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호사
마루에서 고양이와 놀던 손자가 방에 들어와 엄마랑 이야기하는데 딸이 빵 터진다.
“이게 리얼 러브다!” 딸의 명쾌한 정의에 백퍼센트 공감이 된다.
고양이 수염에 묻은 빗방울을 닦아준 이야기를 제스추어까지 재연하는데 사랑 그 자체이다.
손자의 손동작으로 볼 때 고양이의 볼에 있는 긴털 한올에 빗방울 하나가 묻어있었던 듯 짐작이 된다.
‘세정이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호사네~~~“
무심한듯 말을 했지만 반성과 연민이 찌르르 퍼진다.
비가 오면 오는대로 맨몸으로 다니고, 추우면 추운대로 보일러실에 자리봐서 자는 셀프살이가 동물들의 생태려니하던 내게 7살 손자의 살뜰한 손길이 가르침이 된다.
손자와 고양이 둘은 만나면 주저없는 스킨쉽을 나눈다. 손자가 아기였을 적에는 아무 생각없이 마구 깔아뭉개고 힘주어 만지는 바람에 세정이가 은근 피해 다녔다. 그러다가 둘이 서로 힘조절을 하며 적당히 부비고 만지기를 맡기는 때가 왔다. 가끔은 둘이 키대로 배를 맞대고 누워 세상없는 평화스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호흡도 감촉도 스며들어 짧은 잠에 들기도 하는 모습은 성스럽다고나할까?
손자가 백일즈음에 세정이도 눈도 안뜬 아기로 발견되었다.
그 무렵 다용도실에 쥐가 들락거리는 것 같아서 신경을 쓰고 있다가 집에 드나드는 고양이를 유인해 한나절 가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납게 우는 것이 아무래도 새끼를 둔 어미같아 칮아보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구석진 곳에 주먹만한 아기 4마리가 숨겨져 있었다.
새끼에게 젖을 먹여야하는 어미를 한 나절이나 가두어 두었으니 큰 일이 난 것이다. 아기는 배고프고 불안해서 울고, 어미는 아기 걱정에 출구를 찾느라 울고, 절박한 교신이었던 것이다.
이런 못할 짓을 저지르다니!
그 때부터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집주인과 고양이 가족 5마리의 동거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인연이란게 어디 사람만의 일이던가?
미안한 마음에 우유부터 생선 곰탕까지 갖다 바치며 어색하지만 극진히 모셨다.
봄햇살이 꼬슬꼬슬한 축담에서 어미 등을 타고 오르내리며 서로 핥아주는 고양이 가족을 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꽃이 피는 뜰에 생동감이 더해졌다.
계절도 변하고 고양이들도 자라서 나무에 오르내리며 장난치느라 뜰전체가 놀이터가 되었다. 낮은 나무 사이에는 터널이 생기고, 5마리의 분뇨냄새가 꽃향기를 무색케했다.
고양이가 날짐승을 잘 잡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뛰어올라 잡는 건 타고난 기본기로 보인다. 남쪽나라에서 날아온 전설의 귀빈 제비 새끼까지 노린다. 노란 부리로 목쉬게 울어 얻어먹고, 날개에 힘이 생겨 비행연습을 하다가 낮게 날면 순식간에 낚아챈다.
고양이의 야성도 만만치가 않다. 언제부터 사람과 가까워져 쉬운 생존에 길들여졌는지 모르지만 천성은 야생이다.
다섯 마리 고양이들의 덩치와 행동반경이 부담스러워 시청의 도움을 받아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야생으로 방사했다. 그 결과 남은 한 마리가 지금의 세정이다. 가족을 생이별시켜 또 한번 빚을 졌다. 혼자 남은 쓸쓸함이 온몸에서 풍겨나왔으나 모르는척 외면할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길냥이들은 세정이가 부럽기 그지 없는 귀족으로 보이는지 가끔 자리를 탐내는 싸움이 벌어진다.
다행히도 세정이의 어진 심성이 다른 고양이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자주 집을 비우는 주인 덕분에 길냥이들과 공생하는 법을 터득해 그럭저럭 지내는 것 같다. 먹이를 주면 모른척 자리를 비켜 나누어 먹기도 하고 가끔은 남겨두기도 하는 눈치이다.
어쩌랴, 주인이 없을 때 굶지 않을려면 길냥이들과 평소에 교분을 쌓아두어야 휴지통이라도 뒤질 기회를 허락받지 않을까?
작년부터 세정이의 건강이 좋지 않아 반질거리던 털도 부스스하고 의욕이 없이 늘어져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건강하지 못한 세정이가 세찬 비바람에 불안해서 안절부절이다.
손주는 고양이가 안스러워 마루를 들락거리고, 나는 감기기가 있는 손주가 걱정스러워 거실에 데리고 들어오기를 허락했다. 털이 빠져서 무릎에 대고 안을 방석도 내주었다. 실내출입도 방석도 손자가 아니면 절대 허용되지 않는 일이다.
내가 손자에게 아까운 것도 귀한 것도 없듯이 손자는 세정이를 위해서는 귀천이 없다. 오동통 하얀 손으로 눈꼽도 닦아주고 때묻은 털에 묻은 빗방울도 애연해한다. 엄지와 검지로 한 방울의 빗물을 살짝 걷어내주는 동작에 진정한 사랑이 담겨있다.
누가 고양이의 천연방수 털에 묻은 한방울의 비를 안타까와 하겠는가?
관계의 최고의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던 적이 있다.
고양이와 사람이 다르지 않은 동일시가 아이들의 무구한 마음이다.
여태 세정이에게 고양이라는 동물의 자리 그 이상도 이하도 허락하지 않았던 나를 돌아보며 어린이가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을 깊이 새겨본다.
“리얼 러브”
사랑은 그런 것이다.
미추도 선악도 귀천도 아닌 그 이전의 본질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숭고할 것도 아름다울 것도 없는 그냥 그 상태, 그 마음이 아닌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