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락다운을 곁들인.
1월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더더군다나 1월 첫 주에 포르투갈로 입국하고선 2월 중으로 국가 이동을 계획하고 있던 나는 더 정신없을 수밖에 없었다.
숨 가쁘게 달려야 했던 1월의 끄트머리에 서 지난 몇 주를 돌아보자니 내가 어떻게 이 일들을 군소리 않고 해냈는지 모르겠다.
다시 말해서, 포르투갈은 지금 노선을 벗어난 폭주기관차임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는 거다.
다만 나는 그 기차에 몸을 맡기고 있는지라 그 속도와 방향의 비이성적인 흐름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것뿐.
지난주에 친구를 만났다.
이름은 올리베라고 지중해 연안 국가에서 이 곳 포르투갈에서 직장을 구해 온 동갑내기 친구다.
현재는 락다운으로 인해서 일하던 가게가 잠시 문을 닫았는데 다행히 유급휴가를 내준 마음씩 착한 고용주로 올리베라는 나름대로 자기 계발의 시간을 갖는 중이다.
“너 진짜 이 계획에 자신 있어?”
이 계획이라 함은, 올리베라가 이름 붙이길 스페니시 플랜이다.
그건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3일 내지는 4일에 걸쳐 시행된 나의 스페인으로의 국가 이동 계획이다.
현재 살고 있는 리스본에서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사라고사라는 도시로 내 모든 짐을 챙겨 가는 것인데 밟는 절차마다 부작용이라든지 생각해야 할 거리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크게는 비자 문제나 집 구하는 것부터 해서 자잘하게는 교통수단이라든지 택배로 짐을 부치는 것까지 거의 스페인에 가야 한다는 사명감과 운명론자로써의 확고한 신념이 아니라면 모든 단계가 만만찮은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위험한 계획이었다.
먼저, 비자 연장을 위한 경찰청과의 스케줄은 세 달째 잡히지 않는데 세 달이라면 약과지,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작년 여름부터 시도를 했는데도 아직도 대기 중이라는 사람들이 수두룩이다.
이는 예견된 일일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스페인의 상황으로는 행정업무가 마비되다시피 느려진 상태고, 비자 기간을 어쩔 수 없이 넘겨버린 사람들도 있는 한편 이에 대해 이민국의 조치는 거의 없다시피 하는 실정이다.
행정기관이 업무를 처리할 수 없기에 일어나는 일들임을 정부도 알고 있기에 단속을 한다거나 그렇다고 또 업무 인원을 충당하는 등의 대책을 세울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인 것이다.
언젠가 하우스메이트 브레노가 물었다.
“너 비자 연장한다고 그랬지? 어떻게 돼가고 있어?”
“감감무소식이지, 뭐. 이래서 시간 안에 다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걱정 마. 내 비자는 다섯 달 전에 만료됐어.”
난 입을 쩍 벌렸다. 건조해진 입가 탓에 놀라움의 척도를 보여주고자 그렇게 입을 크게 벌리니 입술 끝이 따끔거렸다.
“다섯 달이라고 했어 방금?”
“어. 근데 나 여기 입국할 때도 이미 만료된 상태였는데 보내주더라고. 그게 어쩔 수가 없는 게, 걔네 잘못이잖아. 내 비자가 이렇게 된 게.”
그래, 그게 틀린 말은 아니지. 아니, 그래도 말이지, 일이 그렇게 돌아가도 되는 거야?
놀라움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브레노의 얼굴에는 어떤 불안이나 짜증 한 톨 배어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는 이미 지난 1년을 서류와 행정기관들과 씨름하면서 이미 어떠한 해탈의 경지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은 평온과 초연, 그 자체였다.
이마의 주름은 백여 통의 전화의 산물이었고, 입가의 미소는 자동응답으로 돌려지고 마는 수십 통의 메일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남은 비자 기간이 몇 달 뿐이라고 해도 괜찮을 거야. 필요한 서류는 이미 다 있잖아? 그 사람들이 처리를 안 해준다 뿐이지.”
