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도시
“그래서 선생님, 학교 어디로 간다고 하셨죠?”
“아, 저기 코르도바라고 세비야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예요.”
세비야에서 버스로 한 시간쯤, 그라나다에서 기차로 두어 시간이면 가는 거리.
코르도바, 라는 이름보다도 앞뒤로 긴 수식어가 붙어야 사람들은 아, 세비야 옆에 도시, 혹은 그라나다 근처에 있구나, 하고 이해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역사적으로 이슬람 문화권과 기독교 문화권이 세력 싸움을 하며 발전했다.
몇 백 년에 걸쳐 상이한 두 문화는 지속적으로 충돌했지만 소멸이 아닌 공존을 향해 나아가며 그들만의 특색 있는 문화를 꾸리게 되었다.
코르도바는 한 때 이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도를 담당했고, 10세기 무렵 스페인뿐만 아니라 서유럽 중에서도 가장 선진 문명을 피워낸 도시이기도 했다.
아무리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도시라 할지라도 10세기라 함은 웬만한 대과거가 아니니 현재의 모습을 보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코르도바에 한 번이라도 오게 된다면 그게 한여름의 살인더위든, 코르도반들의 뻔뻔한 호탕함이든, 아니면 골목마다 숨어있는 유서 깊은 도시의 발자취든 정확히는 짚어낼 수 없는 그 오묘한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LAND
코르도바는 해안가와 떨어진 내륙 한가운데에 위치해있어 여름이면 무더위에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의 명성을 지니고 있다.
여름의 위세가 떨어질 10월 초입에도 날씨는 온난하고 때로는 가벼운 산책에도 땀이 나기도 한다.
겨울에조차 패딩보다는 두꺼운 카디건을 집어서 나가는 날이 허다한 이 곳은 누가 뭐래도 안달루시아다운 기후조건을 지니고 있다.
9월에 학기를 시작했지만 가시지 않는 더위에 정신을 못 차리는 학생들을 안타까워하며 교수님은 위로를 건네주었다.
우리 귀에는 전혀 위로로는 들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올여름은 정말 무난하게 지나가는 것 같아.”
“네? 이게요?”
옆에 앉은 친구가 햇빛에 익어 벌겋게 달아오른 문지르며 말했다.
그 친구의 고향은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진다고 했다.
“언젠지 기억은 안 나는데 한창 여름이었을 때, 내가 걷다가 넘어질 뻔한 적이 있었거든. 왠지 알아?”
교수님은 혼자만 답을 아는 물음에 신이 나서 키득거렸다.
“아니, 글쎄, 아스팔트가 녹아서 내 신발 밑에 붙어버린 거야! 어휴, 비싼 돈 주고 산 신발을 아주 버렸지 뭐야.”
경악스러운 표정과 가볍게 우는 소리가 방청객 소리처럼 뒤따른 건 친구들 모두 서로 말은 않더라도 이번 주 일주일 내내 기온이 37도에서 멈추었다는 걸 상기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파리지앵, 뉴요커, 베를리너, 홍콩어와 같은 수식어처럼 코르도바에서 난 사람이나 물건을 뜻하는 단어를 통칭 Cordoban이라고 한다.
안달루시아라는 명확한 아이덴티티가 있지만 코르도바 사람들은 그 울타리 안에서도 코르도반이라는 조금 더 정밀한 말을 만들어냈다.
스페인의 지역 특색은 너무나도 강렬해 어쩌면 그렇게 다른 분위기의 지역들이 모여 하나의 큰 왕국이라는 기틀을 다져나갔으며, 그것이 발전해 하나의 공화국으로 자리 잡았는지 정말 신기할 일이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손아귀로부터 싹튼 본연의 지역색과 문화이기 때문에 현재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역 갈등은 당연한 수순으로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스페인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사실 코르도바 사람들에 의해 한 달도 안되어 차갑게 식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안달루시아는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가면 안 되는 지역으로 정평이 나있었던 것이다.
자모음을 겨우 뗀 외국인이 경상도에서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려나.
말도 안 되게 말이 빠르거나, 말도 안 되게 많은 부분을 생략해버리는 것.
그 둘 중 하나만 해도 외국인의 귀에는 겨우 알아들을까 말까 할 것을 안달루시아에서는 그 둘을 당당하게 매 문장, 매 단어마다 해내고 만다.
우노 도스 뜨레스가 안달루시아 사람의 입에서는 운 도 뜨레가 되어버리는데 그 마법 같은 생략의 순간이 열정적인 스피드와 만나면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내는 새로운 스페인어가 눈 앞에서 탄생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구글에 fastest spoken language on earth를 치면 스페인어는 초당 7.82 음절을 내뱉는다는 자료와 함께 간소한 차이로 당당히 2위를 거머쥐었다.
거기에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보통의 말에 반토막씩을 떼내어버린다고 가정한다면, 그보다 더 격동적이며 저돌적인 언어가 또 있을까.
“안 되겠어. 진짜 내가 답답해서라도 공부를 더 해야겠어.”
영어가 아무리 글로벌 언어며,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언어라지만 결코 이 곳 코르도바에서만큼은 그 위세를 제대로 떨치지 못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자기 전에 십 분이라도 어학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은 찰나에 친구가 스페인어 과외를 제안해왔다.
“어학원은 아무래도 스무 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어서 생각보다 많이 못 배운 거 같아.”
“그건 그래.”
“스페인어가 말도 안 되게 어려운 거지, 우리가 못하는 건 아닐 거야.”
“그것도 그래.”
