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요, 리스본

by 이해린


작년까지만 해도 오리발을 들고 월 수 금 아침 7시마다 수영을 다녔는데 그것도 이제는 다 옛일이다.

그 체육관 락커룸에 아직도 내 수영복과 오리발은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 냉동 수면을 취하는 우주인처럼 고요히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나 더더욱 우리 집 바로 옆에 공원이 있는 건 큰 특혜가 아닐 수가 없는데 이유인즉슨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모든 체육 시설이 문을 닫는 바람에 러닝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굳이 이 공원이 아니더라도 사실 리스본 내에는 도심 곳곳에 녹지가 정말 많다.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초록색과 연둣빛의 조각들이 듬성듬성 기워진 퀼트 이불처럼 보이지 않을까?

내가 사는 곳에서는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큰 공원이 나온다.

구글 지도에 그 공원 주소를 입력하면 2만 개가 훌쩍 넘는 리뷰가 남겨져 있는데 최소한 그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오고 갔을 그 돌길은 너무나 가파른 나머지 눈이 내리는 날에 포대자루를 엉덩이 밑에 깔고 내려가면 한 번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내려갈 것이고, 비가 내리는 날엔 고여있을 곳 없이 빗물이 아래로 지체 없이 흐를 것이다.

아무래도 언덕배기가 심하게 진 공원이라 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저 멀리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큰 강줄기까지 내다보인다.

그 강을 마주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분수대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이나 담요를 같이 나눠 쓴 연인들, 비둘기의 꽁무니를 쫓는 아이와 그 아이 뒤를 따르는 어머니, 난간을 가로질러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가는 중학생들.

또, 높은만큼 하늘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종종 지나가는 비행기의 창문과 몸통에 쓰인 항공사 로고를 볼 때마다 저 비행기의 조그만 창문으로 우릴 내려다보고 있을 저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전망대 밑으로는 공원의 잔디밭이 기다란 직사각형의 모양으로 쭉 이어져 있는데 코로나 이전 볕 좋은 날에는 피크닉 나온 사람들이 바구니를 열어 샌드위치를 꺼내 먹거나 과일을 하나씩 떼어먹었다.

요새는 잔디밭을 손질하는 공원 관리인들이 아니고서야 사람들을 자주 볼 수는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한눈에 담으며 무릎보호대를 끌어올리고 러닝을 준비한다.


처음에 러닝을 시작한 건 작년 6월이 느지막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할 수 있는 운동은 없고, 그렇다고 집에만 내내 있기에는 싱그러움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잿빛 식물이 되는 느낌이었다.

러닝 초심자를 위한 유명한 어플이 있다기에 냉큼 다운을 받고 그 날부터 꾸준히 일주일에 세 번씩 나가 뛰었다.

삼 개월이 지나서는 어플에 수록된 세션을 다 완료했고, 10월에는 첫 오프라인 대회에 등록해 등번호를 받았다.

5킬로가 뛸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인 데다 속도도 대단히 빠르지는 않지만 초록불이 깜박여도 뛰지 않는 유전자를 타고난 나에게 이 정도면 인생 최대의 물리적 및 신체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의 대회를 나가고 참여 메달을 받았는데 그 메달 위에는 깜찍하게도 마스크 모양의 낙인이 찍혀있었다.

언택트 마라톤에 마스크가 찍힌 메달이라니, 나중에 이 모든 게 지나가더라도 메달은 남아서 이 울적한 시기의 얼마 안 되는 유쾌한 순간을 오려내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가 바뀌고 1월이 되어서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왔을 때에도 언택트 마라톤을 신청했다.

에두아르도 공원을 지나 마르케스 데 폼발 역에 다다르면 원형 로터리를 지나 그 아래 대로변까지 내달린다.

한 바퀴를 크게 돌고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면 30분을 뛰게 되고, 부르르 요란한 진동과 함께 핸드폰 화면 위로 기록된 거리와 시간이 깜박인다.

언제나 오르막길에서 헐떡이며 왜 이 길을 택했는지, 왜 시작 버튼을 눌렀는지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과 함께 뼈저린 후회를 하지만 종료 알림이 오는 순간 해냈다는 성취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내가 바로 리스본을 접수하러 온 코리안 킵초게다, 라는 되지도 않는 소리를 속으로 외치며 터덜터덜 다시 집으로 걸어가면 아침 10시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으로 시침이 움직인다.


요새는 마를 새가 없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부슬비가 내려대서 러닝을 하러 나가기 영 시원찮은 날씨다.

하지만 창문 밖 너머를 내다보면 몇몇 사람들은 이미 이른 시간부터 운동복 차림으로 러닝을 하고 있다.

한 달 넘게 나라 전체가 락다운으로 모든 게 멈추어 버린 듯한 요즘이지만 바깥 운동만은 개인 면역력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운동이기도 하다.

잘게 흩뿌려지는 차가운 빗방울을 맞으면서도 젖은 돌길을 힘차게 밟아나가는 저 사람들의 다리를 보면 무언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은 수두룩하고, 내가 세우는 계획들은 족족 무너지기 일쑤지만 내 다리는 내가 움직일 것이고,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달릴 것이라는 의지가 읽힌다.

비가 내려도 달려야 한다는 사람들이 거리를 누빈다.

돌길 위에 찍힌 짙게 젖은 회색빛 발자국들이 보인다.

찰박거리는 물 웅덩이가 여기저기 음영진 곳에 도사리는데 그 중앙을 거침없이 박차고 나가는 발걸음들이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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