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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09

by 이해린

<9>


이번에는 집 안까지 불청객이 찾아왔다. 요새 왜 자꾸 표적이 되는지 모르겠다.


“미친, 이건 또 뭐야.”


기어코 연은 욕을 내뱉고야 말았다. 굳게 닫힌 창문 틈바구니를 비집고 끝도 없이 들어오는 건 일자로 정렬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들이었다. 그것도 수도 셀 수 없이 많은 개미들이 밀려 들고 있었다. 말벌 쯤이야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날이 추워지면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게 그들의 생존 법칙이라고 하니 말이다. 게다가 바로 바깥에 말벌집이 있는다고 해봐야 창을 열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무리 투명한 창 위로 머리통을 들이 밀어도 들어올 구멍 하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개미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창의 최전방선을 뚫으며 연의 안전지대를 무참히 짓밟고 있었다. 연은 얼굴에 피가 싹 몰리는 걸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지고 보면 제 손등에 난 점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별것도 아닌 미물이 눈치도 없이 창문 턱을 넘어버렸다. 이 중에 누가 대장인지는 몰라도 연은 반드시 안전 지대를 도로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찼다.


“여보세요. 벌레 방역 업체 맞나요? 저희 집 창문을 타고 개미 떼가 들어왔어요. 이걸 어떡하면 되죠?”


간만에 타인과의 전화다. 수화기에 입을 얼마나 가져다 대야 할지, 지금 뱉고 있는 음성의 크기가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크게 들리지는 않을지, 어절 하나씩 내뱉을 때마다 불안 덩어리도 한 움큼씩 따라붙는다. 작게 맺은 연의 물음에 되돌아오는 목소리는 젊은 남성의 것이다.


“개미가 줄 지어 이동한다는 말씀이시죠? 바깥에 정원이나 잔디 밭 같은 게 있으신 가요?”

“예, 1층 집이라서 앞에 화단이 있거든요.”

“아, 예. 그럼 개미에 조금 더 취약할 수밖에 없네요. 보통은 간단한 약품 처리만 해도 수일 내에 없어지거든요. 지금은 개미가 이동하면서 영역을 확장하는 중일 테니까 최대한 빠르게 작업하는 게 좋습니다. 방문 시간대로 언제쯤이 편하세요?”


상대방은 방문 의사를 전했고, 연은 단어에서부터 극렬한 거부감을 느낀다. 방문은 절대 안된다. 연은 아침에 닦았던 창의 개수를 머리로 하나씩 헤아리며 흥분을 떨치려고 노력한다.


“방문이요? 혹시 약품을 받아 제가 직접 처리하면 안 될까요?”

“이전에 직접 개미 방역 처리 해보신 경험이 있으시고요?”

“그런 건 아니지만 집 안에 다른 사람을 들이기가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어렵다 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이다. 연의 집은 철옹성이고 바깥을 내다보는 창만이 유일한 숨구멍이다. 숨구멍은 말 그대로 숨통이 트이도록 공기가 유입되는 통로일 뿐이지 사람이 드나드는 통로는 될 수 없다. 결국 연은 우물쭈물 에둘러서 거절을 표하고, 상대방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다는 듯 속살 같이 빠르게 할 말을 쏟아 낸다.


“그러면 저희 회사에서 사용하는 약품을 문자로 알려 드릴 게요. 시중에서도 판매하는 제품이라서 사용법은 어렵지 않게 인터넷에서 찾으실 수 있어요. 창문으로 들어왔다고 하셨으니까, 음, 일단 약품 처리를 직접 해보시고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개미가 열을 지어 떼로 움직이면 그건 이미 군집이 형성됐다는 거니까 더 강한 방역 작업을 해야 되거든요? 그 때 되면 방역 처리도 하지만 집안 벽 따라서 나 있는 틈을 실리콘으로 메우는 작업도 같이 해야 될 거 예요. 지켜보시고 상황이 더 안 좋아진다 싶으면 꼭 다시 연락 주세요.”


연의 집에 개미가 들어온 근본적 원인, 구태여 알 필요 없다. 지금 시점에서 이 많은 개미들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 중요하지 않다. 일단 들어왔기 때문이고, 이렇게 들어온 이상 다시 내보내야 맞다. 검색창에 개미 퇴치제를 쳐보니 한때 연과 같은 처지에 놓였던 사람들이 쓴 글이 몇 페이지씩 뜬다. 가장 최근에 쓰여진 글에는 개미 퇴치제를 온갖 구석과 틈에 놓아도 또 다른 틈을 찾아서 기어 나오고 마는 개미떼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글이었다. 댓글창에는 그 정도면 집을 개미에게 양보해야 된다는 댓글까지 달려 있었다. 방역 업체 직원이 나와 직접 방역 처리를 하지 않는 이상 개미 퇴치 약품으로 해결을 볼 수밖에 없다. 배송이 올 며칠 말미 동안만큼은 개미들이 얌전히 기다려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들이 협조를 해줄 지는 미지수다. 이미 네 개의 창문 틀을 모조리 점령해버린 개미들이었으니 말이다. 연은 본인의 인내심이 짧은 건지 이들의 근면함이 강한 건지 따져보다가 이내 둘 다 해당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연은 볼펜 하나를 들고 개미들이 지나가는 길목 위를 덮쳤다. 난데없는 거대 물체의 등장에도 개미들은 아랑곳 않고 제 길을 다시 찾아냈다. 어떤 개미들은 그 위를 넘어 가려다 볼펜의 둥근 곡선면에 매달리지 못해 속절없이 바닥으로 추락해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미는 볼펜의 둘레를 따라 움직이다가 볼펜의 촉에서 다시 코너를 돌아 갔다. 멋대로 온 불청객 주제에 벌써부터 이동 경로를 점점 넓혀 가는 개미들을 보니 연은 심사가 뒤틀렸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개미 퇴치제는 배송이 늦어져 봐야 이틀 뒤면 도착할 것이다.


어차피 이틀 뒤면 모양을 감출테지, 알아서 물러서지 않는다면 물리칠 수 밖에. 이렇게 생각하니 그나마 가시 돋쳤던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 같아 연은 가만히 앉아 개미가 움직이는 태세를 지켜본다.


“미안해. 그래도 여긴 내 집이야. 허락 없이 찾아온 건 너희니까 주인인 내가 내쫓는 것도 이해해줘.”


왜 허락도 없이 멋대로 영역을 침범한 개미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부지런히 열을 지키며 어디로 인가 향하는 개미 떼를 보고 있으니 적어도 적당한 명분을 내세워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선제 침략에 대한 방어책일 뿐이다. 그럼에도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찝찝함의 근원은 어디일까? 얘네가 뭘 알고 이러는 것 같지는 않아서 그런가. 아무리 살펴봐도 악의는 없어 보이니 말이다. 게다가 몇 십 마리는 족히 되는 개미 무리의 모든 공격성을 합쳐도 연의 그것과는 비할 데 없이 미미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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