“물론 우리가 그동안 스페인어를 꾸준히 해오긴 했지만.”
친구는 잠시 눈을 도록도록 굴렸다.
그다음에 할 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속성 스페인 어학코스를 두 달 동안 통틀어 2개씩, 2개의 다른 기관에서, 하루에 평균 5시간씩, 주 4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 나가면 구글 번역기를 돌리고 있는 나 자신이 오래된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절로 숙연해지며 탄식이 새어 나온다.
“길거리에만 나가면 뭔 말이 안 나오지.”
“바로 그거야.”
“우리 가르쳤던 학원 선생님 기억나? 마리아.”
“어떤 마리아?”
어쩜 다들 그렇게 마리아에 그렇게 꽂혔는지 듣는 이름들이 족족 퍼스트 네임이든 세컨드 네임이든 마리아가 안 껴있으면 섭섭할 수준이다.
아마 거리에서 마리아를 부르면 두어 명은 뒤돌아 볼 것이다.
“마리아 델 마르. 한 시간에 5유로씩 모아서 너랑 나랑 알비나, 이렇게 셋이서만 한 시간 과외를 받을 수 있어, 어때?”
“콜.”
그렇게 속성 어학코스에 이어 단기 과외 기간이 시작되었다.
마리아 델 마르는 학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 우리 반을 도맡았던 선생님이어서 슬프게도 우리 수준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옷장과 다리미, 욕조와 난로. 집안 구석구석, 가구 하나하나씩 스페인어로 배워나갔다.
의자는 여성, 에어컨은 남성.
또 어느 날은 문법을 시작해보자며 과거 시제와 그 과거의 과거 시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미래 시제 중에서도 불확실한 미래와 확연한 미래일 경우에 어떻게 다르게 말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근데 선생님, 미안하다고 할 때는 뭐라고 말해요?”
“어떤 때 미안한데?”
“뭐, 어디 가다가 부딪힐 때나 의도치 않은 실수를 하거나, 뭐 그런 때요.”
“익스큐즈 미나 쏘리처럼 가볍게 쓸 수 있는 말이요.”
선생님은 안경을 고쳐 올리며 우아하게 말씀하셨다.
“우리 안달루시안들은 그런 거 안 해.”
그저 쪼대로 사는 거다, 라는 안달루시안들의 철학을 한 시간에 걸쳐 들은 우리는 그들의 엄청난 가치관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는 건 내가 남들에게 나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그들의 가치관에 나를 껴맞추지 않을 때 가능한 게 아닐까.
그 사소한 것은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외부인의 시선에서는 충분히 퉁명스럽고 거칠다고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결국 그 또한 외부인이 그들이 가진 예의범절의 틀에 안달루시안들의 행동을 재단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어쩌면 마음에도 없는 실례 합니다와 미안합니다보다는 진정성 어린 안부나 체면치레를 벗어난 물음들이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안달루시안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정과 친근함은 우리가 여태 봐온 형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전제에 깔고 그들의 틈에 끼면 더 따뜻한 온기를 머금을 수 있을 것이다.
지도를 따라가 보면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코르도바는 스페인의 남단 끄트머리에 위치한다.
고로, 이베리아 반도가 마무리지어지는 쯤에 매달려있는 셈이다.
유럽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여행객들은 코르도바라는 도시를 무심코 지나치거나 경유지로 치부하곤 한다.
실제로 관광지로 책이나 웹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몇몇 곳들을 제외하고는 관광객을 찾아보기가 쉽지는 않다.
여름이면 아스팔트가 녹을 정도로 후덥지근한 곳, 날씨만큼이나 화끈한 사람들, 길거리에 오렌지 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진 도시.
친구들과 손부채를 하며 땀을 식히며 걷는 중이었다.
발치에 떨어져 있는 탐스런 주홍빛 오렌지들을 보며 저걸 먹을 수 있을까, 잠깐 고민하고 물었다.
나는 먹을 수 있다고 했고 나머지 두 친구는 못 먹을 거라고 했다.
마침 우리 곁을 지나치던 아저씨를 붙잡고 물었다, 먹을 수 있나요?
아저씨는 잠깐 가로수를 쳐다보고 우리를 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먹을 수 있는데 맛은 없어. 슈퍼 가서 사 먹는 게 훨씬 낫지.”
아저씨는 뒤돌아가기 전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랬다, 궁금하면 먹어보라고.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서서 열심히 껍질을 까서 먹어보았다.
아저씨가 백번 옳았다.
매우 떫고 시기만 해 보기와는 다르게 영 몹쓸 맛이었던 오렌지를 우리는 길거리 한편에 두고 가던 길을 갔다.
먹어봐야 안다, 정말로.
몇십 년 동안의 오렌지 섭취로 쌓은 데이터 베이스를 토대로 대강 떠오르는 상큼하고도 조금은 신 맛의 정형적인 내 머릿속의 오렌지가 있다.
하지만 그건 관념 속의 오렌지일 뿐이고, 그것은 진짜 오렌지가 아니다.
내가 손에 들고 있고, 직접 깔 수 있고, 씹을 수 있다면, 망설일 필요 없이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코르도바에 왔다.
스페인은 어떨까. 해외에서 혼자 생활하면 외로울까. 잠시 직장을 떠나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면 뒤쳐질까. 교육학은 더 공부할만한 가치가 있는 학문일까.
수도 없는 물음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그에 대한 답이 내 앞에 놓여있었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내 손에 쥐어진 지도를 따라가 본 끝에 이베리아의 남단에 위치한 이 도시에서 낮의 열기로 달구어진 밤을 보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