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제의 상품명.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항우울제.
내가 처음으로 복용했던 약은 프로작이었다. 대부분의 정신과 약이 그렇듯이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먹는 날과 안 먹는 날의 차이를 거의 못 느꼈으나 심리적인 극복 효과라도 얻으려고 열심히 복용했던 것 같다. 그렇게 복용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점점 기분이나 우울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았고 두근거렸고 붕 떠있는 것 같았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했던 기분에 나는 매우 신이 났다. 이제 나도 '우울'이라는 것과 멀어질 수 있겠구나. 그렇게 프로작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졌다.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그것의 양면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분명히 나는 ' 죽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는 정도가 줄었지만 생각 회로 자체가 마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으면 나를 잡아먹고 어둠 속으로 끌고 가는 그 생각의 반복에서 빠져나오기가 힘이 드는데 프로작이 마치 그곳에서 나를 끌어올려주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되니 부작용에 대한 인지는 조금도 하지 못 하고 ' 다다익선 '처럼 많이 복용할수록 나의 기분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착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먹으면 나의 기분이 좋아진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것은 나에게 너무나 달콤하고 유혹적이었다.
정신과 약을 복용할 때, 주의할 점은 의사 선생님과의 주의 깊은 상담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매우 어리석게도 손톱만 한 그 약이 나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주겠어라고 생각했었지만 정신과 약은 일반 감기약이나 진통제와는 달리 뇌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영역의 약물이어서 의사 선생님의 처방을 나의 기분이나 판단대로 임의적으로 바꿔서 복용하면 위험하다.
그것을 경험하고 나서야 나는 정신과 약이 얼마 큼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깨달았다. 다다익선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상식 밖의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는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러서야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느꼈다. 지속적으로 복용해서 몸 안에 남아있던 성분과 다른 여러 상황적인 요인들이 있었지만 순간적인 우울을 참지 못 하고 이틀 치 복용량을 한 번에 삼켜버린 것이 문제였다. 더군다나 그 시기에는 극도의 우울감과 프로작이 나와 잘 맞다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으로 인해 복용량을 늘린 상태에서 복용하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난 상태였고 아침에 이미 하루 치를 복용한 상태였다.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 한다. 온 세상이 빨간색이고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순식간에 달려들 것만 같은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얼굴을 눈물범벅이었고 길에서 소리를 지르며 울면서 주저앉았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 하나하나가 너무나 날카로웠고 아팠다. 가장 무서웠던 장면은 사람의 얼굴 형태가 둘로 나누어지면서 영화에서나 나오는 외계인으로 보였다. 극도의 공포감이었다. 시야는 일그러졌고 호흡은 순식간에 정지 상태가 올 것만 같았으며 너무 고통스러웠다.
나중에 프로작 과다복용 증세 중에 ' 환각'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외계인의 형체가 이해가 되었다. 프로작 한 알이 20mg인데 하루에 최대 복용량이 80mg이다. 그것을 넘는 6알을 먹은 데다가 그동안 몸 안에 쌓였던 약물의 성분이 야기했던 과다복용은 내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에도 느껴보지 못 했던 공포감이었다. 정말로 삶이 여기에서 끝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연노란색과 연두색 원통 모양의 알록달록한 프로작. 색깔은 참 알록달록 예쁘다. 정신과 약을 입에 털어 넣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왜 정신과 약물은 이렇게 알록달록하고 예쁠까? 마치 색종이처럼 말이다. 가지각색의 약을 먹다가 ' 너는 지금 매우 슬프고 힘들 테니까 이런 예쁜 색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라는 건가?'라는 꼬아진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프로작 과다복용 후 2년이 더 넘은 지금 나는 다시 그것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의존하기 시작했고 부작용 증세인 멍한 상태와 두통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정신과 약은 양날의 검이다. 그것은 분명히 내 안의 우울을 줄여주는 데 도움을 주는 부분이 있고 기분을 끌어올려 주지만 사람의 기분은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서 다다익선으로 오래, 많이 먹을수록 더 좋은 것이 당연히 아니다. 결과적인 목표는 그것과의 ' 공존'이 아니라 ' 단약'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