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my, the Italian guy
1. 톰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7시에 일어나 한 시간 이내에 재택근무를 시작해야 하는 톰의 아침 스케줄은 빡빡하다.
와이파이가 그렇게 빠르지 않은 방에서 컴퓨터를 사용해 업무를 봐야 하는 톰은 가끔 와이파이 수신기를 엄청난 미움의 눈초리로 쳐다볼 때가 있다.
“망할 놈.”
그리고선 조그마한 커피잔을 달그락거리며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지난번에 설치기사가 와서 한 번 고쳐줬는데 그 이후로 전과 같은 증오심을 내비치지 않는 걸 보면 지금은 인터넷 속도에 꽤나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 톰은 담배를 피운다.
톰의 방과 내 방은 하나의 긴 발코니로 이어져있다.
언제나 커피를 먼저 제안하고, 호로록 마시더니 급하게 어디로 가는가 싶더니 알고 보니 커피 후 담배 한 모금을 들이켜러 가는 거였다.
내 창가에 놓인 담뱃갑을 보고 톰은 너도 피냐, 하는 눈빛으로 날 살폈다.
그 이후론 부엌 스토브에서 커피를 만들어 홀짝이다가 각각의 방문으로 들어갔다가 발코니로 빠져나와 바깥 풍경을 보며 같이 한 모금씩 빠는 게 무언의 스케줄이 되었다.
톰의 재떨이에는 짧은 꽁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커피의 잔수만큼 피는 담배 개수들이기 때문에 하루에 다섯 개비 이상은 핀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 재떨이 안에는 이제 내 하얀 말보로 꽁초들도 뒤섞여 얹어지고 있다.
3. 톰은 투잡을 뛴다.
“요새 걱정이 많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초연한 얼굴로 엄숙히 스트레스에 찌들어 죽어가고 있음을 선언하는 톰은 또 새로웠다.
커피 한잔과 담배 한 개비를 보낸 뒤에 톰으로부터 가뜩이나 코로나로 본국의 취업 시장이 좋지 않아 걱정이 많다는 것과 지금은 파트타임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지만 조금 더 장기적으로 다닐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있다는 취준생 톰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두 개가 있기는 한데, 하나는 약간 불법이거든.”
“약간 불법?”
“어, 뭐, 그런 거 있잖아. 완전히 합법은 아닌데 완전히 불법은 아닌 거.”
언제부터 법이 절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었더라, 애매한 설명에 모호한 물음이 떠오른다.
두 눈 가득 의문을 담고 보니 톰은 굵은 곱슬머리를 벅벅 긁더니 콧등을 찡긋거린다.
“30퍼센트의 불법과 70프로의 합법이랄까. 그 30퍼센트를 조용히 덮으면 괜찮은 일인 거지.”
아, 그러니까 무단횡단처럼 모두가 하면 안 되는 걸 인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익숙하게 해 버리는 그런 종류의 일인 거지?
긴가민가한 와중에도 톰은 이렇다 할 답은 주지 않고 연거푸 한숨을 쉰다.
“아무튼 그 일이 말이지. 지속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거든.”
그래, 퍽이나 지속 가능하겠다.
“조만간 빨리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할 텐데. 코로나 망할 것 때문에 이것저것 다 되는 게 없어. 그찮아?”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연구원처럼 자못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 톰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4. 톰은 하루에 다섯 잔의 커피를 마신다.
아침 러닝을 뛰고 오는 날이면 아침 시간이 늦어져 10시 즈음에 느지막이 브런치 비슷한 끼니를 준비하게 된다.
그런 애매한 시간대에는 싱크대에 고동색 가루들이 나이테처럼 늘어져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톰의 소행이다.
톰은 아침, 점심, 저녁때마다 그 중간의 아무 때나 철제 커피 주전자에 원두가루를 타서 직접 커피를 내려마신다.
처음에는 그 옆을 얼쩡거리다가 운 좋게 한두 잔 얹어마시는 수준이었는데 내가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담긴 샷을 한 모금씩 홀짝일 때마다 톰의 얼굴에 자비로운 부처의 미소가 뗘지는 걸 보고 더 대담하게 커피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길 며칠 뒤, 톰은 아예 내게 커피를 내릴 때면 메시지를 보냈다.
COFFEE
대문자로 간단명료하게 나열된 글자 옆으로는 미친 듯이 커피를 휘젓고 있는 사람이라든지 우비를 쓰고 커피 줄기를 맞고 있는 캐릭터라든지 하는 커피 짤들이 함께 보내진다.
