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레이션 노매드

by 이해린

잠자는 리스본

2019년 2월 15일. 이 곳에 발을 딛자마자 처음 한 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새벽 4시경, 기차역과 이어진 쇼핑센터 어귀에서 쇼핑카트를 끌고 온 것이었다.

난 친구들과 함께 스페인 남부 도시 코르도바에서 리스본으로 야간 버스를 타고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돌이켜보건대 참 용감한 선택이 아닐 수가 없다.

비행기를 안 탄 이유는 코르도바가 공항이 없기 때문에 모든 짐을 들고 옆 도시 세비야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바로 직행 버스를 타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최선의 선택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걸 감안하고도 리스본행 야간 버스는 용감한 선택이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가슴 한편을 간지럽히는 그런 낭만을 동반하는 여정이었냐 하면, 그건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산산조각이 났다고 할 수 있다.

필시 야간 버스라 텅텅 비었을 줄 알았던 버스는 이미 다른 도시들을 한 바퀴 돌고 왔는지 반이 넘게 차있었다.

두 좌석을 다 차지하려고 했던 야망을 아쉬움으로 덮어버리고, 눈에 겨우 보이는 빈 좌석을 하나 꿰차 앉았고 친구들도 듬성듬성 제각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앞뒤로 꽉꽉 다 차 버린 자리들로 좌석을 눕히지도 못하고 여덟 시간을 내리 달렸다.

그 와중에 노곤해진 몸과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못 이기고 얕은 수면을 취하기도 했다.

물론 그 수면은 주변 소음과 버스의 둔탁한 움직임으로 별 수 없이 얼마 가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여덟 시간이 지났고, 내 친구는 손목시계의 시침을 한 칸 앞으로 옮겼다.

버스는 매끄럽게 리스본 땅을 밟았다.


많은 유럽 도시들 중 리스본은 처음이었다.

요새 여행객들에게 그렇게 각광받는 도시들 중 하나라는데 그 멋진 도시를 한 번도 와보지 못했다니, 설렘에 피곤함이 절로 떨쳐졌다.

새벽 4시, 아직도 밤하늘에 별이 두어 개가 박혀있었다.

이 도시가 잠에서 깨어나면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지 계속 피어나는 호기심 어린 질문들이 자꾸 마음을 두들겼다.

“뭐부터 하지?”

“적어도 아침은 돼야지 집주인을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시간이 넉넉잡아 세 시간은 남겠는데?”

“배고파 죽을 거 같아.”

“그전에 추워 죽을 거 같아.”

“저기 역사 안에 24시간 카페가 있는 거 같던데 거기서 해 뜰 때까지 기다리자.”

멋진 계획이었다.

다만 우리의 근사한 플랜을 막는 건 다만 발밑에 차이는 짐꾸러미들이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고, 일이 킬로짜리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하나의 집을 옮기는 듯한 거대한 설치 미술의 현장처럼 콘크리트 바닥 여기저기에 꽉 메워진 여행용 가방들과 캐리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고안해낸 것이 지하철 역사에서 발굴해낸 잔뜩 녹슨 쇼핑카트 서너 개로 될 수 있는 대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짐들을 옮기는 것이었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우린 그 말대로 행하고 있었다.

추위를 피하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가깝고도 멀리 있는 저 허름한 24시간 카페를 향해 쇼핑카트에 짐을 싣고 바퀴를 힘차게 굴리며 향하고 있던 것이었다.


리스본에 내디딘 첫걸음은 아무도 모르는 새벽에 몰래 이루어졌다.

하늘이 서서히 어둠을 걷어내고 밝은 햇살을 지붕 위에 드리우기 시작했을 때, 우린 눈을 빛냈다.

아침을 손수 끌어다가 열었던 것처럼, 또 밤 사이에 텅 빈 역사를 되는대로 가로지르며 그 무지막지한 달음박질로 도시 전체를 깨운 것 마냥 7명의 친구들은 더없이 위풍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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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 컬러로 칠해진 네모난 방 가운데 놓인 네모난 침대에 누워 지난 팔개월에 가까운 시간들을 반추했다.

