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 대선 투표
행정 처리는 마쳤다. 지금부터는 또 다른 기다림의 시작이다. 이제 남은 하루는 마음 편히 즐기며 보내면 된다. 괜스레 쫄았던 거 치고는 행정 처리를 별 탈 없이 해냈으니 다행이다. 아, 참 그리고 이제 대선 투표를 치르러 가야 한다. 목적지는 바르셀로나 총영사관. 경찰서가 위치한 이곳에서 버스 타고 2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 되겠다. 버스 타고 가는 길에 줄 지어선 가로수 나무를 보다가 그 끝에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갑작스레 나타나는 걸 목격했다. 한적진 금요일에 내 볼일 보러 가는 길인데 어쩌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마주치다니, 멋지지 아니한가.
나무에 돋아난 잎새는 푸르고 싱그럽다. 원래도 나뭇잎들이 이렇게 쨍한 초록색을 띄웠던가? 2주 전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기운에 춥다고까지 생각했는데 이제는 해가 쨍쨍하게 뜨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캠퍼스에서만 조용히 지내다 이렇게 가끔 시내로 나오면 여기저기 둘러보며 구경할 거리도 많다. 적색 건물 3층 발코니에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바로 건너편으로는 까사 밀라가 보인다. 영사관 위치가 가(우디)세권이라니, 누가 여기에 차리자고 했는지는 몰라도 굉장한 선택임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건물 1층은 스타벅스다.
대한민국 영사관은 3층.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기 경비를 서시는 분이 3층으로 올라가세요, 하신다. 5일 동안 이어지는 투표 기간에 한국인을 꽤 많이 안내하셨던 모양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바로 데스크가 나온다. 선거 안내관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투표소로 향했다. 실 안에는 열 명 정도 되는 선거관리원들이 계셨다. 실이 크지는 않아서 안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데다 투표하러 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탓에 흡사 레드카펫을 걷는 것처럼 시선을 받으며 입장했다. 절차는 동일했다. 주민등록증이나 여권으로 신분 확인을 하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 안에 들어가 투표를 한다. 대신 다른 점은 항공 우편으로 부쳐질 용지여서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바로 넣는 게 아니다. 내 선거구가 이미 표기된 국제 우편 봉투에 투표용지를 봉한 뒤, 우편 봉투를 투표함에 넣는 식으로 진행된다. 용지에 선거 도장을 찍고 번질까 싶어 입으로 불고, 부채질 두 번 한 다음에 접어서 봉투에 넣었다.
뉴스를 보니 이번 대선을 앞두고 재외국민 투표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선거인으로 등록한 25만 8천여 명 가운데 20만 5천여 명이 투표에 참여했다는 소식이다. 대단한 기록이다. 많은 절차와 과정이 전산화되어서 투표인 등록 등의 사전절차는 많이 간소화되었다고는 하지만 1표를 행사하는 건 직접 투표소로 가서 실천해야 하는 행위다. 재외국민 투표소는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스페인만 하더라도 한국 땅보다 5배나 더 큰 나라인데 재외국민 투표소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만 설치되어 있다. 시내는 아니어도 바르셀로나에 살기 때문에 수월하게 투표를 마친 건 행운이었던 셈이다. 그 외 지역에 사는 분들은 버스, 기차, 또는 항공편까지 이용해 투표를 하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분은 새벽 기차를 탔다고도, 다른 분은 하루가 넘는 여정을 떠나야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표씩 주어지지만 모두가 그 한 표를 위한 비용, 시간, 쏟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국민 하나하나가 얼마큼이나 건강한 민주주의를 염원했기에, 어떤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의 한 표를 행사한 것일까. 투표로 선출된 모든 정치인들은 그 자리가 그들 자신이 아닌 국민을 위해 마련된 저리라는 걸 바로 알길 바란다.
참조. https://imnews.imbc.com/news/2025/politics/article/6719648_367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