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사, 스페인의 학생

by 이해린

<에라스무스 문두스, 세상을 누벼라>

내가 참여하고 있는 석사 과정에 대해 얘기하자면 에라스무스 제도의 기본 개념을 먼저 간략하게 설명해야 한다.

에라스무스 학사 과정은 짧게는 한 학기부터 1년으로 이루어지는 유럽 국가 내 교환학생 제도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유럽 연합 소속국의 학생들은 비자 관련 작업들이나 거주지의 이동에 관해 제한이 덜하기 때문에 유럽 내 몇몇 대학들이 연합해 하나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여러 국가의 학생들이 다양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경험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에라스무스 프로그램들은 하나의 틀 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공 계열마다 각기 다른 커리큘럼들이 제공된다.

즉, 에라스무스라는 틀 안에서 제공되는 해당 전공 분야를 대학 연합체에서 심도 있게 다루되, 매 학기를 각기 다른 프로그램 국가에서 공부할 수 있게끔 계획하여 다양한 문화권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에라스무스 문두스는 이러한 운용 방식을 대개 2년의 기간으로 늘린 석사 프로그램으로 확장시킨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스페인, 포르투갈과 터키에 속한 3군데의 대학교가 연합하여 만든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원래 일정대로라면 첫 학기를 스페인, 두 번째를 포르투갈, 막 학기를 터키에서 보내고 마지막 학기는 본인의 세부 전공 분야를 찾아 그 대학교가 속한 거점 지역에서 석사 논문을 준비했어야 됐다.

기타 특이 사항으로는 규정에 의하면 막 학기는 소속 대학이 있는 지역에 머물면서 논문 작업을 해야 하지만 우리 프로그램이 협약을 맺고 있는 다른 도시, 국가들에도 거주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마지막 6개월을 보낼 수 있는 지역 선택권은 원래보다 더 넓어지는 게 맞다.

이에 따라, 일부 반 친구들은 이미 일부 남미 국가나 프랑스, 독일 등에 있는 기관에 미리 연락을 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프랑스 남부 도시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낼 계획을 갖고 있었고, 논문 담당 교수님과 이에 대해 연락을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던 2020년의 3월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모든 앞날이 바뀐 건 두말해야 잔소리고, 현재는 총 24명의 반 친구들 중 본국으로 돌아간 친구들 반, 나처럼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에 머물고 있는 친구들 반이다.

불어닥친 새로운 변화는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 있든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하고, 이만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다.



<OFF-LiNE>

석사 과정에 참여하면서 가장 지독한 건 물론 행정처리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에라스무스 과정과 관련된 행정적인 부분에 관해선 할 얘기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차차 더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프로그램 특성상 24명의 공동체가 함께 수업을 듣고 지역 이동을 하는 과정 속에서 여타 석사과정의 학생들보다도 더 끈끈해지고 친해진 것도 있고, 우리끼리 문화체험을 하자는 목적으로 여러 도시들을 여행한 부분도 아마 이 석사 과정의 정체성을 이루는데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또, 학교 측에서 제공하는 수업 중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에 대해 더 상세히 배우는 과목이 따로 편성되어 있고 해당 학점을 이수해야 해서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반드시 배워야 했다.

교육학 전공과목과 별개로 교양 과목으로 언어를 배우는 게 재밌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2시간, 어학당에서 3시간, 하루에 총 네다섯 시간을 내리 스페인어 수업을 듣는 게 괴롭지는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 또한 그렇다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 체험이라는 명목 하에 도시의 역사적 명소들이나 식도락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건 정말이지 특별한 경험이기는 했었다.

자, 그럼 다시 돌아와서 실제 전공 수업인 교육학 수업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를 해보겠다.

수업의 질이나 커리큘럼 구성면에 대해서만 보자면 먼저 이 얘기부터 꺼내야겠다.

유럽식 교육이며, 또 석사과정이라고 해서 엄청난 특이사항이 있다거나 모든 것이 학생 중점으로 돌아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처음 석사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만 해도 여태 내가 공부해온 환경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안일한 가정이었음을 지금은 인정한다.

교육학이나 여러 아동 교육학자들의 이론을 다른 언어로 배우겠거니 하고 어림짐작했던 건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말이었다.

물론 학사 시절 교대의 3학점짜리 전공과목들을 공부하며 슬핏 들은 교육학자들이나 이론의 내용들을 다루는 건 맞다.

하지만 그걸 접근하는 방식이 내가 들었던 대학 수업들과는 조금 달랐는데 또, 곰곰이 따져보자면 그 변화가 마냥 좋다거나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토론을 지향하고, 학생의 참여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업을 편성해나가는데 적합한 커리큘럼이었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교수의 개입이나 정보의 인풋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우리들이 주어진 주제로 토론을 하다 그 내용이 산으로 가기도 하고, 수업 목표에 적합한 결론이 도출되기보다는 생산적이지 않은 토론이 진행될 때도 있다.

수업에 있어 교사의 개입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지는 내가 교실에서도 늘 하는 고민이기도 하는데 이는 단순히 초등학교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더 확대하여 어떤 배움과 가르침이 있는 현장이라면 언제든지 맞이할법한 상황이라고 느꼈다.

한국식 교육은 정보 산출에 집중되어 있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신장시키기에는 부적합하다, 라는 내용을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수도 없이 들었고 이는 미디어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 차례의 교육과정 편성을 지나쳐오면서 적어도 초등교육과정에 한해서만큼은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고,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또 의미 있는 소통이 일어나는 교실을 빚어나가는 건 지금 현재도 진행 중인 작업이다.

