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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띠또 Dec 08. 2023

커피

매일 습관처럼 커피를 마시고 있다. 커피 맛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커피가 몸에 잘 맞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커피를 마실 때 무언가가 타고 남은 재료가 내는 쓴 맛 말고는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우유나 시럽을 추가한 라테류를 고른다. 커피 맛 자체보다 부속 재료들의 맛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다. 한 때는 나도 전문적인 커피인이 되어보고 싶었다. 플라워 향과 과실의 산미가 느껴지는, 케냐 또는 에콰도르에서 공수해 온 등의 설명이 붙은 원두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 원두를 가장 잘 맛볼 수 있다는 드립 커피를 마셔보기도 지만 딱히 큰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커피를 마실까. 돌이켜보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면 서부터이다. 스터디를 해야 했고 과제를 할 때 머물 공간이 필요했다. 매일같이 카페를 가는 비용이 부담스러워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입시를 준비했다. 대학원에 가서도 이 습관은 이어졌다. 따뜻하고 편안한 장소였지만 마음은 헐벗은 것처럼 추웠다. 불확실한 미래에  포근한 장소에서 무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커피 한 잔, 추운 겨울날에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줬다. 케이크 한 조각과 라한 잔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현재의 버거움에 얽매인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줬다. 이 습관은 취업 준비 중에도, 회사를 다니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빈속에 커피를 먹는 습관은 해가 지나면서 몸의 반응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아침마다 커피를 찾았다. 업무적으로, 관계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 있었고 무언가 도피처가 필요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전혀 마시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강박처럼 커피를 샀다. 커피를 사러 나가지 않을 때 느꼈던 불쾌한 감정은 고통이었다. 고통을 직면해 온몸으로 느끼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고, 직접 부딪치고, 때론 흘려보내면서 시간이 지나니 몸보다 마음에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둘 곳 없는 마음을 어디론가 데려가기 위해 매일 갔었나 보다. 나의 마음은 나 스스로 돌보아야 한다. 이를 알면서도 항상 누군가에게 기대게 된다. 그 누군가가 없으면 찾게 된다. 그 누군가가 적절한 사람이 전혀 아닐지어도 그에 대한 기대와 일말의 희망을 버리기가 어렵다. 누군가 없어서 그렇게 카페를 찾았다. 그렇게 도돌이표처럼 반복된 일 년이었다.


사람과 관계는 내게 언제나 어렵다. 나의 대처도 항상 미숙하다. 내가 또 누굴 섣불리 믿었구나 후회하고 끝나는 관계가 점점 많아진다. 더 나은 다음이 당연했던 시기는 과거가 되었다. 누군가와 알게 되고, 그 사람이 궁금하고 좋아진다. 이내 실망할 일이 생긴다. 나이가 들수록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한다. 아무리 애써보아도 그 어떤 장점도 찾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처음부터 벽을 세우고 가면을 쓴 모습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관계에서 상처를 받거나 실망하게 되면 극단적인 생각이 든다. 그 누구도 안 믿을 거야, 이제 누구랑도 친구 할 생각 없어. 때로는 참지 못하고 내 주위 사람에게 말하기도 하는데 뒤이어 씁쓸하기만 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가까워지는 것을 언제나 바랐다. 슬프게도,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가까움이다. 무작정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그러한 시도는 오해와 충돌을 낳는다. 충분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할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애초에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적당한 거리. 참 어려우면서도 간단히 생각하면 쉬운 것. 나도 당분간은 쉬운 길을 택하려 한다.


외부의 자극을 찾는 것을 멈추고 내부를 채우는 것. 나의 생활, 가정부터 돌보기. 남편과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기. 그 이후에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이전 글에도 적었지만 지금까지는 공부-일이 너무나 중요해 그 외의 것을 소홀히 했다. 빈 시간은 자연스레 사람으로 채워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일만 생각하면 그 자체로 재미있을 때도 많고, 나의 전공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일 외의 나머지를 내버려 둘 만큼 가치 있지도, 소중하지도 않다. 자동적으로,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이라고 배우고, 그래왔는데 꼭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 변화가 반갑다. 나에게 힘듦과 자괴감 모멸감을 주었던 그 지시가 오히려 나를 돌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얼마 전까지도 같은 다짐을 했는데 생활은 등한시하고 또 무슨 일을 할까 고민을 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자. 지나간 것은 돌아보지 말고 매이지도 말고 앞으로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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