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 Swing

La Gente 01

by 이해린

<10월의 수요일>


“언제 한 번 스윙댄스 추러 오지 않을래?”

마르티나는 여자 친구와 같이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을 찾다가 스윙댄스를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시작이라고 하기에는 거창한 게, 일주일에 한 번씩 바에서 스윙댄스 수업을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스페인에서의 가을학기 개강을 앞두고 마르티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시내에 스윙댄스 모임이 있는 바를 찾는 것이었고,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매주 밤마다 모임이 있었다.

-수요일 8시까지 오면 돼. 주소 보내줄게.

당시 시내에 집을 구했던 친구들과는 다르게 학교 기숙사에 살았던 나는 족히 30분이 걸리는 거리여서 하우스메이트를 살살 꼬셔 목요일 밤 집을 나섰다.

10월의 남부 스페인은 밤이 된다한들 열기가 식지 않아 가벼운 긴팔을 입어도 따뜻하게 느낄 수 있는 정도여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나갔다.


멀찍이서 처음 본 바의 전경은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그곳은 낮에는 카페로 운영되고, 밤이면 조명을 킨 바가 되어 스윙댄스 이외에도 작품 전시회나 예술 활동을 위한 열린 공간이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전에 과제를 한답시고 노트북을 들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셨던 곳이었던 거다.

들어가 보니 낮 시간에 카페 안을 가득 메웠던 테이블과 의자는 구석으로 치워지고, 그 공간을 스테이지 삼아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사람들이 스윙을 추고 있었다.

구석진 곳에 놓인 소파에서 젠, 탄야와 마르티나는 이미 와인잔을 기울이고 크래커를 먹고 있었다.

야니스와 나도 겉옷을 벗고 막 자리에 앉으려는데 마르티나와 탄야가 짐짓 무서운 얼굴을 한다.

“지난번에 알려준 스텝 있지? 복습.”

그렇게 삼십여분의 맹연습의 서막이 올랐다.

넓지 않은 실내 공간에 한참을 친구 손에 끌려다니니 이마 위로 절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기름칠이 조금 필요해 보이는 삐걱거림을 세 명을 두 명이 가르치려 드는 바람에 도합 다섯 명의 혼란스러운 그림자가 스테이지 위로 뒤엉켰다.

목이 마르다 못해 타들어갈 지경이 되어서야 스승님들은 우리를 놓아주었고, 덕분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의자를 냅다 끌어다 앉고 물을 들이켜는데 우리가 휩쓸었던 스테이지에 한 커플이 들어섰다.

키가 큰 남자애는 청바지를 입고 가죽재킷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안으로 얇은 감색 니트가 보였다.

목이 긴 검은색 컨버스를 신은 그 남자애의 두 발은 리듬을 따라 쉴 새 없이 움직였고, 그 움직임에 맞추어 그의 곱슬머리도 흔들렸다.

그 곡이 끝날 때까지 남자애의 경쾌한 걸음에서부터 퍼져나가는 열기에 온전히 집중했다.

친구들이 양 옆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 누가 웃긴 농담이라도 했는지 다들 박장대소를 했다.

그렇게 두어 곡이 더 연주되는 동안 나는 물 잔을 비웠고, 친구들은 맥주잔을 들이켰다.

한 곡이 끝나고 다른 곡이 시작되려는 잠시간의 조용한 틈을 타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가 있었다.

“너희들 여기 처음이야?”

누구의 목소리인지 파악하려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러기도 전에 친구들이 미리 선수를 치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우리 둘은 여기 종종 오는데, 나머지 애들은 처음이야. 우리 반 애들이거든.”

“이 근처에서 학교 다니나 봐?”

“어, 우리 여기 석사 프로그램 이제 막 첫 학기 시작했거든.”

남자애의 이름은 프란시스코였다. 그런데 친구들은 프란이라고 부르니 우리도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프란이 혹시 스윙댄스를 배운 적이 있냐고 물었다.

“아니, 처음이긴 한데 배우고 싶어 졌어. 너 엄청 잘 추더라.”

“난 2년 정도 대학교 다니면서 배웠거든. 좀 알려줄까? 기본만 알면 나머지는 응용동작이라서 어렵진 않을 거야.”

프란은 몇 가지 스텝을 알려줬다.

꼬이기 일쑤였지만 프란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다음에 들어갈 타이밍을 본 뒤 신호를 주면 우린 나란히 발을 뗐다.

그 날 집에 돌아와 손에 잡히는 대로 펜을 쥐고 일기장을 펼쳤다.

왜 검정 컨버스를 신고, 가죽재킷을 입고, 춤을 그렇게 잘 출 일이야, 뭐하는 애야 진짜,라고 썼다.


<11월의 수요일>

당시 난 한국에서 오는 EMS 택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메일로 위치를 계속 추적하고 있었지만 공항 세관에서 멈춘 채 그 이후로 별다른 소식이 없었던 게 어쩐지 조금은 불길해지던 시점이었다.

스윙 바를 가던 그날도 어김없이 스페인 꼬레오 웹사이트에 들어가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털어놓자, 마음을 접으라는 매몰찬 소리만 들었다.

소파에 앉아있던 프란은 한 손에는 카나페와 다른 손에는 커피 잔을 들고 있었다.

잔에 담긴 꼬르따도에서는 아직도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

“내 친구도 해외에서 배송을 받다가 너랑 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해결하는데 되게 고생하더라고.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언제든 말해줘.”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보려고 하거든. 엊그제 전화해보니까 서류를 작성하라고 해서 그거부터 해보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낼까 싶었다.

차가운 액정을 주머니 속에서 몇 번 뒤집다가 관두자 싶어서 손을 빼려는 참이었다.

“내 번호 알려줄게. 나중에라도 메시지 해.”

밝아진 핸드폰 화면에 아홉 자리 숫자가 찍힌다.

이름을 넣는 란을 기입하며 또각거리는 키보드음과 함께 프란의 풀 네임이 적힌다.

그러다 마지막 글자를 찍다 말고 프란은 글자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돌려받은 핸드폰에 메신저 앱을 열어보니 친구 목록에 새로운 이름이 뜬다.

Fran S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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