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는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물며 쫓아가는 것만 같다.
과거에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리며, 무한한 꿈을 확장시키며 형체 없는 미래가 오기만을 기다리지만 정작 그 시점이 오게 됐을 쯤에는 과거의 그 순간들을 더듬으며 이런저런 후회들을 하기도, 한숨 섞인 아쉬움을 토로하게도 된다.
과거는 과거답게, 미래는 미래스럽게 보내기보다는 과거를 미래처럼 살고 미래를 과거 속에서 가는 그런 팔자로 꼬여버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맞는 것일지, 어떻게 발을 내디뎌야 미끄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겹겹이 쌓인 ‘만약에’의 가정을 파헤쳐 내려가다 보면 결국엔 그 순간에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겼을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드러난다.
그 시간 속에 그렇게나 고민하고 부단히 노력했던 나의 모습이 허투루 쓰였을 리는 없다.
과거의 행동이 불러일으킨 미래가 어떤 무채색의 씁쓸함을 머금었더라도 그 당시의 시간을 나로서는 그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사는 나는 왜 과거의 내가 밉고, 미래의 내가 무서워지는 걸까.
앞으로 지나치게 될 수많은 나 자신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자면서, 내 인생을 첫 번째 순위에 두자면서, 그렇게 하기로 몇 번이고 다부지게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무거운 선택들의 결과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는 어렵다.
‘Critical pedagogy revolves around novel concepts such as praxis which was pedagogically re-interpreted by Freire (1970), critical thinking skills, deconstruction, etc. Throughout looking into the view of psychologists and educators, different perspectives and adaptations surrounding critical pedagogy will be introduced...’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손 끝이 막혀 단어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눈 앞이 침침해 써 내려간 문장을 읽을 수가 없다.
사방이 검은 테두리에 막힌 모니터의 너른 창을 멀거니 쳐다보고 앉아있다 보면 목이 뻐근해진다.
구천자에 들어선 논문을 쓰면서도 다른 대학교에서 다른 세부 전공을 공부하며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살았으면 현재의 내가 가진 온전치 못한 감정을 떨쳐낼 수 있었을까 싶다.
쓸데없는 생각이야, 어차피 한 번 정한 결정은 번복할 수 없잖아.
졸업요건을 채우려는 마당에 프로그램 등록을 후회한다는 건 멍청한 잡념이다, 내 뇌의 일부를 갉아먹는 영양가 없는 망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니터에 입김이 서리지나 않을까 싶을 깊은 한숨을 연이어 내쉬고 책상 위에 놓인 스탠드 스위치를 딸칵 눌러 킨다.
환한 조명이 키보드 위의 손등에 쏟아지고 식은 손 아래로 옅은 음영이 깔린다.
손가락이 움직이는대로 키보드 자판 키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잿빛 그림자다.
나는 불안을 그림자처럼 입는다.
그림자는 길이를 달리하며 언제까지고 내 발 밑에 접혀 뒤꽁무니를 졸졸 쫓는다.
해가 머리 위에 똑떨어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때를 함께하며 불안의 음영과 양감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다.
낮이 저물고 밤이 찾아온대도 주변에 듬성듬성 켜지는 가로등에 불안은 깜박거리며 제 형체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20대의 마지막 정류장에서 머나먼 곳으로 떠날 버스를 막연히 기다린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가는 버스를 안달 내며 기다렸다.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단체버스에서 옆자리 친구의 초콜릿을 조각내 먹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집과 학교를 오가는 통학버스를 매일 아침 7시 10분에 집 앞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올라탔다.
대학교 정문 앞을 지나는 버스는 초록색 마을버스는 6-2와 파란색 시내버스 152번이 있었다.
대학원 강의실을 가기 위해서는 한 번에 1.50유로를 내야 되는데 잔돈이 없을 때면 맞은편 유로 샵에서 과자를 하나씩 샀다.
여태 네 번의 입학을 했고 다섯 번째 졸업을 앞두고 있구나, 시답잖은 상념에 젖는다.
교복을 입고 학교 정문을 드나들던 때에는 모든 게 어려우면서도 쉬웠다.
해답은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노선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팔에 뻗어 닿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탐스럽게 달린 열매를 따서 먹을 수 있었다.
그것이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특혜라는 것을 학사모를 벗어던지는 그 순간에도 알지 못했다.
최저임금으로 카페 알바를 했을 때, 밤을 지새우면서 장학금의 자리를 노릴 때, 새벽같이 일어나 도서관 자리를 예약할 때, 첫 월급이 찍힌 통장을 보았을 때, 부당한 민원 전화를 웃어넘겨야 했을 때,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신 사과해야 했을 때.
발을 힘차게 구르며 오르막길을 달리다가 평탄한 구간에 접어들면 무릎 위에 손을 얹고 등을 구부정히 굽혀 숨을 몰아쉬며 잠시 땀을 닦았다.
그제야 과거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후회할 거면 그렇게 살지 말고, 그렇게 살 거면 후회하지나 말아라, 인생을 자극할 따끔한 조언을 던지는 온라인 밈으로 본 구절이다.
그 게시물 아래로 눌린 수천 개의 하트수를 보자니 후회하면서 그렇게 살고, 그렇게 사니까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까.
번뜩이는 귀납적 추리랍시고 1과 1을 더해 창문을 만들어내며 무릎을 탁 친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어,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받으라는 인생 자극은 어디 구석에다 던져버리고 의외의 구석에서 괜한 내적 친밀감만 쌓으며 후회의 굴레를 부수어버리기는 커녕 더 견고히 만들어간다.
하지만 자기 합리화와 자기 발전은 실과 바늘처럼 나란히 간다고, 한 보의 값진 전진을 위해 두 발을 물러서야 한다면 기꺼이 그럴 수 있다.
후회는 두 걸음을 물러서야 하는 현재의 부산물이다.
그러니까 내 몫으로 남은 건 그 모든 아쉬움을 원동력 삼아 내딛을 한 걸음의 전진뿐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