난 사실 에스프레소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치가 없다.
톰은 본인의 피에는 카페인이 흐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면서 그렇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설탕을 타 먹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커피 잔에 설탕을 들이부어 타 먹기를 두어 차례 한 이후로 난 업그레이드에 도전했다.
마트에서 얼음 트레이, 우유와 시럽을 사서 아이스 라테를 제조해먹기로 한 것이다.
그야말로 천국의 맛이었다.
둥둥 떠다니는 다섯 개의 얼음 조각은 태평양 한가운데 군락을 이룬 섬 등지 같았고, 그 위에 뿌려지는 우유와 시럽은 빛에 반사되는 영롱한 모래 해변의 모양새였다.
“내 에스프레소가 스타벅스에 이용되다니, 수치스럽다.”
톰은 이렇게 일축하며 혀를 쯧쯧 찼지만 난 오늘 아침만 해도 컵에다가 시럽을 쭉 짜며 본 투 비 코리안 얼죽아 정회원으로서 난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금 마음속 깊이 새겼다.
5. 톰은 요리를 할 때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튼다.
스피커는 톰의 애장품이다, 혹은 두 번째 자아다, 그것도 아니라면 호크룩스일 것이다.
아무튼 그 스피커로 톰은 온갖 노래를 다 틀며, 모든 활동을 한다.
저녁을 요리할 때,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랫가락을 따라 부르며 국자를 휘젓는 모양을 보면 보는 사람까지 흥이 절로 오른다.
톰에게는 전혀 머뭇거림이 없다.
그는 오른손에 쥔 국자는 우아한 8자를 그리며 파스타 소스를 휘젓고 왼손으로는 소금을 한 꼬집 집어 그 국자에 짤짤 털어 넣는다.
톰의 행동에는 어느 하나 계산된 구석이 없으며, 연이어지는 몸짓과 동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나오는 레게팝 비트에 맞추어 리드미컬하고 매끄럽게 이어지고 변형된다.
6. 톰은 스무 가지가 넘는 파스타의 이름을 안다.
여느 날처럼 발코니에 나가 폴폴 날리는 담배 연기 속에서 커피 잔을 기울일 무렵이었다.
“내가 이태리에 있을 때 친구랑 준비하던 사업이 있었어.”
사업자 톰이라니, 정장을 입고 광나는 구두를 신은 톰을 상상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넥타이를 매기 전에 일단 그의 어깨를 스치는 곱슬머리부터 어떻게 단정히 묶어야 되지 않을까.
“무슨?”
재떨이에 담배를 툭툭 터니 하얗게 센 담배꽁초가 부스러진다.
톰은 그만큼 짧아진 담배를 다시 입에 물고 볼에 보조개가 패일만큼 깊게 빨아들인다.
“파스타 사업.”
파스타라니, 너무한다. 이보다 더 제격인 톰 맞춤형 사업이 더 있을까.
한 치 앞을 못 보고 허를 찔려버린 나는 입만 뻐끔거렸다.
구름 조각처럼 몽실 거리는 연기가 찬 공기에 흐려진다.
“그래, 내가 이걸 예상하지 못했다니, 내 잘못이다.”
“내 찬장에 파스타 몇 개 있는지 봤으면서도 예상하지 못하다니, 이건 창의력이 아니라 인지 능력의 문제야.”
난 톰에게 그 자리에서 지난 학기 때 빈 도마로 시작해 피자를 만들어낸 전설 같은 우리 반 이태리 친구 마르티나 이야기를 해주었다.
“거짓말 안 하고, 걔 아침 10시부터 밤 8시까지 피자만 만들었다니까?”
“우린 그런 걸로 장난치는 사람이 아니거든.”
마르티나는 그 날 혼을 불태웠다.
그녀는 아침 9시에 마트에서 장을 봐 온 밀가루를 개키고 휘젓고 돌려서 반죽을 만들었고, 그 만든 반죽을 또 오븐에 넣었다가 뺐다가 식혔다가 달구어서 모양을 만들었다.
반죽은 옆칸에 둔 채, 또 남은 시간을 소스를 만드는데 그녀의 땀과 눈물 그리고 조금의 영혼을 갈아 넣었다.
영원히 기억에 남을 피자를 만들기 위해 그녀가 그 날 하루 먹은 건 고작 빵 몇 조각과 과자 부스러기뿐이었다.
