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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아 온다. 이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던가, 다시 눈을 뜨고 밝아진 세상을 마주하길 고대하고 있었는지 연은 제 마음을 당최 알 수 없다. 하지만 여태 그랬듯 아침은 시간 맞추어 나왔다. 볕은 밀려 났던 자리를 도로 차지하려 슬금슬금 기어오고 있다. 이러나 저러나 산뜻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래도 마음이 부산해서 그런 걸까? 부유물이 잔뜩 섞인 흙탕물도 흔들림이 없으면 이물질이 바닥 아래로 가라앉기 마련인데 연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중심을 잃고 방향을 잡지 못한다. 이물질이 잔뜩 끼어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앞이라도 더듬어 나아가 보려고 해도 걸음걸이는 쳐질 수밖에 없다. 연은 눈길을 돌려 시야 한 가득 초록빛을 담아 본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이파리의 빛깔은 강렬하게 빛나고 있다. 한층 싱그러워진 식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일렁이던 마음이 이내 잠잠히 잦아든다. 언제든 다시 일어날 성난 파도일 것을 알면서도 연은 잠깐이나마 찾아온 평화로움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오늘은 종이 말벌이 둥지를 튼 창문 켠을 닦는 날이다. 스펀지와 작은 손잡이가 달린 밀대를 들고 창문을 몇 번 닦으며 바깥 풍경을 내다보니 그새 종이 말벌의 개체 수가 많아진 것 같다. 몇 마리는 맴돌다 가 획 고개를 틀어 방향을 바꾸어 날아가기도 하고, 어떤 종이 말벌은 뽀득뽀득 닦여진 유리 창 쪽으로 돌진해 별안간 머리를 들이 박기도 한다. 유리창이 너무 깨끗한가, 연은 종이 말벌이 머리통을 들이민 지점에 밀대를 한 번 더 문지른다. 말벌이 세찬 날갯짓을 하고 온 몸으로 날아와 부딪힌 자리의 흔적은 노르스름한 작은 점으로 남아있다. 안에서 밀대로 문질러 보아도 바깥 창에서 생긴 흔적은 말끔히 지워지지 않는다. 손톱의 반의 반도 되지 않을 크기다. 언뜻 봤을 때 보이지도 않을 작은 점인데 연의 시선은 꽂힌 듯 노란 반점과 그 주변을 여전히 맴돌고 있는 몹쓸 종이 말벌을 쫓게 된다. 다음에 비가 오면 씻겨 내려갈 터다. 연은 창문의 바깥 쪽을 청소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굵은 비가 쏟아져 씻겨 내려가는 쪽이 더 빠를 것 같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