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과 사라고사 그 중간쯤에

by 이해린


집을 구해야 한다.

대학교 어학원 코스를 신청해야 한다.

비자 신청을 연장해야 한다.

비자 연장을 위해서 시청, 경찰청, 은행에 들러 갖은 서류를 떼야한다.

모든 살림살이를 옮기고 부쳐야 한다.

비행기표를 끊어야 한다.

출국 전에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짐을 다시 싸야 한다.


여기까지가 모든 해야 하는 것들의 목록이다.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은 간단하다.

리스본에서 사라고사로 거처를 옮겨 미처 다 즐기지 못했던 스페인의 부산스러운 낮과 낭만적인 밤을 맞이하는 것.

그렇게 간단명료하게 정리되는 소망에 비해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준비는 왜 이리도 시시콜콜하게 이어지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삶이 조금만 더 쉬워지고, 단조로워지고, 여유로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날 위해서 이 일들을 해주고, 모든 게 날 위해서 마련되었고, 내 삶에 어떤 오류나 오차도 나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달콤한 삶일까.

예를 들어, 집을 구해야 한다기에 인터넷을 들어갔더니 1042개의 집이 리스트 목록에 떴다.

두 시간을 눈이 빠져라 훑었지만 내 상황과 주머니 사정에 딱 알맞은 집은 현재로써는 없다.

아주 마음에 드는 가격이라면 안에 가구가 없다 하지를 않나,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조건인데 시내에서 걸어서 반나절이라질 않나.

다 놓고 정말 필수적인 요건들을 갖춘 집을 보고 손가락을 잽싸게 놀려서 집주인에게 연락 버튼을 눌렀지만 바로 나오는 건 리스팅을 삭제했다는 빨간 경고창뿐이면, 난 정말 달아오른 얼굴로 허공에 주먹질을 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또, 짐을 다시 싸야 한다는 생각은 실행에 옮기지도 아닌 생각의 형태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스트레스다.

이민 가방을 정리한 지 불과 10여 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이걸 다 정리하라고?

차라리 내가 이민가방에 들어가 짐처럼 똘똘 몸을 굴려 택배로 보내지고 싶은 마음이다.

짐들은 몰라, 너네가 알아서 주소 찾아서 오든가. 난 진짜 너네 모르는 애들이야. 미안, 근데 누구세요?

눈을 뜨고 있으면 내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게 다 처리해야 될 일더미로 다가오고, 그렇다고 눈을 감자니 관자놀이 주변에서 팔딱거리는 심장박동이 뛰는 썩 유쾌하지 않은 현상을 기민하게 느끼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난 자기 전에 아, 제발, 눈을 뜨면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있으면 좋겠다, 하고 진심으로 바랄 수밖에 없는 심정이다.

물론 이런 적이 한 두 번은 아니고 수능을 앞두고, 술 먹고 끊임없이 나오는 토를 하다 말고, 학원 째다 엄마한테 걸렸을 때, 공개수업을 앞두고, 뭐 생각하니까 이런저런 일로 난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를 많이 하기는 했다.

매번 진심이었듯이 이번에도, 아니 이번에는 진심으로, 정말로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잘 풀리기를, 한 번에 서류를 떼기를,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를, 안전하게 비행기를 타기를, 무탈히 비자 작업을 끝내기를, 끝없이 이어지는 기도의 행렬은 오와 열을 맞추어 무한으로 확장된다.



세상만사가 하나하나 다 정해져 있다면 삶이 재미없을 거라는 일각의 견해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열심히 살 사람은 열심히 살 거고, 대충 살 사람은 그럼에도 대충 산다.

그러니 그 위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여 어느 일이 일어날지 아닐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아닐지 조용히 귀띔이라도 해준다면 모두의 시간과 감정을 모두 아낄 수 있는 최대의 만족도와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결국 난 하루의 끝에서 까무러치는 한이 있더라도 손을 놀려 집주인에게 연락하고, 발로 뛰어 여정을 마쳐야 한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어차피 시간은 갈 거고, 어떤 미래가 온들 현재의 순간을 살아낸 부산물이 미래에 담기는 것뿐일 텐데 뭐하러 그렇게 전전긍긍하는지도 사실 모를 일이다.

아무래도 현실의 나는 이 모든 걸 내 손으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부족해서 자꾸 헛된 기도를 하는 거 같다.

운명이나 팔자에 대한 믿음이나 내가 절박한 순간에 그토록 찾아 헤매는 어떤 높은 존재에 대한 믿음도 아닌 종래에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 그것만이 날 살릴 수 있고 지속시킬 수 있는데 지금 나한테는 그게 턱없이 부족하다.

내가 없다면 운명도 팔자도 다 소용없고, 신이란 존재는 더더욱 멀어져 갈 것이다.

코로나 검사하러 누가 양 콧구멍을 대줄 것인가?

비자 연장하러 경찰청 입구에서 누가 대기번호를 뽑을 것인가?

이민 가방에 마스크 삼백 개와 모든 옷더미 그리고 쿠쿠까지 누가 챙겨 넣는가?

나, 나, 그리고 나 밖에 없다.

그러니까 해야 된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결국에는 하면 하게 되니까 말이다.



새해를 맞이한 기쁨이 많이 희석된 1월의 중순이다.

2월을 기다리는 마음이 심란하고 어지럽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리스본의 낮은 쓸쓸하고, 밤은 덧없이 까맣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얼굴의 반을 천으로 덮었고, 그 위에 보이는 그들의 눈은 깊고 어둡다.

자그마치 1년의 시간이 불러일으킨 변화는 어마어마하게 무겁게 삶의 숨통을 누르고 있다.

그래도 그 무게에 눌려 나 자신을 향한 믿음이 약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기적은 내 손 끝에서 행해지고, 발 밑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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