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다운이 3월까지 이어질 거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예상했던 일이기에 놀랍지는 않지만 매 2주마다 연장 소식을 알리는 뉴스를 접하면 아무리 그래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다.
그런 소식을 들은 날이면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장을 보러 나간다.
모든 상점이나 레스토랑, 카페가 문을 닫은 이 마당에 날 위로해주는 건 오로지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가는 일뿐이다.
마트에서 식료품이나 간식거리를 사는 것만이 현재 유일하게 허락된 쇼핑이며 오락거리니 주어진 것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출해내야 된다.
우리 집은 각종 편의시설에 굉장히 접근성이 좋은 입지에 위치해있는 만큼 반경 20분 거리 내에 세 곳의 쇼핑지점을 찾을 수 있다.
심지어 그 세 군데 모두 다른 목적을 지닌 곳이어서 때에 따라, 또는 기분에 맞추어 다른 곳을 방문할 수 있는 강점도 있다.
<PiNGO DOCE>
가장 먼저 세 블록을 걸어 내려가면 나오는 마트가 있다.
우리나라 이마트나 홈플러스처럼 생필품이나 식료 자재들을 파는 일반 마트다.
하도 많이 들락날락한 관계로 어느 진열대에 무슨 제품이 있는지 이제는 척하면 척이다.
내가 제일 자주 들리는 지점이라 함은 아무래도 고기가 진열된 냉장고가 아닐까 싶다.
한번 갈 때마다 다양한 종류로 두세 팩을 사서 하나씩 뜯어 요리해먹고 남은 고기는 냉동실에 소분해서 먹는다.
육류가 대체적으로 저렴해서 한국의 절반이나 그 이하의 값으로 질 좋은 돼지, 소, 닭고기 등을 구매할 수 있다.
한 팩에 5-6유로 선에서 소고기를 살 수 있다는데 망설일 필요는 전혀 없다.
난 언제나 대범하게 육류를 장바구니에 담고, 그럴 때마다 마음의 부자가 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곤 한다.
고기 이외에도 자주 구매하는 건 식빵과 잼이나 버터 종류다.
누텔라와 같은 초코 범벅의 잼보다도 과일잼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매번 다른 브랜드와 맛으로 사는데 요새 내가 빠져있는 건 복숭아잼이다.
늘 복숭아잼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여러 브랜드에서 출시되는 복숭아잼을 다르게 시도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그건 크림치즈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상상이 가능하지 않은 맛이어도 여태 시도해보지 않았다면 작은 사이즈로라도 사서 먹어보려고 노력한다.
음식에 한해서 이렇게 발휘되는 용기는 어떻게 보면 가상하다고 할 수도, 조금은 실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AMOREiRAS>
대각선 방향을 따라 20여분 정도 걸어가면 복합 쇼핑몰이 나온다.
웬만한 프랜차이즈 패션 브랜드들은 다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철물점, 핸드폰 가게, 수선집, 음반점 등도 찾아볼 수 있다.
옷 가게뿐만 아니라 스포츠 용품이나 잡다한 생활 용품들도 다양한 가격대와 브랜드로 둘러볼 수 있어서 굳이 살 게 없더라도 둘러보는 것도 나름 그 재미가 쏠쏠하다.
1층 정문으로 들어서면 복도를 따라서 영화상영관들이 자리한다.
영화관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오면 속옷 브랜드나 안경점, 신발가게들과 코스메틱 샵들이 좌우로 정렬해있다.
그리고 한쪽 벽면을 쭉 따라가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음식점들과 초콜릿, 아이스크림 가게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한동안은 며칠 내리 케이크 가게에 들려 한 조각씩 사가고는 했다.
그 반대편 왼쪽에는 큰 마트가 있는데 규모가 상당해서 가끔 집 앞 마트에 없는 물품들을 구매하러 여기까지 와서 장을 볼 때도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 위를 올라가면 자라, 리바이스, 클락스, 게스, 라코스테 등과 같은 의류 브랜드 가게들이 정면으로 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몰을 사용한 지 얼마 안 돼서 봉쇄 규제가 더 강화되는 바람에 마트나 핸드폰 가게 등 몇몇을 제외한 많은 상점들이 현재로서는 일시 휴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물품들도 락다운으로 인해 배달 주문을 해야 한다거나 멀리 있는 곳까지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봉쇄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더해지고 있다.
2월의 중반을 지나가는 요즘, 3월까지 락다운을 시행할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떠도는데 아무쪼록 상승세를 잡아 다시 일상의 편리함을 조금이라도 되찾고 싶은 마음이다.
<EL CORTE INGLES>
내가 늘 찾는 공원을 가로질러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백화점이 하나 있다.
1층 정문 바로 옆에 스타벅스가 있고 그 아래로 작은 광장이 있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회사원들이나 백화점 직원들이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며 점심시간을 보내는 장소였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아래로 내려가게끔 하는 에스컬레이터가 하나 나오는데 아마 언덕배기가 진 지형이라 1층이지만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건물 구조가 나온 모양이다.
지하 1층에는 여타 백화점들과 마찬가지로 마트와 함께 베이커리들이 있다.
이 곳 마트도 규모가 크기 때문에 다양한 브랜드들과 종류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여기 한 곳만 둘러봐도 시간이 꽤 잘 간다.
그 위층부터는 백화점에 입점한 의류, 코스메틱, 전자기기, 도서 문구류, 인테리어 가구, 스포츠류, 영화관 등등의 여러 브랜드의 상점들과 편의 시설들이 입점해있다.
특히 1층에 데카틀론이라고 스포츠 기기나 의류를 판매하는 스포츠 용품점이 있는데 어떤 종류의 운동이든지 관련 물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 아주 편리하다.
한창 수영을 다녔을 때 오리발이나 물 서림 방지 스틱을 사기도 했고, 배구에 갑자기 빠졌을 때 오로지 토스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신념 하나로 배구공을 장만하기도 했다.
현재는 코로나 규제로 인해 필수적인 몇몇 상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문을 닫았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는 건 베이커리 샵들은 아직 운영을 해서 이따금씩 당 섭취가 필요할 때 한 번씩 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각기 다른 방향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포진한 세 군데의 거점 쇼핑지점 덕분에 내 생활은 한결 편리해졌을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구매 옵션 덕분에 삶의 질까지 덩달아 상승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도시 체질인가 보다, 싶은 생각이 이따금씩 드는 건 현재의 위치에서 가질 수 있는 장점들이 다른 단점들을 다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다.
스페인에 살았을 때는 오분 앞 마트가 아니면 몰이나 백화점을 가려고 거진 3-40분을 걷거나 20분 이상을 대중교통에서 허비했어야 됐는데 지금은 그런 거 없이 발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좋다.
아무래도 근래의 몇 달 동안은 문을 연 상점들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편의시설들이 영업을 중단했지만 다시 도시가 활기를 찾을 때가 오면 아마 이 장소들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은 냉장고 안에 진열된 여러 맛의 크림치즈를 구경하는 걸로 만족하려고 한다.
아니면 아이스크림 맛을 고민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거나 어느 브랜드의 과일잼을 살지 구성성분을 꼼꼼히 따지며 쇼핑의 할당량을 채울 것이다.
그것만 해도 지금으로써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