그의 자비로운 대답에 난 떨떠름한 얼굴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자 문제는 일단락되나 싶었는데 올리베라가 한 번 더 언급하기를 직접 방문해보는 건 어떻냐고 했다.
원래 절차대로라면 약속을 잡고 방문해야 하는 수순인데 본인은 기다리다 못해 직접 이민국 사무소에 두 시간 기다리고 첫 번째로 일처리를 마쳤더니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는 거다.
다행히 찾아보니 몇 개 없는 이민국 사무소 중 하나가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불과 20분 떨어져 있는 곳에 있었다.
그리하여 아침 8시 이민국 사무소에 후드티와 기모 체육복 바지를 입고 한 손에는 여권과 다른 손에는 핸드폰 스트랩에 손을 끼운 채 기다렸다.
이윽고 자동문이 열리고 한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날 멈춰오는 목소리가 들리기를, 어떤 볼 일로 왔냐는 직원의 물음이었다.
“아, 제가 비자 연장을 해야 돼서요.”
“혹시 약속은 미리 잡으셨나요?”
약속을 잡으려고 왔네요, 21세기 테크놀로지가 허락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는데 약속을 못 잡은 지 한참이어서 이렇게 직접 호소하면 들어주시지 않을까 해서, 라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꾸역꾸역 눌러 담고 말했다.
“아니요. 약속을 잡으러 왔습니다.”
“비자 연장이라고 하셨죠? 무슨 비자죠?”
“학생 비자입니다. 여기 리스본에서 석사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요.”
“아, 그러면 연장 안 하셔도 됩니다.”
뭐라고 하셨죠, 라는 의아스러움을 담은 두 눈으로 물끄러미 직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아요. 국가에서 이미 이민 법령을 개정해서 자동적으로 모든 비자를 연장해주고 있어요. 적어도 3월 말까지는요.”
내 귀에서는 애니메이션 효과음처럼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웽, 웽, 웽, 웨에에엥-
그도 모자라 직원은 마지막 한 방을 날리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3월이 되면 아마 또 연장될지도 모르죠. 지켜보고 있어 봐요. 아시겠죠?”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이민국 사무소 직원, 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5분의 짜릿한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포르투갈은 지금 비자고 뭐고,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거다,라고 한 마디로 일축할 수 있겠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돼.”
72시간 전에 제출해야 되는 음성 확인서를 떼기 위해 플랫 메이트의 여자 친구 토니에게 물었더니 검사를 그나마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는 적십자 사이트 링크를 보내주었다.
우버를 불러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에 병원이 있길래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전화번호를 눌렀다.
연결음이 끝나고 갑자기 터져 나오는 포르투갈어에 손을 벌벌 떨며 믿어요 0번의 힘, 상담원을 제발 연결해주세요, 눈을 질끈 감고 0번을 눌렀다.
그러니 기적처럼 영어 음성안내 들렸다, 뭐지 이건. 계시처럼 들리는 안내 사항에 정신을 애써 붙잡고 상담원 연결을 비교적 빠른 시간에 해낼 수 있었다.
방심은 금물이라지만 나는 그때 정말로 늦어도 십 분이면 전화로 예약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론적으로는 자그마치 50분을 통화했다.
점점 따끈하게 달구어지는 볼을 매만지며 아, 행정처리란 이런 것인가, 하는 덧없는 생각을 연거푸 해대며 이마를 짚고, 어깨에 핸드폰을 끼고선 가방을 헤집으며 충전기를 찾으니 이래저래 50분이 지나가고 말았다.
포르투갈에 와서 가족과도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해 사력을 다해 전화해본 적이 없었다.
핸드폰 액정이 힘을 다 쓴 손난로처럼 미지근해질 때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어야 했고, 통화를 끊을 무렵 상담원과 알 수 없는 내적 친밀감을 나도 모르게 쌓았다.
