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창 10

by 이해린

<10>


오늘도 연은 창을 닦았고, 식물에 물을 먹여 주었다. 종이 말벌은 여전히 창문 너머에서 배회하고 있고, 개미의 수는 점점 늘고 있었다. 섭씨 28도, 하늘은 맑지만 약간의 구름이 끼어 있었다. 연은 현관 문 옆에 길다랗게 난 창 너머로 갈색 소포 상자가 눕혀져 있는 걸 보았다. 연은 솜씨 좋게 옷걸이로 만든 갈고리로 택배 상자의 틈에 걸어 대문 아래에 난 우유 구멍으로 슬슬 잡아당겼다.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상자는 바깥에서 현관문 안으로 무기력한 포로처럼 끌려 들어왔다. 방역 업체에서 보내준다던 개미 퇴치제였다.


소포 상자를 뜯자 제품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자 안에는 사용 설명서가 작은 쪽지 모양으로 개켜져 있었다. 개미가 자주 다니는 경로, 싱크대 주변과 창문 가장자리에 설치해주세요, 개미가 약을 먹고 개미 집으로 가져가면 다른 개미와 여왕 개미까지 독을 전파합니다, 약품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1-2주가량 소요됩니다. 한 채의 집을 박멸시키기까지 드는 노력과 비용은 놀라울 정도로 적었다. 특히나 며칠 사이 본 개미의 행적을 떠올려 본다면 말이다. 이 작은 것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부지런했는지를 본 입장에서는 고작 틈바구니에 젤 쭉 짜 바른다고 단 번에 사라져 버린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이를 어쩌지, 연은 누군가 마음 한 구석을 쥐고 죽 잡아당기는 것과 같은 미묘한 조임을 느꼈다. 개미가 거기까지 통로를 뚫고 들어온 걸 수도 있다. 작은 몸통과 빠른 발 재간이라면 연의 혈관과 장기 정도는 얼마 든지 힘 안 들이고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는 녀석들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이라도 빨리 나가.”


마음이 깊으면 소리의 크기가 아닌 밀도로 터진다고 했다, 누가 그랬더라.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연이 애걸하다시피 줄 지어 움직이는 개미 군단에게 던진 말이 외침보다는 속삭임에 가까운 걸 보면 영 틀린 말은 아니다. 몇몇 개미는 고갯짓을 하며 턱을 흔들어 댔다, 연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올망졸망한 시선을 연을 향해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고, 이내 상념을 털고 태연하게 가던 길을 갔다. 멈추어 선 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졌다간 단정하게 정렬된 줄과 간격이 엉망이 되었을 것이니 연의 입장을 재고해보려던 소수의 개미들도 질서와 규칙을 어길 수는 없던 모양이다.


연은 창문 틈을 따라 입장하는 개미의 줄을 눈 여겨 보았다. 한 손에는 여전히 개미 퇴치제가 들려져 있었다. 뒤에 따라오는 개미는 앞선 개미를 따라서, 그 개미는 또 이전에 들어온 개미를 따라서 차례로 창턱을 넘어왔다. 개미의 방향성에 대해 여태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보고 있으니 연의 눈에는 그림자 음영이 내려 앉은 것처럼 묘하게 어둑한 경로가 드러나기라도 해 보였다. 개미는 방의 면과 면이 만나는 모서리를 따라서 상하 또는 창문 틀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좌우로 이동했다. 이들이 성실하게 일구어 가는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교차로가 놓여 있는 듯했다.


그럼 길 하나를 터주는 건 어떨까? 창 밖을 최종 진출지로 삼아 직통으로 연결되는 고속 도로가 될 것이다. 지금 연의 방 안에 깔린 도로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경로를 인위적으로 깔아주는 것이다. 바깥 세상에는 초록 잎과 짙은 흙이 사방에 깔려져 있다. 앞 뒤 막힌 네모난 방에서 이토록 정처 없이 돌아다닐 필요가 전혀 없었다. 연은 손에 쥔 개미 퇴치제를 협탁 위에 내려 놓았다. 퇴치보다는 구제를 우선 해볼 생각이었다, 마지노선은 무너진 지 오래지만 방어선을 언제든 다시 구축할 수 있다. 연은 밀려날 때 밀려 나더라도 손에 개미 군단의 까만 피를 묻히고 싶지는 않았다.

keyword
목, 일 연재
이전 15화창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