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창 07

by 이해린

<7>


창이 많은 방에서 식물의 잎을 하나씩 쓰다듬고, 보관해 두었던 물통을 정해진 양만큼 흙을 적셔 준다. 햇볕이 방에 길게 드리워질 정도의 한낮이 되면 연은 식물의 잎이 만드는 조그마한 그늘 틈 아래로 머리를 대고 낮잠을 자기도 한다. 미동 없이 햇볕을 받고 누워있으면 연은 기다란 초록 식물의 축 늘어진 이파리가 된다. 드러난 피부 위에 닿는 햇볕은 따뜻하게 내려 앉았다가 순식간에 따가워질 때도 있다. 그런 순간에는 조심스레 팔이나 다리를 뒤로 숨기거나 얇은 이불로 덮는다. 손을 감아 주먹을 쥐었다가 펴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가 다시 반대 순서로 하나씩 펼친다. 발가락도 오므렸다가 힘을 주어 쫙 내보이듯 편다. 햇볕으로부터 받은 기운이 여러 갈래로 찢어진 혈관을 타고 흘러가 온 몸의 끝과 모든 구석까지 퍼져 나가는 것 같다. 햇볕을 음미하는 동안 저도 모르게 손 끝과 발 끝이 조금씩 더 길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연은 연신 손가락과 발가락을 굽혔다 피길 반복한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그 자세 그대로 잠에 들기도 한다. 허리가 뚝 잘려 나간 시간이 대체 얼만큼 흐른 지 알 길은 없다. 거실로 나가 동그란 시계에 그어진 빗금을 하나씩 헤아리면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어서서 움직이길 포기한다. 정말로 이파리 식물이 된 것인지 발에서 자라난 뿌리가 단단히 방바닥을 옭아 매고 있는 것만 같아서 연은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 바깥은 언제 볕이 들었냐는 듯 온통 컴컴하고 방바닥에서는 한 톨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뿌리가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 깊숙한 흙 속으로 제 몸을 더 파묻는 식물처럼 연도 이리저리 뒤척여보지만 딱딱한 바닥은 물러지지도 들추어지지도 않는다. 연은 바닥에 길고 가느다란 줄기처럼 누워 다시 아침을 기다려야 한다. 얇게 한 꺼풀 올려질 볕의 온도를 되새기면서 말이다.

keyword
목, 일 연재
이전 12화창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