그 50분 동안 코로나 검사 비용과 절차를 묻고, 예약 과정을 거치고자 애플리케이션에 회원 가입을 했으며, 인증을 받고자 여권 사진과 정보를 메일로 전송했으며, 인증을 받는 와중에 잠시 상담원과 안부를 물었고, 마지막으로 예약 확인을 받았다.
어쨌거나 예약, 했다.
조금은 피곤하고, 아니, 좀 많이 피곤했지만 말이다.
전화를 끊기 전에 상담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진심으로, 정말, 감사했다.
고마워요, 나랑 50분동안 이야기해줘서. 나한테 건강하라고 말해줘서, 또 안전한 여행하라고 빌어줘서. 여러모로 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이동 문제가 있다.
리스본과 스페인 사라고사는 물리적 거리 측면으로는 굉장히 가까운 편이다.
두 군데다 국제공항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에 한 편 이상은 비행 편이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만 했던 건 나의 실수였다, 시국이 시국인 것을 간과하고 말이다.
교통편을 알아보니 원래 육로로 8시간, 비행기로는 두어 시간 남짓 걸릴 거리를 현재는 최소 두 군데의 경유지를 거쳐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단순한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 아닌 강제로 순례길에 오르게 생긴 거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동에 이성을 붙들고 찬찬히 뜯어 살펴보기도 전에 짐을 부쳐야 한다는 생각이 덜컥 났다.
심지어 택배 업체를 이용하면 받는 주소지에서 수령인이 그 시간에 반드시 대면으로 서명을 하고 받아야 한다.
아니면 그 택배는 영영 나오지 못할 블랙홀에 빠져 다시는 그 모습을 수면 위로 드러내지 못하는 끔찍한 운명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두세 번의 경유와 비행기에 모자라 버스로까지 환승해야 하는 극악무도한 여정을 색깔이 파랗거나 퍼렇거나 푸르뎅뎅한 조각들 밖에 없는 오백 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듯 낑낑대며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데 집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까지 밀려들어온다.
아니, 제정신으로는 이거 못 해내겠는데?
이제야 리스본에서 여태 지낸 친구들에게서 은은하게 서려있는 그런 약간의 핀트 나간 농담과 비틀린 웃음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휴, 또 봉쇄 연장됐대? 아주 그냥 잘한다, 다들. 햇빛 받는다고 공원에 그렇게들 누워있더니. 그러니까 나처럼 비타민을 먹으라고.”
“내 생각은 이래. 해변가를 걸으면 웃통 벗은 남정네들이 막 줄지어 지나가거든. 그럼 아, 다음번에는 그냥 돗자리를 가져와야겠다. 선글라스를 끼면 훔쳐보는 걸 모를 거거든.”
“이건 조 과제 같은 거야. 락다운 최종. 락다운 최 최종. 이게 진짜 락다운 끝. 정말로 락다운 최종 버전. 이러면서 아이클라우드를 채워나가는 거지. 다섯 명이 하는 그룹 프로젝트도 허구한 날 망치는데 육천만 명이 같이 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
다들 본인들만의 개성을 뽐내며 남기던 인상 깊은 어록들. 합리성이나 이성을 희한하게 비껴나가며 그들이 펼치던 묘하게 매력적이던 논리의 전개들.
아, 그들은 이런 일들을 다른 시기와 다른 내용으로 몇 번이고 접했겠구나, 하는 그런 씁쓸하면서도 어딘가 안쓰러워지는 마음.
그러다가도 이 상황에서 이런 성찰 과정을 겪어나가는 나 자신의 모습이 퍽 낯설고 왠지 모르게 어이가 없어져 실소가 터지고 마는 나.
총체적 난국이 이런 것인가.
리스본의 아침은 조용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이렇게나 시끄러운 것을 나는 왜 이제야 듣게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