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받을 용기
나는 다른 사람의 반응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다. 그래서 어떠한 것이든 창호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타인의 반응을 흡수한다. 이것은 사람을 굉장히 피곤하고 불안감에 들게 한다. 항상 타인의 기분을 살피고 표정과 말투를 신경 쓰며 하루를 살아가면 별 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쉽게 피로해지고 지친다. 나는 항상 어떠한 것을 결정할 때에 타인이 먼저 기준이 되는데 그래서 가끔은 내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다른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게 ‘배려’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게 ‘착하다’라고 할 수 있을까? 많은 친구들이 나보고 착하다고 말하고는 했지만 나는 그것이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마저도 나를 위한 말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싫어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아래에는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깔려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우리는 살면서 굉장히 당연한 것들을 잊고 살아간다.
우리는 왜 항상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바라보고 살아갈까? 모두에게 관심받고 사랑받을 수는 없다. 나는 분명 나의 사람들에게 애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그 애정을 다른 얼굴만 아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강도로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항상 외롭다고 느끼는 이유는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사랑은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해서이기 때문은 아닐까. 항상 구멍이 뚫린 것처럼 외로움이 느껴지고 채워지지 않는 것과 같은 공허함을 느끼는데 어쩌면 나는 전제 조건을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한다 ‘라는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설정하고 거기에 미치지 못 하고 있다고 끝도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꼭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추어서 살아가야 할까? 나는 지금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며 학과 공부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 하고 있다. 나는 항상 이렇게 차오르는 생각이 나를 잠식하는 것 같아서 머리가 너무 아픈데 이렇게나마 쓰면서 생각을 순환시키면서 숨통이 트이면서 호흡이 가능해진다. 간호진단과 실습, 그 많은 것들 중 어떤 것에도 조금의 애정도 가지지 못 하며 무의미하게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돌연변이가 된 것과 같은 기분이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적당히 따라가면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받으며 적당히 돈을 벌어가며 살아가고 싶은데 그게 나에게는 너무나 어렵다. 우선 나는 지금 먼저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그 모든 것들 사이에서 자책감과 불안, 우울에 잠식되어 생각이 너무 고여있었다. 이것이 나를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질질 끌고 간 느낌이었지만 어느 순간 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도 수업을 어영부영 듣고 도망치듯이 집으로 오자마자 참았던 숨을 뱉어내듯이 글을 쓰고 있다. 나도 평범하게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성적을 받아 어느 정도의 직장을 가서 어느 정도의 돈을 벌어서 어느 정도의 감정 소모만 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는 한다.
나는 나대로, 이대로 있어도 되지 않을까. ‘적당히’라고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내가 꼭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서 나 스스로를 자책의 덩어리에 욱여넣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