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관리와 이웃, 옆집 강아지, 벌레 야생 동물과의 공생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쭉 자라온 서울 토박이라서 아파트와 엘레베이터, 그리고 계단에 너무 익숙한 사람이다. 아직도 낯선 밴쿠버 주택에서의 삶이란 무엇인지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면서 배우고 적응하는 중이다.
친 아버지의 옛 본가, 즉 나의 친할아버지 댁은 2층 양옥 주택이었는데 친 어머니는 20년 전 쯤 그 곳에서 시집살이를 하셨다. 지금이야 연탄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그 당시엔 연탄을 때러 어두운 지하실에 들어가실 때면 칠흙같이 깜깜한 계단을 찬송가를 부르면서 내려가셨단다. 겨울에 흰 눈이 오면 집 앞마당 계단의 눈을 허리가 끊어져라 다 치워야 했고, 청명한 가을날 잘 익은 감나무의 감이 마당의 돌에 떨어지면, 감이 묻은 돌을 깨끗하게 빡빡 닦으셔야 했는데 그 일이 만만치 않아서 예전 서울에 함께 살 때 내가 지나가는 말로 '엄마 우리 주택에 사는건 어때?'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며 힘들어서 엄마는 싫다고 하셨다.
그 당시만 해도 쥐가 집에 가끔 보였고 그래서 쥐덫을 2층 마루에 두고 생활을 했었다. 절대로 만지면 안된다고 해서 반경 30cm 이내로는 근접한 일이 없었다. 그 이후 나는 계속 아파트에서 살았고, 20대 이후에는 고층 건물에서 살았기 때문에 창문을 제대로 못열고 매일매일 엘레베이터에 의지해서 생활을 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늦잠을 자면 도무지 오지 않는 엘레베이터 층 숫자만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좋았고 벌레도 적었지만 땅냄새와 흙과 나무의 냄새는 못 맡고 살았다. 아파트에서는 모두 다 똑같이 보이는 현관문과 똑같은 엘레베이터 때문에 가끔 실수로 다른 동에 가서 우리집과 똑같은 층에 내리기도 했었다.
밴쿠버의 주택은 지붕을 포함한 집 색깔이 각양각색이다. 주인의 취향에 따라 앞마당에 잔디를 심는 사람도 있고 자갈을 깔아놓는 사람도 있고 여러 종류의 작은 나무를 심는 사람도 있다. 이상했던 것은 우리나라 주택에서 보이는 사람 키보다 높은 시멘트 • 돌 • 철 담장이 없다. 우리나라 주택은 벽돌이나 철벽으로 울타리를 쳐서 사생활과 보안을 보호하지만, 벤쿠버의 주택에서는 벽돌 울타리나 철벽 울타리를 보기 힘들다. 울타리가 없는 집들이 일반적인 밴쿠버 주택이다. 가끔 대로변에 집이 있어서 집주인이 사생활을 보호하고 싶은 경우에 집 둘레에 나무를 빽빽하게 심어서 사생활을 보호한다. 처음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화 속 나무 미로처럼 보였고 무척이나 신기했다.
대로변에서 안 쪽으로 들어와 있는 집들은 대부분 잔디밭 앞마당이 오픈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에서 개 산책을 시키다가 개가 남의 집 잔디밭에 들어와 응가를 누거나 소변을 보는 일이 빈번하다. 우리쪽 잔디밭도 마찬가지다. 옆집 반려견인 '주노'와 '카야'가 우리 쪽 잔디밭을 좋아하는데, 밖에만 나오면 우리쪽 잔디밭으로 와서 쉬야와 응아를 누고 행복해한다. 앞마당과 뒷마당까지 넘나드는데 이젠 습관이 되어버린 듯 하다. 우리 신랑은 옆집과 친하게 지내는 공생관계라 그려려니 한다. 다른 집들 산책하다 보면 이런 일 때문에 가끔 잔디밭에 개가 응가를 누는 포즈가 그려져 있고 No dogs!!! 라고 쓰여져 있는 판을 꽂아두기도 한다.
옆집과 공생관계라 함은, 쓰레기 버리는 날, 멀리 여행을 가서 집을 오래 비우는 날, 양쪽으로 우리쪽 땅과 옆집 땅이 붙는 지점에서 나뭇가지와 잎사귀에 대한 유지보수의 결정권 논의 등등의 관한 서로 돕고 양쪽이 윈윈하는 방향으로 돕는다는 의미다. 밴쿠버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 수거차가 와서 일주일 쓰레기를 수거해가는데, 집집마다 유기농쓰레기(음식물 및 나뭇가지) 1박스, 일반쓰레기 1박스만 수거해간다. 정해진 1박스보다 더 내놓으면 수거차가 안 가져가기 때문에 옆집이 쓰레기가 적은 날은 옆집 쓰레기통에 조금 넣고 우리쪽이 적은 날은 옆집이 우리쪽에 넣어서 처리한다. 그리고 여행을 가서 집을 비우는 날이면 우편함을 한 번씩 체크해서 집을 오래 비운 것 처럼 보이지 않게 신경써주고 쓰레기통도 수거하는 날에 내다주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 잘 지내는게 유리하다. 결혼 후 벤쿠버 입국 후 2주 자가격리 할 동안에 옆집 이웃 ‘제인’이 꽃병에 예쁜 꽃을 풍성하게 담아 환영선물이라고 두고 갔고, 자가격리로 못나가는 것을 알고는 우유와 달걀, 과일 야채 등을 대신 사다가 현관문 앞에 두고 갔다. 그래서 조금 수월했던 것도 같다.
나는 벌레에 약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쪼끄만한 벌레가 나를 무서워하는게 맞지. 오히려 내가 벌레를 보면 비명 소리를 지르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밴쿠버 그중에서도 특히 노스밴쿠버는 나무가 많고 자연을 그대로 두고 거기에 집을 짓고 살기 때문에 집 안으로 거미와 각종 벌레가 많이 들어온다. 벌레 약이 몸에 안좋다며 쓰지 않는 남편 덕에 매우 오가닉(organic) 한 삶을 살다보니 벌레와 마주칠 일이 많다. 남편은 벌레에 무던한 성격이어서 그런지 처음에 집안 계단에 거미줄이 쳐져 있는데 어쩜 그걸 그대로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낸다. 처음엔 모르고 청소기로 거미줄을 다 빨아들였다. 이게 뭐야..!?!? 하면서 말이다. 아랫층 화장실에 들어가면 가끔 거미가 여기 들어오지마! 하면서 바닥에 혹은 창문 옆에 혹은 욕조 안에 버티고 앉아있다. 헐.. 비명을 지르면 남편이 달려와서 거미나 벌레를 잡아주지만 혼자 있는 날이면 부리나케 도망쳐나온다. 우리 집인데도 들어갈 수가 없다 ㅠ..
그런데 알고보니 거미는 곤충을 잡아먹으며 사는 종족이어서, 사실상 나에게는 고마운 존재다. 그런데도 다리가 많이 달린 새까만 거미가 나는 흉칙해서 같이 지낼 수가 없다. ㅋ 여름엔 나방이 많아 저녁때가 되면 창문으로 나방이 빼곡히 붙어서 마치 한 폭의 나방 그림을 보는 듯 하다. 가끔씩 현관문으로 들어와서 숨어있다가 파다닥 하고 나를 놀래키면 나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면서 파리채로 나방을 잡는 방법을 터득했다. 휴.. 여기서 더 지내면 벌레들과 무던하게 같이 살 수 있을까? 오래 살고 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