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부터 목 언저리가 간질간질했다.
워낙에 감기에 걸리면 귀나 목으로 증상이 나타나서 그 기관이 약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중이염은 자주 앓았던지라 이비인후과는 동네 놀이터랑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진짜 복병은 편도염이었다.
보통의 염증과는 다르게 편도염은 내 연약한 기관지에 강렬한 마킹을 남겼다.
허구한 날 인후염이나 그와 비슷한 증상을 느끼는 나지만 편도염의 세계에 첫 발을 들인 이후로는 절대 같은 선상에 놓아서는 안될 질병임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편도염은 지난 2018년 여름, 프랑스 아를 지방을 여행하면서 처음 조우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쌩쌩했다가 그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갑자기 몸이 으슬거리는 난데없는 오한이 오더니 열이 올랐다.
목 안은 고슴도치 가족이 둥지라도 틀었는지 까끌거리고 그 와중에 가차 없이 어지럼증까지 밀려드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당시 에어비앤비에 묵고 있었는데 아침 시간에 비루한 몰골로 식탁 앞에 나타나자 집에 같이 지냈던 주인 노부부가 무척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한참을 괜찮냐고 물었지만 난 조금 쉬면 금방 나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 기이한 증상들의 3단 합체 콤보를 겪은 건 처음인지라 단순히 심한 감기 몸살인 줄로만 알았고, 몸살은 여행 중이라면 충분히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더 안일하게 대응했던 것도 있다.
그러나 몸은 낫기는커녕 점점 더 뜨거워지기만 했고, 목이 작열하는 듯한 열감은 가시질 않았다.
가족들에게 전하니 아무래도 보통 몸살이 아닌 거 같으니 얼른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했고, 그제야 비척비척 방문을 열고 나가 주인 할아버지에게 긴급 도움 요청을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할아버지가 약사라는 점이었고, 불행 중 불행인 건 그 날이 하필이면 일요일이어서 많은 병원들이 문을 닫았다는 거였다.
할아버지는 흔쾌히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 먼 곳에 있는 곳까지 날 바래다주셨고, 진찰받는 내내 곁을 지켜주셨다.
이틀 내리 열감과 싸워야 했고, 목에 무언가가 막힌듯한 이물감에 듣기 싫은 쇳소리를 이따금씩 내는 것 외에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내 편도염의 쓰라린 기억이다.
간질거리는 목을 달래고자 따뜻한 차도 마셔보고, 헛기침을 조금씩 하면서 눈치를 살피지만 아무래도 영 조짐이 좋지 않다.
결국 두어 시간 정도 더 차도를 살핀 뒤, 약국으로 걸음 했다.
병원을 가기에는 미미한 증상이었고, 지금 이 시국에는 더더욱이나 병원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집 바로 건너편에 약국이 있어서 거기에서 상비약을 일단 사두기로 했다.
편도염에 직빵인 약을 찾는다고 하니 약사가 스프레이부터 해서 가글, 혀로 녹여먹는 약, 이부프로펜 계열의 알약까지 갖가지 형태의 제품들을 유리 진열대 위에 올려놓는다.
“전부 다요.”
마치 라스베이거스 카지노판의 큰 손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숙하게 모든 제품을 다 구매할 것임을 선언했다.
약봉지에 차곡차곡 약을 담고 이제 결제만 남아있는데 예상외의 난관에 부딪혔다.
포르투갈 현지 카드가 아니면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 리더기가 있는데 하필이면 그 약국에서 내 스페인 카드 결제가 거절된 것이다.
원래라면 겨울에는 붕어빵을 위해 늘 가슴 한편에 천 원의 비상 현금을 품고 다니듯 5유로쯤은 카드 지갑에 넣고 다니는데 총금액이 25유로가 되는 정도여서 턱도 없이 부족했던 거다.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건 지금 집에 돌아가도 남은 현금은 100유로짜리 지폐 3장뿐이라는 거다.
그 현금이라 함은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오기 전에 아빠가 행운을 빈다며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에게 가호를 내리듯 내 주머니에 꽂아주신 신성한 지폐들이었다.
신성한 힘이 깃든 그 지폐를 고작 편도염 스프레이와 가글 약을 위해 깨야한다니, 믿고 싶지가 않다.
집에 돌아가서 호랑이 무늬의 지갑에 고이 잠들어있는 100유로를 꺼내보았다.
이 모든 게 건강한 일상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쓰는 거라고 생각하자, 마음을 굳게 먹고 주머니에 반듯하게 접어 넣었다.
약국에 돌아가 100유로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밀었더니 약사가 거스름돈을 한참을 세더니 75유로와 몇 개의 동전들을 돌려준다.
건강만 해라,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아빠가 빳빳한 100유로와 50유로, 20유로들을 하얀 봉투에 넣어 건네주면서 했던 말은 그거였다.
그래서 난 건강만 하기 위해 아빠가 회사 옆의 외환은행에서 번호표를 뽑아 한참을 기다리고, 창구에서 낱장을 세가며 환전했을 그 유로화를 지금 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