그 여정을 내 손으로 시작했으며 내 발로 걸어왔다는게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 내 직업은 초등교사였다.

고로, 난 2006년 영예로운 졸업장을 가슴팍에 쥐고 초등학교 정문을 나선 이후로 그 때의 나와 띠동갑이 되어서야 다시 초등학교로 되돌아가게 되었다는거다.

물론 내가 주로 사용하는 문이 이제는 뒷문이 아니라 앞문이 되었다는 나름 큰 차이가 생겼지만 말이다.

반듯한 초등학교를 거쳐 폭풍같은 중학교를 지나 체육복과 슬리퍼가 착장의 끝이었던 고등학교까지 지내고, 부푼 기대만큼 찬란하지만은 않았던 대학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나서 다시 돌아온 학교는 정겨웠다.

학교는 내 평생의 웃음과 울음을 묻어두었던 곳이었기에 다시 교정 안에 들어서는 것이 전혀 낯설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다.

거칠었던 나뭇바닥이 매끈해졌고, 교과서 삽화가 더 깜찍해졌다.

초딩의 가장 초딩스러운 모습을 제일 가까이서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교사의 가장 큰 특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따금씩 들기도 하는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유유한 흐름을 끊었던 건 외부의 그 어떤 방해공작도 아닌 내면의 부름이었다.

교실의 각과 책상의 정렬이, 하얀 셔츠에 묻은 지난 미술 시간의 물감 자국이, 운동장에 암호처럼 길을 낸 석회가루들이 어느샌가부터 한숨을 자아냈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지울 수 있는 새로운 곳을 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서있는 이 곳과는 정반대의 곳으로 떠난다면 어떻게 될까.

한 자루의 몽당연필마저 제 자리를 알고 있는 우리의 교실이자 나의 작은 보금자리를 떠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기다릴까.

여행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 곳의 풍경에 스며들지 않고 조금은 비껴선 채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엄마, 나 그냥 학교 그만둘까봐.”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 나랑 안 맞는 거 같아.”

“그만두고 뭐 할거 생각해봤어?”

“아니, 뭐. 딱히?”

“힘들면 관둬. 누가 억지로 시켜서 다닐 필요는 없잖아.”

“외국으로 갈까? 교육 봉사활동 많던데.”

“외국 어디.”

“몰라? 어디든.”

이런 식의 대화는 다른 장소와 형태로 수십번이 이어졌다.

상대 또한 엄마에서 언니에게로, 또 언니에서 아빠로 바톤터치를 하듯 릴레이로 이어졌다.

가끔 동생이 이런 말을 던지기도 했다.

“누나, 진짜 그만두긴 할거야?”

언제든지 놓을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쥐고 있는 내 손 안에 하얀 분필을 끝끝내 먼저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그건 어떤 마음에서 발휘된 건지는 정확히 재단할 수 없지만 끈기와 미련 혹은 불안감이 일정 비율로 섞인 혼합체의 결과물이었다.

동생의 물음에 선뜻 답할 수 없었던 것은 교실 밖을 나온다는 건 아직까지도 머리속에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 탓이었다.

그래서 난 내 특기를 발휘하기로 했다, 한 발만 걸치기로.

학생이었을 때 지겹게도 고치라고 들었지만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던 그 유구한 습관이라함은 하나에만 온전히 머무를 수 없는 것이었다.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를 들으며 수학문제를 풀었고, 귀를 울리는 무거운 비트 속에 숨은 수학 공식을 찾아냈다.

수학을 그렇게나 못했던 이유는 문제를 풀면서 노래를 들어서 그렇다며 엠피쓰리를 압수당하기도 했었다.

맹세컨대 진실은 단순히 내가 수학을 못해서인 것을 왜 몰라주는지, 참.