다만, 그 날 피자를 먹은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들으며 마르티나는 무릎을 굽혀 인사를 하며 모든 고생이 눈 녹듯 씻겨져 내리는 걸 느꼈다.
“각 파스타마다 모양이 다르고, 식감이 다르고, 원산지가 달라. 그러니까 이름도 다르지. 내가 마이클을 데이브라고 부르지 않듯이 말이야.”
이마를 칠법한 비유에 나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고, 톰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파스타를 존중해줘.”
7. 톰을 움직이게 하는 건 두려움이다.
하루는 저녁 시간대 톰이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찾았다.
내가 친구랑 먹으려고 사놓은 건데 세 병이나 남아서 처치곤란 상태인 맥주였다.
그래서 난 기꺼이 톰이 먹을 수 있음을 알려주었고, 그 맥주가 어디 있는 묻는 것이었다.
“냉장고 제일 윗 선반에 있을 거야.”
톰은 맥주를 꺼내며 오늘은 마셔야 되는 날이라고 했다.
걱정이 많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쓸데없는 생각들로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다고.
난 부엌 카운터 벽에 등을 기대고 톰을 마주했다.
우리 집 부엌 중앙에 달린 노란 등은 어르스름한 빛을 발산했고, 그 옆에 선 톰의 얼굴 한 편으로는 그림자가 져 있었다.
“무슨 일 있어?”
톰은 스물네 살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나이로는 스물다섯, 혹은 여섯인 셈이다.
작년에 석사 과정을 시작하며, 동시에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파트타임도 병행하고 있던 톰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계획이란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코로나로 모든 게 박살 나기 전까지 말이다.
젊은 이탈리안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부터가 만만찮은 일인데 거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최악에 치닫게 되었다고 한다.
비즈니스 경영으로 석사를 어렵사리 시작했고, 재정적인 부분은 하고 있는 프리랜서 일과 학교에서 받고 있는 성적 장학금으로 어찌어찌 충당한다고 해도 그건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수입이 아닌 건 확실했다.
톰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고 했다.
“스물넷이 할 수 있는 고민은 수백만 가지야. 그중에 가장 크게 날 짓누르는 건 십 년 후 내 모습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는다는 거야.”
한국에서 스물넷이었던 5년 전의 날 돌이켜보았다.
영예로운 졸업장을 가슴팍에 지고, 학사모를 벗어던진 날. 내가 마지막으로 학생이었던 날.
그 날 이후로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으며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했던 형체 없는 막막함과 알 수 없는 공포감, 걷잡을 수 없이 몸집을 불리던 불안감은 집요하게 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교육대학교를 졸업하며 이미 정해진 진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마구잡이로 넘어졌다.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사정없이 굽이쳐지는 그 불친절한 길목에서 난 정말 많이 힘들어했고, 스물일곱 유학을 결정하는 그 날까지도 많은 날을 울었다.
“톰, 나도 지금 너였던 적이 있어. 내가 만든 선택에 내가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내 경험일 뿐이지만 그래도 네가 말하는 게 뭔지 조금은 알 거 같아.”
“그래, 내가 지금 만든 선택들이 나중의 나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돼. 어렸을 때 사탕 맛 고르듯이 정할 수도 없는 거고.”
“요새 어때, 그래서?”
“두려워.”
톰은 무섭다고 했다.
이 모든 불안정함과 이름 없는 감정들이 스쳐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운행 스케줄이 없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승객이 된 것만 같다고 했다.
리스본 거리는 한산하고, 요새는 하루 걸러 하루씩 비가 흩뿌려진다.
아침에는 잿빛 구름 사이로 한 줄기씩 틔어 나오는 햇빛을 기다려야 하고, 회색 도로는 빗발치는 물방울들로 짙은 먹색으로 번져나간다.
세 번째로 연장되고 있는 락다운은 이번 달 말까지 유효할 것이라고 예견되고 있다.
톰은 부엌 스토브 위에 붙어있는 간이 불을 켰다.
등불에 빛이 반짝 들어오면서 톰의 얼굴에 내리 앉았던 음영이 한결 옅어졌다.
“두려우니까 계속 움직여야 하는 거야.”
8. 톰은 그래서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아침 7시 10분,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스토브 위에는 철제 커피포트가 쉭쉭 연기를 내뿜으며 원두향을 퍼트린다.
냄비에는 계란이 삶아지고 있고, 옆에 놓인 플레이트 위에는 바삭 구워진 토스트와 두어 가지 과일잼과 누텔라가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