교육에는 완성이 없고, 완벽한 교육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발전하고, 배우고, 생각을 주고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강의실에 앉아 듀이와 피아제의 교육 담론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시금 나 스스로의 교육관과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다져보았다.



<OFF-LiNE>

그리고 찾아온 2020년 새로운 학기, 개강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코로나로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얼른 이 상황이 종료돼서 대면 수업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초반에는 잠시 했었지만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 그 희망은 진작에 포기했다.

그렇게 작년 두 학기를 모두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고, 다가오는 봄 학기도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될 거라는 확정 메일이 몇 주전 날아왔다.

온라인 수업 첫 주만 해도 혼돈 그 자체였다.

교수님의 강아지가 갑자기 뒤에서 짖질 않나, 시차가 다른 곳에 있는 몇몇 친구들은 시리얼을 먹으며 수업을 듣기도 했고, 심지어 5분마다 한 번씩 와이파이가 끊기는 바람에 반도 채우지 못하고 수업을 종료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지 않은가, 우리가 여태까지 극한의 기후와 한정적인 자원을 갖고도 이렇게까지 대를 이어 내려올 수 있는 건 필시 어떤 조건이 주어지든 악착같이 버텨내고 마는 감각적인 본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온라인 클래스, 그도 다를 것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적으로 랜선 만남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기술적인 문제들도 보완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현장감이 떨어지는 점이나 신호가 약한 곳은 연결이 불안하다는 점 등과 같이 고치기 어려운 점도 있기는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수업을 꾸려나가고자 학생들과 교수진 모두 노력을 했다.

우리들은 최대한 소통을 많이 하려고 했고, 음성으로 참여가 어려운 경우에도 채팅으로라도 의견을 내고자 했다.

언제 한 번은 코로나 인해 수업 결손이 일어나면서 아동이 인지 학습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서 발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심지어 피해가 너무 커서 아예 락다운이 시행되고 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일부 지역은 아동이 학교뿐만 아니라 바깥에도 나가기 어려운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교수님들은 깊은 우려를 표했고 우리도 이런 상황에서 어떤 새로운 교육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기도 했다.

자가격리 기간 중 아이들과 할 수 있는 놀이를 주제로 반 전원이 참여했던 세미나가 하나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즉석에서 게임을 하나 제안하셨다.

계란 하나를 책상 높이에서 바닥까지 깨트리지 않고 도달시킬 수 있는 방안을 꾀하라는 미션을 던져주신 것이다.

다행히 주변에 있는 도구를 이용해도 된다는 단서를 붙이는 자비는 베풀어 주셨다.

친구 중 한 명은 저녁에 먹을 달걀이었지만 수업을 위해서라면 희생시킬 수 있다며 난데없이 비장한 각오를 다졌고, 이미 몇몇은 시도하는 중에 처참한 달걀의 마지막을 목도해야 했다.

그렇게 달걀에 날개를 다는 작업이 한참 진행하고, 우리끼리 결과를 주고받다 보니 이미 20여분이 넘게 지나있었다.

스크린 너머로만 서로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이 환경에서도 재미와 배움을 찾는 것이란 달걀을 떨궈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시키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박스를 이어 달걀이 타고 내려올 미끄럼틀을 만든다든가, 휴지 조각을 밧줄처럼 길게 늘어트려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한 수송기를 만든다든가 하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들은 얼마든지 고안해낼 수 있다.

우리끼리 의견을 주고받아 조금씩 에러 사항을 보완해나간다면 그 과정 속에서 재미와 배움을 동시에 찾아낼 수도 있는 것이다.


<봄학기를 앞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제일 아쉬웠던 건 교육학 특성상 현장실습을 나가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나 과제를 포기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스페인에서는 두 달가량 유치원에서 방과 후 음악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매 수업 어떤 활동을 할지 미리 준비를 해야 돼서 얼결에 여러 방면으로 공부를 많이 했던 경험이 있었던지라 더더욱 실습 참여를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이번 학기도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건 맞지만 하나 확실한 건 친구들이 전보다 더 의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거다.

너무 의욕이 넘치는 나머지 이번 학기를 이렇게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편지까지 작성해 교수님들께 보냈다.

편지에는 우리가 상시 카메라를 켜고 수업에 참여할 것과 소모임 그룹 만들기 기능을 적극 활용해 최대한 소통 지향적인 수업을 꾸려나갈 수 있게끔 참여할 것을 알렸다.

한편으로, 교수님들께 물어볼 질문으로는 실습의 가능성이라든지 수업계획표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지 혹은 터키로 가야 된다면 어떤 문서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지 등의 질문들을 준비했다.

아무래도 요즘 같은 시기에 세세하게 계획을 세운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뿐더러 누구도 추천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맞이하는 새 학기를 대비해 구체적으로 일정을 수립한다기보다는 개개인의 마음속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다짐을 해보는 것은 오히려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간에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갖출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새 학기가 몇 주 뒤면 시작된다.

기대, 실망, 두려움, 설렘, 걱정, 떨림.

감정이 범벅된 샐러드 볼을 매일 아침으로 먹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소화하지 못할 감정은 없다.

맛있는 드레싱을 곁들여 수저 위에 가득한 싱싱한 감정의 재료들을 천천히, 또 확실하게 오독오독 소리 내서 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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