는 미국, 003은 프랑스, 004는 동독, 005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006은 중국, 007은 영국, 008은 케냐, 009는 일본출신으로 정치적 이념을 뛰어넘어 지구 방위라는 하나의 시스템 아래에서 형제가 될 수 있음을 그렸습니다.


⑤배트맨(Batman, 1966)

마지막으로 SF라고 부르기 애매하나 60년대의 낙관주의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예시로 1966년의 배트맨을 소개하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밤중에 다니고 부패한 고담시의 경찰들을 불신하며 홀로 다니는 다크나이트의 배트맨과 달리 66년도 배트맨은 대낮에 활보하고 경찰청장과 배트폰이라는 핫라인으로 긴밀하게 소통합니다. 66년도의 배트맨은 자경당원이 아니라 시스템이 신뢰하는 모범적 파트너입니다. 그는 영웅인 동시에 범죄자인 현대의 배트맨이 아닌 공권력과 사회시스템에 협력하는 모범적 사회인이자 영웅입니다.

이는 당시 60년대 대중문화가 공권력과 사회 시스템을 의심에 대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바라봤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지금까지 스타트렉, 울트라맨, 닥터후라는 현대 SF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거대작들을 넘어 마이너 하지만 60년대를 대표하는 철완 아톰, 썬더버드, 타임터널, 사이보그 009, 배트맨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 대중문화 전반에 깔려있던 거대한 낙관주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미국, 영국, 일본이라는 서로 다른 대륙에서 서로의 작품을 실시간으로 베낄 수도 없고 서로 소통하기도 힘든 그 시기에 창작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꿈을 꾸었습니다.


스타트렉, 울트라맨, 썬더버드로 대표되는 국경을 초월한 국제적 협력, 타임터널과 배트맨으로 대표되는 선의를 가진 시스템과 정부, 그리고 아톰과 닥터후, 스타트렉, 울트라맨등으로 대표되는 에너지와 기술을 통한 구원 등등

1960년대 인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비슷한 꿈을 꾸었을까요? 그리고 왜 이런 꿈은 SF를 통해 나타났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왜 SF가 이 시기 유행했는지에 대해서 분석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풍요로운 에너지와 냉전의 공포가 어떻게 결합하여 1960년대의 밝은 SF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분석해 보겠군요. SF란 장르가 어떻게 시대를 반영했고 또 어떻게 현실의 결핍을 채우는 도구가 되었는지 궁금하시다면 구독 부탁드리겠습니다. ㅋ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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