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연은 마침내 창을 열었다. 창은 잔뜩 녹이 슨 철문에서나 날 법한 새된 비명을 지르며 힘겹게 열렸다. 미약한 바람이 한 차례 밀려 들었다. 미지근한 바람은 무수히 많은 시간이 겹겹이 가라앉은 공기를 흔들었다. 연은 정돈된 바람결을 손가락 틈과 머리칼 사이사이로 느끼며 솟대처럼 서 있었다.
종이 말벌 한 마리가 8자를 그리며 맴돌았다. 쉼 없이 날갯짓을 하면서도 방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대신 끈질기게 창문 곁을 맴돌아 붕, 부웅, 하는 낮은 진동음이 연의 귓가에 파고 들었다. 연은 벌의 비행에 사실은 어떤 숨겨진 메시지가 있는 걸까 싶어 한참을 창틀에 턱을 괴고 관찰했다. 하지만 특별한 규칙을 읽어 내기는 어려웠다. 작은 종이 말벌 한 마리가 코 끝까지 가까워졌을 때야 화들짝 놀라 내놓았던 얼굴을 급히 뒤로 뺐다. 이러다가 물리기라도 하면 대책 없었다.
개미굴 방에서 개미는 여전히 앞과 뒤, 좌우를 분간하지 않고, 별로 분간할 생각도 없다는 듯 그저 그들이 앞이라고 인식하는 어떠한 곳을 향해 길을 내고 있었다. 검은 점이 좁은 간격으로 나란히 같은 곳을 향해 움직이니 멀찍이 보면 마치 하나의 선이 그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개미 군단을 방의 모서리나 창문 틈 따위에만 가두기에는 이들의 노고가 아깝고, 이들이 일구어 가는 왕국이 지나치게 거대했다. 그어 놓은 선 하나만 넘어가면 밖이었다. 연은 작은 숨을 내쉬었다. 실내 도로 통제 작업과 동시에 바깥으로 향하는 길을 새로 터야 했다. 과연 머리 작은 생명체들이 얼마나 협조를 해줄 지는 의문이었지만 시도는 해 볼만 했다.
바깥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내다본 창 밖은 연기처럼 흐린 구름이 끼어 있었다. 오후가 되니 무거워진 구름이 마침내 빗방울을 떨구는 모양이었다. 연은 갈고리 모양의 옷걸이와 작은 식물 화분 하나를 다른 방에서 가져왔다. 화분의 둥근 테두리를 따라 손을 훑다가 조금 안으로 구부러진 곳을 찾아 갈고리를 끼웠다. 조금 헐거운 감이 있었지만 창턱과 잔디밭의 높이가 얼마 안 되니 주의해 내리면 엎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연은 창턱에서 화분을 내리기 시작해 조금씩 균형을 잡으며 화분을 아래로 내렸다. 도르래를 풀어 물통을 우물 안 깊은 곳으로 내리는 것처럼 신중하게 손을 놀렸다. 옷걸이에 끈과 막대기를 연결해 더 길게 만들기는 했지만 땅에 닫기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반 뼘이 부족해 보였다. 연은 창문 밖으로 머리와 어깨, 상반신의 일부까지 내어 놓았다. 쇄골 틈과 어깨 골 사이, 갈비 뼈 사이까지 바람이 서걱거리며 훑고 지나 가 오싹함이 일었다. 그 사이, 화분은 땅 위에 발을 딛었다. 연은 작은 반동을 이용해 화분과 결착된 갈고리를 풀었다. 식물이 물을 마시기 더 없이 좋은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