내가 가진 수백가지 생각들과 고민들을 담아내기엔 내 뇌용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헝클어진 생각의 풀장에 다이빙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무한하게 이어지는 타래를 풀어나가며 유영하며 밤에는 눈을 감고 꿈을 꿨고, 낮에는 눈을 뜬 채로 몽상했다.

한 손은 펜을 돌리고, 다른 손으로는 턱을 괸 채 방랑했다.

그러니까 내 한 몸과 한 마음을 나누어 한 편은 교실에 남겨두고 다른 편은 세상을 떠돌도록 남겨두는게 불가능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는 그만둘건데, 아예 그만두진 않을거야.”

“그게 무슨 따뜻한 프라푸치노 같은 소리야.”

“아무튼 내가 생각이 다 있어.”

“너만 있으면 뭐해.”

여기저기서 걸려들어오는 태클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나니, 내가 생각이 있으면 그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행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1+1+1

유학휴직.

생경한 단어였다.

유학은 또 뭐고, 휴직은 또 무엇인가.

둘 중에 하나만 떠올려도 고개를 갸우뚱했을 법한 단어들이 하나가 되어 내 인생에 던져진 것은 흡사 또랑을 향하던 볼링공이 갑자기 선로를 우회해 스트라이크를 쳐버리는 오묘한 상황을 연상케했다.

이러다 죽도 밥도 안되는 그런 파국에 다다르면 어쩌나, 옅은 한숨은 그보다는 깊은 시름이 섞인 고민으로 이어진다.

뭐가 됐던간에 배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그런 불행한 미래가 파편처럼 날아와 뇌주름에 깊숙히 박힌다.

“각 나라에서 한 학기씩 보내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거지. 문화체험이랑 언어 과정은 학기에 또 포함이 되어있다네? 화룡점정으로는 프로그램 전체를 아우르는 아동교육이라는 테마에 맞게 각 나라에서 다루는 세부 과목들이 다르다는거지. 관련 분야 교수들이 와서 세미나도 개최하고 말이야. 어때?”

“나한테 보험 팔아?”

시큰둥하고 받아치는 친구의 카톡을 읽고 ㅋ을 연달아 쳐 답장을 보낸다.

뚜렷한 목적이나 그럴듯한 목표가 없는 유학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을까, 유학을 마친 뒤에 학위 말고도 내게 남는 게 있을까.

석사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스페인 코르도바, 포르투갈 리스본, 그리고 터키 이스탄불이다.

난 이제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스스로를 미지의 세계에 던져 그 안에 숨겨진 힌트를 찾아내야 하는 입장이다.

그게 어떤 교육가의 이론이든, 아니면 낯선 언어의 문법책이든 간에 하나씩 익혀나간다면 결국 그 모든 이정표들이 날 보물상자가 묻힌 곳으로 안내할 것이다.

그 모든 머뭇거림을 허물처럼 벗어던지고 결국 유학휴직 계획서를 써내려가기 시작한건 어찌되었든 간에 내 아이덴티티를 하나씩 조각내어 끼워맞추어야겠다는 의지가 그 어떤 불확실성에서 피어난 의구심보다도 강했기 때문이다.


십년 전에 썼던 이민가방에 쌓인 먼지를 걸레로 털었다.

그 때는 이 가방 안에 내가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내 허리춤께에 오는 고동색 이민가방에 차곡차곡 짐을 정리하며 한 구석에 설렘과 걱정도 함께 접어 넣었다.

2019년 8월 달력의 마지막 날에 빗금이 그어지던 날, 끌 때마다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나는 이민 가방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초록 여권을 쥔 채 공항에 입성했다.

다가오는 날들이 언제나 두근거리는 핑크빛이거나, 울적한 시커먼 색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을 프리즘에 구겨 넣어 무한한 빛의 스펙트럼으로 확장시켜 나간다면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채도와 명도의 색들도 하나씩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구름을 딛고 나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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